역사적 이야기

폴란드 왕들은 어떻게 '볼일'을 해결했을까? 바벨 성 속 화장실과 하수도 이야기

16세기, 헨리크 발레지(앙리 드 발루아)가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선거군주로 즉위했을 때, 프랑스와 폴란드라는 두 문화권이 격돌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군주는 수많은 새로운 관습은 물론, 바벨(Wawel) 성에 자리한 르네상스 왕궁의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 그를 크게 감동시킨 것은 당시 서유럽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화장실과 하수 시설이었습니다.

한편 비잔틴-루텐 문화권에서 자란 초대 야기에우워 왕조의 군주들은 서방 이웃들과 달리 청결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야기에우워 본인도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사라졌던 목욕 문화는 동방에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것이죠.

'닭발' 위의 군주

야기에우워의 통치 기간에 바벨 성에는 '닭발(Kurza Stopka)'이라 불리는 구조물이 세워졌습니다. 성의 동쪽 날개를 받치며 실제 벽 밖으로 돌출된 이 받침대 안에는 중세 성의 화장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런 건축 방식에서는 오물이 그대로 해자로 떨어지도록 설계되었죠. 돌출부를 받치던 기둥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만, 현재의 것은 후대에 세워진 겁니다.

또한 카지미에시 야기에우워치크 대에 지어진 상원 탑, 이른바 '루브란카(Lubranka)'에도 통로 형태의 화장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화장실은 지금까지도 매우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판자로 덮인 구멍이 뚫린 석판 구조이며, 그 아래로 약 8미터 길이의 수직 샤프트가 이어집니다. 화장실을 덮고 있는 판자는 아마도 후대에 추가된 편의 장치일 것입니다.

폴란드 왕들은 어떻게  볼일 을 해결했을까? 바벨 성 속 화장실과 하수도 이야기

바벨 성의 '닭발'은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 재위 기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군주는 직접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고 하죠…

비슷한 위생 해결책은 튜턴 기사단에서도 흔히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이런 돌출식 화장실을 '단스케르(dansker)', 즉 폴란드어로 '그다니스코(gdanisko)'라고 불렀습니다. 명칭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사단이 진심으로 미워했던 도시 그단스크(Gdańsk, 독일어: Danzig)에서 왔다는 설도 있지만, 어원은 더 소박하게 독일어 'dannkehren'(밖으로 치운다는 뜻)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장실

본격적인 청결 기술의 발전은 16세기 전반 바벨 성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된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하수 시스템이 건설되었습니다. 성에서 물은 위생 목적뿐 아니라 방어와 화재 진압에도 매우 중요했기에, 성 우물에서 끌어올려 사용했습니다. 물은 성 각 층에 놓인 특제 구리 통에 보관되었으며, 벽 곳곳에는 상수도 납관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시기의 회계 장부 덕분에 우리는 도브루슈코의 얀이 바벨 산 기슭과 성 사이의 상수도 건설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기록에서 '마기스테르 칸날리움(magister cannalium)', 즉 '배관 책임자'로 불렸습니다. 그의 임무에는 성 내 모든 하수 시설을 정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그의 직업은 '물 장인'이라 불렸습니다.

새로 지어진 르네상스 궁전에는 수많은 화장실, 즉 변기를 갖춘 작은 recess 공간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철 고리로 고정된 나무 변좌가 설치되어 벽체 두께 안쪽에 배치되고 문으로 구획되어 있었습니다. 수직 하수관이 이곳에서 오물을 배출했는데, 일부는 오늘날 정화조라 부를 만한 특수 하수 구덩이로, 일부는 바벨 언덕 경사면의 하수도로 흘러갔습니다.

단면 약 70×70cm 규격의 샤프트는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벽돌 아치로 닫힌 개구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 작은 환기구가 설치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후 통로는 사선 방향으로 내려가 벽돌로 덮인 수평부와 연결되었습니다. 물론 하수 구덩이는 주기적으로 비워야 했고, 이는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보존된 구덩이 일부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이유는 더 이른 시기 르네상스 파사드의 잔해를 활용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국왕의 개인 화장실

남쪽 경사면에는 하수도 하나가 있었는데, 이것이 상원 탑 화장실 아래로 오물을 배출했습니다. 나머지 두 하수도의 유적은 성 동쪽 날개 동쪽 파사드 발굴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다만 성의 하수가 바벨 언덕 밖으로 정확히 어떤 경로로 배출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왕실 주방의 하수와 마찬가지로 루다프카(Rudawka)로 흘러들었다가 비스툴라 강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폴란드 왕들은 어떻게  볼일 을 해결했을까? 바벨 성 속 화장실과 하수도 이야기

상원 탑은 바벨 성에서 '볼일'을 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두 번째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바벨 성에는 16세기부터 지하 하수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매번 화장실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그문트 1세(스타르지) 침실의 화장실은 아마도 국왕 전용이었을 겁니다. 일부 오물은 항아리에 실어 운반되었고, 궁정 신하와 하인 대부분은 요강과 오물 구덩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출신 헨리크 발레지에게 이 모든 하수 시스템은 놀라운 신선함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에서는 이런 시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악의적인 농담으로는, 프랑스 궁정 신하들이 화장실의 용도를 몰라 집에서처럼 벽난로 옆에서 편하게 자리 잡았다고도 합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폴란드를 떠난 뒤 헨리크 발레지가 프랑스 궁정에도 하수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명령했다는 점입니다.

참고 문헌

  1. A. 피신게르, M. 파비안스키, 『르네상스 바벨 성 건축사 1504~1548년경』 1권, 크라쿠프 2009.
  2. M. 스템피엔, 『바벨 성 파사드 건축 조사』, Studia Waweliana 제9/10권, 크라쿠프 2000/2001, 129~191쪽.
  3. 아헨부르크, 『더러움의 역사』, A. 구르스카 옮김, 바르샤바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