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던 시기(1979~1989), 병사들을 가장 크게 위협한 것은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무자헤딘 게릴라가 아니었습니다. 병사들이 병원을 가장 많이 찾은 이유는 감염병이었고, 군 의료 서비스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한 소련군은 이론적으로 병사들의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대형 군병원만 일곱 곳을 운영했고, 규모가 작은 주둔지마다도 의료소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서류 위에서만 아름다웠을 뿐, 실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프간인들 – 제국의 마지막 전쟁』의 저자 로드릭 브레스웨이트(Rodric Braithwaite)가 기록한 통계는 그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병사의 4분의 3 이상이 입원했습니다. 약 11%가 부상을 입거나 장애를 얻었으며, 나머지 — 이 전쟁 중 복무한 전체 병력의 69% — 는 심각한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중 28%는 감염성 황달, 7.5%는 장티푸스였고, 나머지는 감염성 이질,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의외로 소련군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무자헤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 즉 감염병이었습니다(사진: Erwin Lux, CC ASA 3.0).
황달과 콜레라, 부대 전체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다
만성적인 예산 부족과 형편없는 위생 상태가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병원들은 의료 인력과 의약품은 물론, 붕대조차 항상 부족했습니다. 한 소련군 의무관은 이렇게 토로하기까지 했습니다. "필요한 물자만 있다면 환자의 4분의 3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때로는 병사들 자신이 문제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절박해진 병사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절이나 쓰던 방법에 손을 댔습니다. 최전선 근무를 피하기 위해 병원의 위생병에게서 황달에 걸린 사람의 소변을 사서 마신 것입니다. 중증 질환에 걸리면 후방으로 후송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금방 나타났습니다. 1981년 말, 신단드에 주둔한 제5근위기계화보병사단의 병사 4명 중 1명이 질병, 주로 황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고위 지휘관들마저 침대에 눕게 되었는데, 브레스웨이트의 기록에 따르면 사단장 보리스 그로모프(Boris Gromov)와 그의 부관들, 그리고 모든 연대장이 동시에 병석에 누웠습니다. 당연히 이런 상태의 사단은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브레스웨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의료 서비스가 질병 통제 면에서 아프가니스탄 파견 후계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전열을 갉아먹은 것은 황달만이 아니었습니다. 콜레라 역시 결코 얕볼 수 없는 위협이었습니다. 잘랄라바드에 주둔한 제66독립기계화여단 병사들은 1985년 여름 그 참상을 몸소 겪었습니다. 작전에서 돌아오던 순찰대원들이 도로변 샘물을 마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며칠 뒤 점호 자리에서 세 명의 병사가 쓰러졌고, 진단 결과는 콜레라였습니다.
이 글은 로드릭 브레스웨이트의 저서 『아프간인들』(Znak, 2012)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질병은 빠르게 번져 결국 여단 병력의 절반 이상이 감염되었습니다. 상황이 너무 위험했기에 환자들은 철조망 뒤에 격리되었고, 의사와 간호사들 역시 함께 격리되었습니다. 필요한 식량과 추가 의료 인력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실어 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망자의 시신을 화장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여전히 종교적 신념이 남아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이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추산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점령 기간 내내 제40군 병력의 4분의 1, 어쩌면 3분의 1까지가 질병으로 작전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유행병이 정점에 달했을 때는 환자 300명당 간호사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은 점이 하나는 있었다
브레스웨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의료 서비스가 질병 통제 면에서 아프가니스탄 파견 후계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평가합니다.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패배의 원인은 무자헤딘의 강한 저항뿐만 아니라 완전히 무능했던 군 의료 서비스에도 있었습니다(사진: Mikhail Evstafiev, CC ASA 2.5).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잘해낸 유일한 분야는 전장에서의 부상자 후송이었습니다.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구조 헬기가 없었으니까요. 한 낙관적인 보고서는 이렇게 자랑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 의료 서비스가 자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성과는 헬기를 이용한 부상병 후송이었습니다(사진: E. Kuvakin, CC ASA 3.0).
"부상병 10명 중 9명이 30분 안에 응급처치를 받았고, 6시간 안에 의사에게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아프가니스탄 소련군 병원의 현실은 이랬습니다. 설령 부상자가 수술대 위에서 죽지 않더라도, 감염으로 죽을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수천 명의 병사가 바로 이런 운명을 맞았습니다.
출처
- Rodric Braithwaite, 『Afghans: The Last War of the Empire』, Znak 출판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