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야가 되면 우리는 '내일 증후군'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아즈텍인들에게 다가오는 달력의 교체는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습니다. 폭풍과 피에 굶주린 짐승의 습격, 나아가 완전한 파멸의 위협까지 함께 찾아오는 날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종말은 매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무려 52년에 한 번씩만 찾아왔죠. 왜 하필 52년일까요? 답은 아즈텍의 달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달력들에서요. 아즈텍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달력이 있었습니다.
종말은 (언제나!) 곁에 있다
첫 번째 달력은 260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계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달력으로는 논밭에 파종할 시기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실용적인 두 번째 달력, 365일짜리 달력도 따로 존재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세다 보면 연말 날짜는 대개 어긋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달력은 18,980일마다 한 번씩 겹쳤습니다. 이 숫자는 260과 365의 최소공배수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즈텍의 '세기', 즉 18,980일, 52년이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시간을 순환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의 신화는 이전 시대들과 그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진행 중인 순환 역시 언젠가는 끝나야 했습니다. 그것도 요란하게 말입니다. 가능한 종말 시나리오는 넘쳐흘렀습니다.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재규어, 폭풍우, 대홍수, 심지어 하늘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까지요.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가 아즈텍 달력으로 지목하는 '태양의 돌'. 그러나 아마도 아즈텍의 창세 신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시에 재앙의 위험은 52년 주기가 끝날 때마다 커졌습니다. 아즈텍인들은 그 시기가 되면 진지하게 긴장했습니다. 세상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다고 믿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게다가 그 멸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해골을 연상시키는 굶주린 괴물, 치치미메(tzitzimime)가 사람을 사냥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존재들은 인간은 물론 태양과 달마저 위협했습니다.
곡창에 갇힌 여인들
파멸을 막기 위해 토시우몰피야(toxiuh molpilla), 즉 '해 묶기' 혹은 '새로운 불 의식'이라 불리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날 아즈텍인들은 신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을 치웠고, 모든 불을 껐으며 화덕의 돌은 물에 빠뜨렸습니다. 임산부들은 피에 굶주린 짐승으로 변해 치치미메와 함께 사람을 잡아먹지 않도록 곡창에 갇혔습니다. 아이들 역시 쥐로 변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해 질 녘, 사제들은 우이솤므틀란(Huixachtlan) 언덕에 올라 하늘을 관측했습니다. 그동안 멕시코 분지의 모든 주민은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렸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천정을 지나갔을 때였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적어도 52년 더 존속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이 글은 최근 출간된 『멕시코의 새로운 역사』(PWN 학술출판사, 2016)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은 사제들이 데려온 노예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어차피 노예란 그런 용도로 삼았으니까요. 『멕시코의 새로운 역사』 저자들은 메소아메리카 노예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노예제는 메소아메리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노예가 된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 처우도 두 가지였다. 장작과 물을 나르는 등의 일을 하던 가정 노예와 제물용 노예가 그것이다. 후자의 유일한 운명은 특정한 의식일에 죽는 것이었다.
'세기말' 축제에 지명된 불운한 남자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먼저 선택받은 사제가 나무 불광으로 그의 가슴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 불씨로 거대한 모닥불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예의 가슴이 가르어져 심장이 적출되었고, 심장은 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윽고 그의 나머지 몸도 불길에 던져졌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오직 피 흘리는 인신공양만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다…
사제들이 지핀 불을 본 사람들은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말 파티와 닮은 점은 찾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귓불을 잘라 자신의 피를 바쳤습니다. 어린아이와 갓난아기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전령들이 성스러운 불을 신전들로 옮겼고, 주민들은 그 불을 다시 각자의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샴페인이나 술 한 잔은 어땠을까요? 아쉽게도 음주는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였기에 아즈텍인들은 숙취 없이 새로운 '세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인신공양 없는 아즈텍의 축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 아즈텍 통치자 모테쿠소마 시대에는 새 불 의식을 맞아 무려 2,000명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사제들이 그토록 많은 포로를 죽이는 데 온종일이 걸렸고, 그들은 말 그대로 피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최고 기록은 아니었습니다.
『멕시코의 새로운 역사』에는 또 다른 통치자의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모테쿠소마 직전의 통치자 아위초틀은 군사 원정에서 드러낸 잔혹함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무려 8만 명의 포로를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저자들은 '숫자는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사료가 이를 전하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아즈텍 달력이 52년마다 '초기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롱 카운트(2012년에 끝나지 않았죠!)를 사용한 마야와 달리 아즈텍에는 '세기'를 넘어 시간을 셀 수 있는 체계가 없었습니다. 이는 역사가들에게 큰 골칫거리입니다. 아즈텍 연대 '1-갈대'는 우리 달력으로 1519년일 수도, 1467년일 수도, 1415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이어집니다.
다행히 현재의 52년 주기는 2027년에야 끝납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치치미메를 눈여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 문헌
- Erik Velásquez García 외, 『멕시코의 새로운 역사』, PWN, 바르샤바 2016.
- Justyna Olko, 『아즈텍』, 세계 신화 시리즈, New Media Concept, 바르샤바 2007.
- Justyna Olko, 『정복 이전의 멕시코』, PIW, 바르샤바 2010.
- Frances Frei Berdan, 『중앙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 사회』, Wadsworth, 벨몬트(캘리포니아) 2005.
- Michael E. Smith, 『아즈텍』, Blackwell, 몰든-옥스퍼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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