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회주의 운동의 개척자 페르디난트 도멜라 뉴벤후이스(Ferdinand Domela Nieuwenhuis)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하게 반유대주의 사상에 이끌렸으며, 이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다. 도멜라의 전기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얀 빌럼 스튀티에(Jan Willem Stutje)가 오픈 액세스 학술지 『BMGN – Low Countries Historical Review』에 발표한 글에서 밝힌 견해다.
정치 무기로서의 반유대주의
반유대주의를 정치적 무기로 삼는 모습은 흔히 아돌프 히틀러의 정당인 나치당(NSDAP)의 국가사회주의와 연결 지어 떠올린다. 그러나 네덜란드 초기 노동운동에서도 이는 만연한 현상이었다. 네덜란드 사회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사회민주동맹(SDB)의 지도자였던 도멜라 뉴벤후이스는 정치 무대에서 적극적인 반유대주의자였다. 스튀티에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태도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엘리트'였던 암스테르담 유대인 다이아몬드 노동자들에게 SDB가 지지층을 형성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스튀티에는 2012년 출간한 전기 『페르디난트 도멜라 뉴벤후이스, 낭만적 혁명가(Ferdinand Domela Nieuwenhuis: een romantisch revolutionair)』(Atlas/Contact, 암스테르담)에서 도멜라의 반유대주의를 정치적 도구로 다룬 뒤 비판의 물결을 마주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좌파 역사학자들은 노동운동 내부의 반유대주의를 우연한 현상으로 치부해 왔다. 반유대주의는 외부에서 유입된 '독일산 전염병'일 뿐이며, 도멜라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반유대적 모욕을 정치 무기로 동원했을 리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스튀티에는 도멜라가 실제로 반유대주의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다고 못박으며, 네덜란드 초기 노동운동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는 연구가 크게 미흡한 주제라고 지적한다.
'창백한 학자풍 얼굴들'
19세기 말, 도멜라 뉴벤후이스가 네덜란드 노동자들에게 혁명과 아나키즘을 호소하던 시절, 반유대주의는 유럽 전역에서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었다. 유대인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타자'로 규정되곤 했지만, 대체로 일상적 교류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다. 도멜라 역시 뿌리를 두고 있던 부유한 암스테르담 상류 사회에서는 온건한 반유대주의가 결례로 여겨지지 않았다. '유대인은 인류의 적이므로 아시아로 추방하거나 절멸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발상조차 좌파 지식인 사회에 유통되고 있었고, 도멜라 역시 그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도멜라는 유대인 은행가들을 '자본'의 화신으로 간주했다. 이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착취, 식민주의, 전쟁에 연루되어 있다는 함축이었다. 그는 유대인이 '고리대금업의 피를 이어받은' 민족 집단에 속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도멜라가 공동 창간한 잡지 『모든 이를 위한 권리(Recht voor Allen)』는 그의 반유대주의를 실어 나르는 대변 매체였다. 이 잡지는 유대인을 '탁월하게' 영리하고 순응적인 존재로 묘사하며, '정문'으로 쫓겨났다가 '뒷문'으로 슬며시 되돌아오는 존재로 그렸다. 도멜라의 신문은 유대인의 불신과 자본과의 결탁을 뜻하는 '머니 요더레이(money yoderij)'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주식 투기꾼들을 '창백한 삽 같은 얼굴을 한 유대인들'로 조소했다.
도멜라의 반유대주의 선동은 SDB를 '유대인 없는 정당'으로 만들었다. 암스테르담 프롤레타리아트 안에 유대인 노동자가 충분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890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반유대주의 기운이 더욱 견화되자, 도멜라는 특히 최대 정적이었던 프리슬란트 출신 사회주의자 피터 예럴러스 트뢸스트라(Pieter Jelles Troelstra)를 상대로 반유대주의를 지속적으로 구사했다.
트뢸스트라는 SDB 내부 노선 다툼에서 도멜라와 정면으로 충돌한 인물이었다. 그는 도멜라가 지향하는 대중 폭력 혁명이 아니라 의회주의적 방식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고자 했다. 더 문명화된 형태의 사회주의를 내세운 트뢸스트라는 유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지를 성공적으로 끌어모았다. 스튀티에의 해석에 따르면, 도멜라에게는 SDB와 혁명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반유대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조차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결국 트뢸스트라는 1894년 사회민주노동당(SDAP, 오늘날 노동당 PvdA의 전신)을 창당하며 SDB에서 공식적으로 갈라섰다. 분열이 확정되자 도멜라는 반유대주의적 어조를 누그러뜨렸지만, 그의 반유대주의적 관념을 완전히 내려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