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남아메리카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그중에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대표 강호로 꼽힌다. 아르헨티나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가 있었다.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그의 활약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선수였지만, 마라도나가 축구사, 나아가 아르헨티나 역사에 이름을 새긴 결정적 계기는 단 한 경기, 정확히는 그 경기에서 터진 두 골이었다.
경기장으로 옮겨진 전쟁
1986년 6월 22일, 멕시코 아스테카(Azteca) 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의 상대는 잉글랜드 대표팀이었다. 월드컵 8강전이라는 스포츠적 의미 외에도, 이 매치에는 깊은 정치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4년 전, 두 나라는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으로 충돌했다. 아르헨티나의 패배는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가 이끄는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직결되었다. 군부는 경제 위기로 신음하던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쉬운 승리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완전한 참패였다.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는 레오폴도 갈티에리에게 권력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렀다(사진: Tupolepo, CC ASA 3.0).
이 패전은 군부뿐 아니라 내부 위기에 시달리던 평범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국가적 굴욕이라는 쓴 약을 삼켜야 했다. 그렇기에 멕시코에서 벌어질 잉글랜드와의 대결은 오랜 설움을 풀 수 있는 복수의 무대였다. 이번에는 함선과 병사 대신 축구 선수들이 싸움에 나섰다.
'신의 손'과 '세기의 골'
당시 컨디션이 좋았던 마라도나가 이 경기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되었지만, 경기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가 우세했고, 후반전의 장면들은 오늘날까지 축구 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후반 6분, 마라도나는 왼쪽 측면에서 공격을 시작해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되받은 공을 잉글랜드 골키퍼 위로 넘기며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키 170cm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에게는 헤더로 공을 차지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사용했고, 주심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이 장면은 이후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신의 손'을 연상시키는 포토몽타주,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아담의 창조」 일부(제작: pruxo, GNU FDL 1.2).
4분 후, 그는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세기의 골'로 꼽히는 두 번째 득점을 올렸다. 자기 진영에서 공을 받은 마라도나는 다섯 명의 수비수를 연속으로 제친 뒤 골키퍼마저 넘기고 빈 골문에 공을 밀어 넣었다. 선수 개인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극적인 장면이었지만, 경기가 끝난 후 세간의 관심은 첫 번째 골에 쏠렸다.
비베사(Viveza), 교활함의 미덕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국 영웅의 골을 '비베사(viveza)'라는 스페인어로 표현했다. 이 단어는 칭찬할 만한 교활함과 능청스러움을 뜻한다. '신의 손' 골이 전 세계적으로는 부정행위로 비난받았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에게 마라도나는 자신의 교활함으로 미운 영국인을 속인 국민 영웅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런 종류의 재주가 특별히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에, 마라도나의 행동은 조국에서 비난받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그는 호세 데 산마르틴(José de San Martín)과 비교될 만큼 찬사를 받았다. 19세기 식민 지배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킨 장군처럼, 디에고 역시 혼자 힘으로 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는 에바 페론(Evita Perón) 곁에 국가적 영웅의 전당에 자리 잡았고, 심지어 그를 기리는 교회(이글레시아 마라도니아나, Iglesia Maradoniana)까지 만들어졌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아들에게 가운데 이름을 '디에고'로 지어주는 등의 의무를 진다. 마라도나의 삶은 수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었고, 저명한 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Emir Kusturica)는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신의 손'은 축구에서 페어플레이가 사라지고 승리만이 중요해졌다는 증거로 자주 언급되었다. 부정행위는 상업주의와 함께 이 스포츠에 스며들었다는 것. 두 현상 모두 마라도나 이후 점점 더 만연해졌다는 분석이다. 마라도나 자신도 논란의 인물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성의 소유자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내 부정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를 기리는 성소. 나폴리 시민들이 만든 이런 모습의 공간이다(사진: Dieghito, CC ASA 2.0).
그럼에도 마라도나는 분명 하나의 현상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웅 중 한 명이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손으로 넣은 골이지만, 발로 넣은 골 중에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명장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모국 대표팀을 지휘할 때는 그의 손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손짓 발짓을 부지런히 해 보았지만, 독일과의 8강전(0:4!)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디에고의 손은 어쩌면 정말 신성한 것이 아닐까?
참고 자료
- J. Burns, 『The Hand of God: The Life of Diego Maradona』, Poznań 2002, pp. 213, 221.
- K. Kubiak, 『20세기 최대의 전투 – 포클랜드』, 바르샤바 1993, p. 7.
- T. Mason, 『수백만의 열정: 남아메리카의 축구』, 그단스크 2002,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