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에도 이혼이 가능했을까? 교회법이 인정한 드문 예외 조건들

교회법의 관점에서 결혼은 불가침이며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예외가 적지 않았습니다. 과연 중세 사람들이 이혼, 즉 혼인 무효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중세에 남편과 아내가 법적으로 갈라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 당국이 혼인 자체를 무효로 선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애초에 결혼이 올바르게 성립된 적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져야 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유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목록은 오히려 더 짧아졌습니다.

폴란드의 군주 가운데 카지미에시 3세(대왕)는 혼인 무효를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인물입니다. 남자 후계자가 없던 왕에게 두 번째 아내인 헤센의 아델하이트는 불임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어떤 논거를 들 수 있었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절대 쓸 수 없었던 혐의는 무엇이었을까요?

배신, 이단, 폭력?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지미에시의 시대, 즉 14세기에는 배우자가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었습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조차 파혼의 근거가 되는 것은 남편이 다른 남성과 행하는 항문 성교가 아니라고 명시할 만큼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교황에게 혼인 무효를 청구할 수 있었던 경우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남편에게 그런 행위를 강요당한 아내의 경우입니다.

중세에도 이혼이 가능했을까? 교회법이 인정한 드문 예외 조건들

14세기 세본화에 묘사된 루이 8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결혼식

이단이나 배교처럼 중대한 죄악은 부부의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단순한 별거의 근거에 불과했습니다. 남편의 폭력 역시 여성에게 관계를 끝낼 권리를 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인정받은 이혼 사유

합법적인 이혼 사유로 인정된 것은 주로 강제된 결혼, 예컨대 신부 납치를 통해 맺어진 혼인이었습니다. 완전한 발기 불능자와의 결혼, 마지막으로 거세된 남성과의 결혼 역시 무효 사유가 될 수 있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성직자들 사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영국의 영향력 있는 법학자 윌리엄 오브 파굴라는 결혼 이후에 거세된 남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짝짓기가 불가능한 영구적인 무능력은 언제나 결혼의 장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성 기능 상실의 원인 역시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교회 당국은 (소위) 마법으로 인해 남근의 기운을 잃은 남성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마법을 극복하고 기능을 회복할 시간으로 최대 3년까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다툼이 벌어진 사안에서는 이웃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서약 진술서를 요청했으며, 때로는 실제 신체 검사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임상과는 거리가 먼 '검사'

이 시기 잉글랜드의 교회 법정은 피고의 발기 불능을 입증하는 역할을 맡은 평판 좋은 여성들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해당 남성에게 흥분을 일으키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가슴을 드러내고, 키스하거나 애무하며, 심지어 성기를 만지는 것까지 허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시행에도 남성이 무감각한 상태로 머물면, 남편감으로서 적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중세에도 이혼이 가능했을까? 교회법이 인정한 드문 예외 조건들

A. 레서가 상상으로 그린 카지미에시 대왕

여성의 경우 검사는 주로 처녀막이 파열되었는지, 곧 아내가 남편과의 성관계를 허용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배심원들은 여성의 냉담함은 발기 불능보다 극복하기 쉽다고 여겼습니다. 윌리엄 오브 파굴라는 질 입구를 외과적으로 개방하거나, 아니면… 처녀막을 뚫기에 크기 면에서 유리한 기관을 지닌 다른 남성으로 임시 대체하는 방안까지 제안했습니다.

불임이면 충분했을까?

카지미에시와 아델하이트의 관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카지미에시는 자신의 남근에 약점이 있다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증인석에 세워진다면 수십 명의 사생아 생모가 될 연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증언할 수 있었으니까요. 혼인이 한 번도 완수된 적이 없거나, 아델하이트가 갑자기 성관계 능력을 잃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 또한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혼을 요구하며 카지미에시가 쓸 수 있는 논거는 단 하나, 아내의 입증된 불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매우 불안한 지반이었습니다. 14세기에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특히 결혼 전에 알려지지 않았고 혼인이 육체적으로 완수된 경우라면 이혼의 충분한 명분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군주와 부유층에게는 교황이 예외를 허용해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양측이 합의하여 갈라서거나 교황청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할 때뿐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바라며 격분한 누이를 달랠 수 없었던 카지미에시는 아비뇽 교황청의 호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아델하이트를 설득해 왕관을 내려놓고 혼인 무효에 동의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주요 참고 문헌

이 글은 저자가 저서 「폴란드 제국의 여인들: 강대국을 건설한 여성들」(Ladies of the Polish Empire. The Women Who Built a Power) 집필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래는 그중 일부이며, 전체 참고 문헌은 본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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