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숨겨진 연애사와 뜻밖의 에로틱한 고백

"평온한 삶"이라는 오해, 그의 뜨거운 사생활

노벨문학상 수상자 헨리크 시엔키에비츠(Henryk Sienkiewicz)가 평탄하고 담백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신혼여행조차 온전히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그의 첫 결혼 생활과 달리, 그가 남긴 사랑에 관한 고백들은 오늘날 읽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다.

홀아비 작가를 둘러싼 끊이지 않던 혼담

시엔키에비츠는 홀아비였고, 가족들은 한동안 그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시 결혼하면 여행을 더 자주 다니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의 이름은 사촌 알렉산드라 렐레벨(Aleksandra Lelewel)과도 얽히곤 했는데, 심지어 소설 『대홍수』의 여주인공 이름이 그녀에게서 유래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시엔키에비츠는 사랑하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이미 그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문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대폴란드(Wielkopolska) 지방 출신의 바시아 마잉코프스카(Basia Mańkowska)와 사랑에 빠졌다고까지 했고, 그 증거로 볼로디요우스키의 아내 이름을 들었다.

작가의 다른 친척들 역시 잠재적인 혼처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1888년 5월 중순, 구주프(Guzów)의 친척 집에 머물던 시엔키에비츠는 갑자기 젊은 사촌 마리아 밥스카(Maria Babska)에게 청혼했다. 이 소식에 가장 놀란 사람은 야드비가 얀체프스카(Jadwiga Janczewska)였다. 그녀는 곧 "저 아이를 작가의 머리에서 몰아내기" 위해 여러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숨겨진 연애사와 뜻밖의 에로틱한 고백

본문은 하르데 출판사(Harde Publishing House)에서 최근 출간한 『노벨상 수상자 스캔들러들』에서 발췌한 글이다.

마리아는 24세, 시엔키에비츠는 41세였다. 작가는 그녀를 여자로서 의식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언제나 그저 조카이자 "귀여운 아이"로만 여겼다고 주장했다. 이는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아니었다. 그는 시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꽤 비틀린 논리로 자신의 결정을 설명했다.

"나를 사랑하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며,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는 처녀에게, 내게 남은 것을 주지 않을 만한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얀체프스카는 그녀가 작가에게 어울리는 배우자가 아니라 확신했고, 결국 시엔키에비츠가 밥스카와 헤어지도록 강요했다. 작가는 빈에서 겸손한 톤의 편지를 약혼녀에게 보냈지만, 진실 전부를 고백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는 마리아에게 자신이 '뇌빈혈'(!)을 앓고 있다며, 의사가 글쓰기와 독서를 금했기 때문에 결혼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밥스카는 즉시 쾌유를 기원하는 답장을 보냈고, 장래에 함께 혼례를 올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곧 작가의 진의를 깨달은 그녀는 또 다른 편지를 보냈다. 자신은 실은 그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그의 결정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시엔키에비츠는 순순히 모든 경위를 얀체프스카에게 알렸지만, 시누이는 그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심지어 남편을 빈으로 보내 작가를 설득해 함께 미국으로 떠나도록 했다. 결국 시엔키에비츠는 미국행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조카와의 혼사 문제도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 아무도 몰랐다. 마리아 밥스카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집시 아가씨'와의 짧은 설렘

1889년 카니발 시즌이 열리던 무렵, 미모의 아돌피나 차르노프스카(Adolfina Czarnowska)가 시엔키에비츠의 삶에 등장했다. 그녀는 「슬로보」지 발행인 중 한 명인 루치안 브로트노프스키(Lucjan Wrotnowski)의 조카였고, 작가는 그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그녀를 "치가네치카(Cyganeczka, 작은 집시)"라고 불렀고, 주변 여인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아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훨씬 어린 처녀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빈행 열차 안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차 안에서 그는 이 혼사의 찬반을 충분히 따져볼 여유가 있었다.

"가는 길목에서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있다. 내가 나의 가난과 고독과 슬픔을 더 좋아하며, 앞으로도 언제나 집시 한 무리보다 그것들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사실이 그토록 선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고 가슴속이 살짝 울컥했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 그는 야드비가 얀체프스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것이 그가 아름다운 여성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의 취향은 오늘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숨겨진 연애사와 뜻밖의 에로틱한 고백

같은 해 10월, 다시 빈으로 향하던 길에 그는 어떤 O양(Miss O.)을 만났다. 그녀는 작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며칠 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 O양은 너무나 예뻤고 그 손길이 무척 매력적이라, 나는 쉬는 시간이든 식사 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브로츠와프까지 내내 '붕대를 감은' 채였다. 국경에서는 내가 밀수품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받기까지 했다 (…)"

'붕대 감기(banding)'는 바르샤바 방언으로 오래 지속되는 강한 발기를 뜻하는 은어였다. 세관원들이 작가가 바지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같은 편지의 조금 뒤편에서, 마치 자신만의 '바벨'을 가진 듯한 기분이라고 자랑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본문은 슬라보미르 코프라(Sławomir Kopra)의 『노벨상 수상자들』에서 발췌한 글이며, 하르데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