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주법 시대, 불법 주류 소비는 뉴요커들의 최고 오락거리였습니다. 오히려 사교 모임이나 비즈니스 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것이 어색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질 정도였죠. 미국인들은 불법 술의 운송, 유통, 소비를 일종의 '국민 스포츠'처럼 여기며 즐겼습니다.
미국 헌법 수정 제18조가 통과되고 비준된 직후,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금주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술자리는 큰 즐거움이었고, 그들은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금주법, 오히려 잔을 향한 역설적 유혹이 되다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의 많은 주민들이, 이전에는 술을 멀리하던 사람들마저 엄청난 양의 알코올을 마시기 시작했고,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인기 만화가이자 금주법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로버트 벤즐리(Robert Benchley)의 사례입니다. 그는 작가 도러시 파커(Dorothy Parker)와 함께 외출 중 '무슨 난리인지 한번 직접 확인해보자'는 마음으로 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스카치 위스키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1920년대 말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간염 합병증이 그의 사인이 되었다니, 실로 아이러니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주법 시대, 배럴에서 술을 따르는 모습
1. 처방전 위스키
약용 목적으로 위스키를 생산하던 증류소는 합법적으로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알코올 함유 의약품 제조업체들도 금주법 시대 내내 자유롭게 활동했고, 의사들은 환자에게 위스키를 처방할 수 있었으며 환자는 '약'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1933년까지 의사들이 고도수 '약품'을 처방한 횟수는 무려 600만 건에 달했습니다.
2. 유대교로 개종할 가치가 있었다
술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을 보장받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랍비가 발급한 증명서를 근거로 유대인 가정에는 매월 와인이 배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주법 시행 불과 1년 만에 유대인 가정의 수는 10배나 늘었고,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랍비의 수는 더욱 폭증했습니다. 심지어 흑인과 이탈리아계 랍비들도 등장했습니다.
3. 밀주(Bootlegging)
밀주, 즉 술 밀수는 금주법 시대에 크게 번성했습니다. 선박에서는 럼, 위스키, 진이 합법 화물 사이에 숨겨져 운송되었고, 열차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위장한 짐칸 가득 위스키가 실려 다녔습니다.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단속 요원들이 적발한 불법 주류는 전체의 5%에 불과했으며, 많은 경찰관이 밀수 과정 전반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1924년 한 해 동안 미국 내 밀주 규모만 4천만 달러로 추산되었습니다.

선박으로 운송되던 불법 주류, 밀주
4. 몰트 추출물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조장은 몰래 맥주를 팔았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양조업 거물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현명하게 헤쳐나갔습니다. 완성된 제품 대신 몰트 추출물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몰트를 맥주로 가공할 수 있었기에, 수많은 가정에서 이 황금빛 음료를 직접 만들어 마셨습니다.
5. 공업용 알코올 재처리
공업용 알코올 1갤런을 희석하고 착색하면 '배에서 갓 내린' 스카치 위스키로 팔릴 수 있는 술 3갤런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매년 1,500만 갤런의 고품질 공업용 알코올이 가짜 식용주로 재처리되었습니다. 이후 당국은 이 불법 주류 공급원을 차단하려 조치를 취했지만, 금주국(Prohibition Bureau) 국장 본인이 이 범죄 행위가 한창 절정이라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6. 지하 증류소
어둠속의 지하 증류소들은 저가 술 생산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불법 주류는 공업용 알코올에서 나온 것보다 무려 8배나 많았습니다. 술 생산에는 옥수수 설탕이 필수적이었는데, 1919년부터 1929년까지 10년간 옥수수 설탕 수요는 6배나 급증했습니다. 참고로 이 제품의 합법적 용도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옥수수 설탕은 주로 부번, 이른바 '콘 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짜 술의 출처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독성이 있는 술을 마시면 중독, 마비, 실명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메이카 진저'를 마신 사람들은 '제이크 다리(Jake Leg)'라 불리는 질병에 걸렸는데, 신경과 근육이 손상되어 팔다리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제한되거나 완전히 상실되는 무서운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압수된 밀주를 지키는 경찰관. 미국인들은 이를 문샤인(moonshine) 또는 마운틴 듀(mountain dew)라고 불렀습니다.
7. 가정 양조장
각 가정에서도 직접 술을 만들었습니다. 맥주, 와인, 더 독한 술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자가 양조주는 문샤인 또는 마운틴 듀라고 불렸습니다. 가장 간단한 증류 장비는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생산 재료는 거의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으며, 양조 레시피는 도서관마다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소규모 가족 사업체들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첫 번째 고객은 이웃들이었고, 술이 정말 좋다는 평판이 나면 해당 가정은 지역 명성을 얻어 새로운 단골손님들이 몰려들었으며, 심지어 경찰이 뇌물 명목의 돈과 술을 받으러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가정 양조장이 너무 잘 되어, 본래 직장을 그만두고 이 새롭고 더 수익성 높은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독특한 유통 아이디어도 등장했습니다. 뉴욕의 한 가족은 우유 배달 차량과 똑같이 생긴 차를 타고 매일 위스키를 배달했는데, 하얗게 칠해진 우유 용기에 술을 담아 나눴습니다.
8. 스피캐시 바(Secret Bars)
뉴욕시에만 금주법 시기에 3만 개가 넘는 불법 술집이 영업했고, 진 칵테일 한 잔에 75센트를 받았습니다. 물론 경찰에게는 이런 술값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부 술집은 경찰 검문에 대비한 은밀한 숨김 공간을 갖추고 있었고, 어떤 곳은 벽으로 공간을 나눠 특별한 방에서는 선별된 손님에게만 술을 제공하여 경찰이 접근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경찰이 지하 양조장에서 발견한 장비들
9. 가짜 상점
뉴요커들은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불법 술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고. 이발소에서도, 구두 수선공에게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물건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 가짜 상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맨해튼의 루 알퍼른(Lou Alpern)은 수정 제18조 통과 전까지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지만, 금주법이 시행되자 5층 건물의 사업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상점 진열대에는 콜라 병만 진열되어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오직 술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성공은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경찰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했겠죠.
10. 스타킹 속의 힙 플라스크
플라스크는 사교 행사와 스포츠 경기에 미국인들이 빠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남성들은 주머니에 술병을 넣고 다녔고, 여성들은 스타킹(양말) 속에 숨겼습니다. 힙 플라스크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주법 시대의 불법 주류 소비는 뉴욕 같은 대도시 주민 모두의 주요 오락이었습니다. 좋은 집안의 아가씨들은 사교 모임에서 술을 홀짝였고, 관리들은 공무 출장 중에도 진을 마셨으며, 웨이터들은 호텔 객실로 술을 배달했습니다. 불법 술을 파는 문 닫힌 가게들은 곧바로 새로운 장소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건조한(dry)' 미국을 추구하던 당국과 금주법 지지자들에게 금주법 시대는 돌풍과 싸우는 돈키호테와 같은 헛된 싸움이었던 셈입니다.
참고 자료:
- E. Winnicka, Rebellious New York. Freedom During Prohibition, Sign Literanova 2019
- M. A. Lerner, Dry Manhattan, Prohibition in New York City,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 M. A. Jones, Historia USA, Gdańsk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