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법의 약초부터 라텍스 콘돔까지 –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이어진 피임의 놀라운 역사

천연 달임약, 매운맛의 영약, 정성껏 준비된 동물의 배설물까지… 고대 조상들이 사용하던 피임법은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의외로 효과가 있던 경우도 있었다.

중세의 피임 방법

계율과 신조, 종교적 교리와 독실한 신앙심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중세 철학은 사람들의 성(性)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지만, 실제로는 육체적인 피임 방법도 사용되었다. 비록 중세 교회가 임신을 피하는 행위를 극도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위험은 있지만 효과가 있는 중단 사정(질외 사정)을 활용했다. 또한 백합 뿌리나 쑥을 질에 삽입하는 관습도 있었다. 동유럽, 특히 발칸 지역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수정을 막는다고 여겨졌는데, 일부 여성들은 쑥의 향기가 구애자를 더 끌어당긴다고 믿었다.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이 이 허브로 장식된 화관을 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마법의 약초부터 라텍스 콘돔까지 –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이어진 피임의 놀라운 역사

중세에도 원치 않는 임신을 막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침습적인 피임법도 알려져 실천되었다. 예컨대 여성들에게 임신을 막기 위해 산 벌을 통째로 삼키라고 권하기도 했다. 오늘날 독일 지역의 일부 공국에서는 밀랍 원판을 사용하는 관행이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농장 동물, 대개 노새나 황소의 고환을 갈아 만든 달임약을 마시라고 권했고, 민트나 노간주나무 같은 허브 팅크처도 시도했다. 임신이 건강뿐 아니라 생명의 위험까지 안고 있었던 여성들의 희생과는 대조적인 대목이다. 당시 여성의 가장 흔한 사인이 바로 출산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치명적이기도 했다.

극동과 인체의 비밀

기독교 사제들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도 욕망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 불교 승려들은 '바즈롤리 무드라(vajroli-mudra)'라 불리는 수행법을 권했는데, 명상 과정에서 나팔관의 내강을 완전히 의식적으로 좁히거나 닫는 것이 핵심이었다. 몸을 하나의 사원으로 보는 이 관점은 하타요가(Hatha yoga)의 기본으로, 이는 서기 1세기 산스크리트 서사시 '이티하사'에 처음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호르몬 연구에 기반한 의학의 선구자는 아시아인들이었다. 약 2,000년 전 중국인들은 여성의 소변을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증발시켜 여성 호르몬을 분리하려 했다. 현대 과학자들도 매우 유사한 원리로 작업하지만, 물론 완전히 다른 기술을 사용한다. 무기 염류를 함유한 소변은 마사지에도, 효과적인 상처 치료제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중국 제국 영토에 살던 어린 소녀들 역시 수 세기 동안 특수하게 가공한 대나무 종이 원판으로 수정을 막는 방법을 실천했다.

건강한 황홀경을 위한 도구? 달팽이 껍데기…

기계적인 피임 도구는 이미 파라오의 나라에서 알려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만 찾은 것이 아니라, 남성들 역시 성병 감염 위험을 제거해 건강을 지키려 했다. 이를 위해 최고급 재료로 만든 최초의 콘돔이 등장했는데, 은도금 제품이 대표적이며, 달팽이 껍데기 같은 저렴한 대체품도 함께 사용되었다.

마법의 약초부터 라텍스 콘돔까지 –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이어진 피임의 놀라운 역사

피임법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15세기 무렵 실크 콘돔이 사용되었고, 특수하게 기름을 먹인 종이, 때로는 어린 양의 창자를 뒤집어 쓴 것도 활용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잘 손질된 거북 창자나 염소 뿔 껍질을 사용했다. 적절한 사용 규칙뿐 아니라 도구의 재질과 품질까지 개발하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다 – 카사노바의 콘돔

16세기 유럽에서 매독 같은 각종 전염병이 무참히 목숨을 앗아가면서, 사랑의 기술은 한층 신중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8세기, 모험가이자 여행가, 작가로 유명한 자코모 카사노바(Giacomo Casanova)가 자신의 저서 『내 인생의 역사』에서 음경에 씌우는 양가죽 덮개의 사용을 기술했다. 오늘날 카사노바는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연인의 원형으로 기억되지만, 베네치아 출신의 이 인물은 실제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인은 요로 감염이었다. 이후 몇 세기 동안 콘돔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텍스의 기적 – 경쟁사는 터져라!

최초의 라텍스 콘돔은 20세기 초, 정확히는 1912년 폴란드계 유대인 혈통의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프롬(Julius Fromm)에 의해 특허를 받았다. 그때까지는 동물의 창자와 어류의 부레가 생산 공정에 사용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미 찰스 구디어(Charles Goodyear)가 라텍스 코팅을 활용했지만, 프롬의 발명품인 이음매 없이 유연한 형태만이 대중의 인식 속에서 진짜 명성을 얻었다. 이 독일 과학자는 1922년 첫 공장을 열고 "Die Konkurrenz platzt", 즉 자유롭게 번역하면 "경쟁사는 터져라"라는 슬로건으로 제품을 홍보했다.

마법의 약초부터 라텍스 콘돔까지 –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이어진 피임의 놀라운 역사

카사노바는 사랑의 정복으로 유명하다.

피임과 관련된 발견의 역사는 프롬의 발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허브 요법에서 동물 장기를 거쳐 라텍스 형태까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그리고 성적 욕망은 실험의 원동력이었다.

참고 문헌

  1. Węgłowski A., 『Centuries of Shamelessness: Sex and Erotica in Antiquity』, Znak Horyzont, 2018
  2. Dolby K., 『Fascinating Eroticism: History, Culture and Customs』, Bellona, 2016
  3. Bryson B., 『The Body: A User's Manual』, Profit i s-ka, 2019
  4. Niżnikiewicz J., 『Secrets of Old Medicine, Magic and Eroticism』, Book Marke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