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러시아 보드카의 폴란드 왕,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Alfons Koziełł-Poklewski, 1809~1890)는 19세기 시베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야금 공장과 백화점을 소유했고, 금·은 광산 개발에도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우랄 산맥 너머 최대의 주류 생산자라는 타이틀이었다. 덕분에 그는 '보드카 장군', '보드카의 왕', '독점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시베리하는 전통적으로 폴란드 민족의 수난과 유배의 땅으로 기억되지만, 수천 명의 동포들에게 이곳은 진정한 약속의 땅이 되어 주었다. 당시 시베리아에는 중등학교가 단 한 곳뿐이었고 매년 약 200명만이 입학할 수 있어, 필요에 비하면 바다의 물방울에 불과했다. 비텝스크 현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관직에 있던 코지엘-포클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국가 기관만이 화려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열어 준다고 판단했다.

좋은 시작

1837년 알폰스는 우랄로 향했다. 처음에는 톰스크 주청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곧 더 나은 보수를 받는 자리로 빠르게 승진했다. 군납 물품과 주류 무역을 감독하는 특별 임무 담당 관리 등을 맡았으며, '흠 없는 근무'에 대한 여러 국가 포장도 수상했다.

러시아 보드카의 폴란드 왕,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는 19세기 시베리아 최고의 부호 반열에 올랐다

동시에 그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843년, 아직 관직에 재직 중이던 그는 배 한 척을 구입해 개조했고, 2년 뒤에는 시베리아 역사상 최초의 정기 내륙 항행을 시작했다. 1846년에는 시베리아 상인 스비초프와 함께 운송 회사를 설립하여 이르티시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 등 시베리아 최대 하천의 항해권을 확보했다.

그는 군대 물자 조달에도 힘을 쏟았다. 1853년부터는 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해 튜멘과 토볼스크에 대형 백화점 두 곳을 세우고, 러시아 최초의 인(燐) 공장을 열었다. 금·은 광산 여러 곳과 유리 공장, 황산 공장, 도자기 공장의 소유자가 되었고, 1878~1882년에는 우랄 지방의 대형 에메랄드 광산을 임차하기도 했다.

독점의 왕

그가 가장 큰 평판을 얻은 분야는 단연 주류 생산이었다. 1869년 낡은 증류소 하나를 매입해 투자하고 빠르게 수익성을 회복시켰다. 이후 몇 년간 손실을 감수하기보다 회사를 팔기를 택한 경영자들의 파산 기업 여덟 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이렇게 알폰스 포클레프스키-코지엘은 자신만의 보드카 제국을 세웠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 제국은 연간 맥주 약 80만 베드로(vedro, 러시아 전통 부피 단위로 약 12.3ℓ)와 증류주 80만 베드로 이상을 생산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그는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선술집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맥주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바이에른식, 빈식, 러시아식 등 다양한 종류를 선보였으며, 가격은 저렴하면서 품질은 높았기에 그의 맥주는 국내외 박람회에서 수많은 상과 메달을 받았다.

러시아 보드카의 폴란드 왕,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으면서도 자선 활동에도 힘썼다

우랄 너머에서는 포클레프스키-코지엘의 보드카와 맥주가 모든 음식점과 마을에서 팔렸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경쟁자들은 그의 불공정한 사업 방식을 국가 기관에 고발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첫째, 이 폴란드인의 공장 제품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었다. 둘째, 포클레프스키-코지엘은 비즈니스계에서 너무 높은 지위에 올라 있어 이런 항의가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의 영향력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의 역 하나를 그의 요청에 따라 예카테린부르크 근교, 즉 그의 기업들이 대거 자리한 지역에 배치할 만큼 막강했다.

영광과 몰락

포클레프스키-코지엘은 폭넓은 자선 활동도 펼쳤다. 학교, 병원, 도서관을 지원했고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성당을 세웠다. 자신의 거처로 삼은 탈리차 마을에는 남학생 학교를 설립해 운영비 전액을 부담했다. 1881~1882년에는 야루토롭스크의 3년제 김나지움 신축 건물의 주요 후원자가 되었다. 모스크 부설 학교도 지원했고, 튜멘 시의 하수도 건설 비용도 댔다.

러시아 보드카의 폴란드 왕, 알폰스 코지엘-포클레프스키

그는 예카테린부르크에도 화려한 본사 건물을 지었다. 지역 관료들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고위 인사들이 그곳을 찾았다. 이 폴란드인의 독특한 면모는 러시아 작가 드미트리 마민-시비랴크를 매료시켰고, 그는 소설 속 기업가 캐릭터—『백만 상속』의 라홉스키와 『빵』의 마이슈타브로프스키—의 모델로 그를 삼았다.

1890년 알폰스는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그는 부동산 19곳과 주택 56채를 소유했다. 계좌 잔고는 140만 루블, 부동산 가치는 160만 루블이었다(현재 가치로 각각 약 2억 2,000만 달러, 약 2억 5,000만 달러 상당).

그의 후계자들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이 제국을 운영했으나, 혁명으로 재산이 국유화되었다. 이 폴란드 가문은 1919년 러시아를 떠났다.

뿌리로의 회귀

새 집권자들은 차르 시절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포클레프스키-코지엘 가문의 본사 건물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이 폴란드 기업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예카테린부르크의 가문 옛 저택에는 포클레프스키-코지엘 가문의 유품을 모아 전시하는 방이 마련되어 있다.
국유 주류 기업들은 민영화되었고, 그중 자보두콥스크에 위치한 한 업체의 주인들은 창업자를 기리고자 1995년부터 '포클레프스키' 보드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4월 15일 벨로나(Bellona)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러시아를 놀라게 한 폴란드인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