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볼레스와프 2세는 '대담공'일까 '관대공'일까? 별명 뒤에 숨겨진 진실

볼레스와프 2세는 '대담공'일까, '관대공'일까?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폴란드 제3대 국왕을 '대담공'이라 불렀다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그 때문에 감점까지 당하셨나요? 이제 와서 성적표의 점수를 되돌려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편히 쉬실 수는 있습니다. 사실 당신이 옳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수백 년 동안 볼레스와프는 '대담공'으로 불려왔습니다. 분할 시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그렇게 묘사했고, 20세기 초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는 드라마에서 그렇게 호칭했으며, 1971년 극영화 제작자들 역시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 오랜 관습에 종지부를 찍은 이는 전후 유일한 이 군주의 전기를 저술한 역사가 타데우시 그루진스키였습니다.

'전통에 대한 존중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기준은 볼레스와프 2세의 이름과 함께 이 별명이 등장하는 사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12세기 초 익명의 갈(Gallus Anonymus)이 집필한 최초의 폴란드 연대기에서 '관대공(Szczodry)'이라는 용어가 여러 차례 명확하게 별명 혹은 애칭으로 등장합니다. 반면 '대담한', '호전적인', '거친'과 같은 왕에 대한 다른 표현들은 연대기 작성자가 서술어적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볼레스와프 2세는  대담공 일까  관대공 일까? 별명 뒤에 숨겨진 진실

불충한 아내들을 박해하는 인물로 그려진 볼레스와프 대담공.

그루진스키의 설명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음에도, 역사학계와 학교 교과서 양쪽에서 모두 받아들여졌습니다. 문제는 이 설명이 아마 정확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익명의 갈은 누구를 조롱했나?

볼레스와프의 관대함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익명의 갈이 전한 탐욕스러운 성직자 이야기 덕분입니다. 바로 이 짧은 한 단락 안에서 연대기 작성자는 'Rex Largus', 즉 '관대한 왕'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무려 네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루테니아 원정 이후 군주가 공개한 막대한 보물 가운데 일부를 훔치기 위해 궁정을 찾은 성직자입니다. 그는 '눈으로 그토록 많은 돈을 흡족하게 삼키며' 기뻐했다고 전해집니다.

왕이 사람 하나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보물을 가져가도록 허락하자, 그 남자는 탐욕스럽게 망토에 금을 가득 채웠습니다. 너무 많이 담은 나머지 망토가 찢어지고 전리품이 땅바닥에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관대한 볼레스와프는 자신의 망토를 그에게 건네주고 막대한 재물과 함께 떠나보냈습니다.

볼레스와프 2세는  대담공 일까  관대공 일까? 별명 뒤에 숨겨진 진실

1971년 극영화에서 볼레스와프 대담공 역을 연기한 이그나치 고골렙스키.

역사가들은 이 일화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해왔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유쾌한 일화'였고, 다른 이들에게는 세속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직자들을 향한 풍자였으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가난한 이들을 돌볼 의무를 다하는 왕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저작 『Domus Bolezlai. 피아스트 왕조 전통을 찾아서』에서 프제미스와프 비셰프스키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익명의 갈은 애초에 왕을 칭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찬사인가, 조롱인가?

이 수수께끼의 열쇠는 일화의 마지막 문장들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관대한 왕은 성직자에게 금과 은을 그토록 많이 실어주었건만, 성직자는 더 실으면 목이 부러질 거라고 외쳤습니다.'라고 익명의 갈은 적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왕은 명예를 위해 살고, 부유해진 가난한 자는 떠난다.'

비셰프스키에 따르면, 저자가 사용한 어휘와 문법 구조는 이러한 통상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오히려 익명의 갈은 '왕은 명예를 위해 살고, 부유해진 가난한 자는 죽었다'고 썼다는 것입니다. 연대기 작성자가 그토록 끈질기게 볼레스와프의 관대함을 강조한 이 일화 전체는, 결국 왕을 겨냥한 미묘하고 아이러니한 공격이었다는 것입니다. 피아스트 왕조의 일원을 노골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볼레스와프가 왕위에서 쫓겨난 것은 마땅한 결과였고 왕조의 젊은 계보가 권력을 이어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볼레스와프 2세는 1076년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했지만, 1079년 크라쿠프의 스타니스와프 주교와의 갈등 끝에 왕위에서 쫓겨나 망명지 헝가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익명의 갈이 활동하던 시점에는 이미 그의 추방은 역사가 되어 있던 셈입니다.

브로츠와프 출신의 이 역사가에 따르면, 익명의 갈의 텍스트 다른 부분에서도 유사한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볼레스와프의 군사적 성공을 칭찬할 때, 사실은 패배와 결함을 묘사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왕을 본받으라고 권할 때, 오히려 '관대한' 군주의 실수에서 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최초의 폴란드 연대기의 저자가 군주를 '관대공'이라 불렀다는 사실 자체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별명이 정말 하나의 커다란 농담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계속 그렇게 불러야 할까요?

볼레스와프 2세는  대담공 일까  관대공 일까? 별명 뒤에 숨겨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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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다른 버전은 잡지 '뉴스위크 히스토리아(Newsweek Historia)' 2015년 8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