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 표절 논란과 숨겨진 역사

누구나 아는 자동차, 하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 업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역사상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생산된 자동차를 알고 있다. 특유의 둥근 몸체를 지닌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은 첫눈에 친근함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그런데 과연 이 디자인은 정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순수한 창작물이었을까?

히틀러의 주문, '국민차' 프로젝트

1933년, 아돌프 히틀러는 이미 여러 프로젝트로 명성이 높았던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폭스바겐(Volkswagen)', 즉 국민을 위한 자동차를 설계해 달라고 의뢰했다. 요구 조건은 꽤 단순했다. 가족 단위 승객을 시속 약 100km로 운송할 수 있어야 하고, 제국의 평균적인 시민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파카르테(Sparkarte)' 프로그램 덕분에 구매 절차 또한 매우 쉬워졌다.

포르쉐의 시제품들을 거친 일련의 테스트 끝에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아마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곧 드러나듯, 독일 국립 과학예술상이라는 영예는 설계자의 양심에 무거운 짐을 안겨주었다. 왜일까? 그 답은 독일 밖, 체코슬로바키아에 있었다…

저렴하고 좋은 차, 타트라

'대중을 위한 저렴한 자동차'는 1930년대 초부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개발되고 있었다. 한스 레드빈카(Hans Ledwinka)가 이끄는 엔지니어 팀은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사용하기 쉬우며 최대 5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차량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놀랍지도 않다. 이것은 유사점의 시작에 불과하니까!

그 결과 보닛, 휠 아치, 지붕이 둥근 형태에 돌출된 원형 헤드라이트를 갖춘 시제품 타트라 V570(Tatra V570)이 탄생했다. 이 차에는 뒷좌석 뒤에 장착된 공랭식 2기통 수평대향 엔진이 얹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뒷좌석 뒤에 숨겨진 엔진으로 냉각 기류를 유도하는 혁신적인 기술 솔루션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 , 표절 논란과 숨겨진 역사

타트라 V570의 최종 디자인

V570 이후 대량생산 모델인 타트라 T77과 T97이 등장했다. 차체 라인만 한 번 봐도 연상되는 것이 있다. 바로 비틀이다! 흡사한 외관뿐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두 차의 '내장' 역시 매우 유사했다. 타트라와 비틀 모두 피스톤이 수평으로 배치된 엔진을 뒤쪽에 장착하고 공랭식으로 냉각했는데, 덕분에 저온 환경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폭스바겐 시제품이 1935~39년에야 테스트를 거친 반면, 타트라 T77과 T97은 1934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효율적인 '문제 해결'

베른하르트 리거(Bernhard Reiger)의 저서 『국민차(The People's Car)』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히틀러는 최종 차량 설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후륜 엔진 장착에 대한 그의 초기 반대는 최종 제품에 흔적도 남기지 못했으며, 시제품의 실루엣은 1934년 3월 포르쉐와의 회담에서 독재자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는 스케치와도 전혀 달랐다." 고탐 센(Gautam Sen)은 『Million Cars for Billion People』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레드빈카는 포르쉐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포르쉐는 KdF-Wagen에 많은 타트라의 설계 솔루션을 활용했다. 이는 포르쉐의 설계를 공랭식 후륜 엔진, 수평 피스톤 배치, 공기역학적 차체 스타일을 갖춘 소형 타트라 T97과 비교해 보면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도 자동차 표절의 결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포르쉐는 1937년 독일 국립 과학예술상(나치판 노벨상)을 수상했고, 당연히 설계자에게는 막대한 상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양심은 갉아먹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 , 표절 논란과 숨겨진 역사

포르쉐 TYPE 60, 1938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동료들에게 현금으로 보상하고 싶어 했지만, 히틀러가 문제를 대신 해결해 버렸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타트라 공장을 제국 재산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 간단한 방법으로 피해를 입은 레드빈카와 그의 엔지니어들에 대한 빚 논쟁은 강제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말년은 꽤 처참했다.

불의의 엔진, 전쟁

포르쉐는 1945년 프랑스군에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석방된 후에도 고향에서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다. 날로 인기를 끌던 폭스바겐 비틀이 5만 대, 10만 대 생산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에조차 초대받지 못했다.

레드빈카 역시 독일과의 협력 혐의로 투옥되었다. 1951년에야 석방되었고, 명예는 사후인 1990년대 초에야 완전히 회복되었다.

실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부터 타트라는 특허 침해를 이유로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무력 점령은 그런 논의를 일말의 여지도 없이 차단해 버렸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타트라 공장이 접수되자마자 레드빈카의 승용차 생산은 즉시 중단되었고, 대신 대형 화물차와 디젤 엔진 생산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1961년에야 마무리되었는데, 폭스바겐이 타트라에 300만 마르크의 보상금을 지급하면서였다.

참고 문헌

  1. Reiger, B., The People's Car.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13.
  2. Sen, G., Million Cars for Billion People. Platinum Press, Mumbai,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