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얼굴
얼마 전 우리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총리가 정치뿐만 아니라 회화에도 깊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그는 20세기 가장 눈물이 많은 정치인이었으며, 베니토 무솔리니 살해 사건의 배후에 있던 어두운 인물일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그렇다면 그 밖에는 어떤 일화가 있을까요?
엘리트 출신 수상의 '벽돌공' 커리어
윈스턴 처칠의 삶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중 하나는 바로 벽돌공(mason) 경력입니다. 영국 상류 엘리트 출신인 이 저명한 정치인은 종종 손에 흙 묻는 일을 즐겼습니다. 1922년에 구입한 자신의 저택 차트웰(Chartwell)에서 연못과 정자 등을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작업은 고용한 인부들이 맡았지만 처칠은 수영장 확장 공사만큼은 직접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수지 둘레는 벽돌과 돌로 쌓아 올렸습니다. 그의 경호원 월터 톰슨(Walter Thompson)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명백히 윈스턴은 장인이었고 나는 로봇이었다. 내가 다량의 모르타르(회반죽)를 섞어도 그가 사용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보통 남들이 흙손으로 발라 넣을 곳이라면 윈스턴은 삽으로 처리했다."
차트웰 저택에서 휴식 중인 처칠. 방금 벽돌 공사를 마쳤을지도 모른다 (출처: The First Pint)
이 소식은 런던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신문들은 처칠의 벽돌 쌓기 모험을 기사로 실었습니다. 영국 벽돌공 노동조합의 서기 조지 힉스(George Hicks)도 이 사건에 주목했습니다. 기회라고 판단한 그는 언론에 이름을 낸 의원에게 조합 가입을 제안했고, 처칠은 당연히 승낙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비까지 성실히 납부했습니다.
『처칠의 경호원』(Churchill's Bodyguard)의 저자 톰 힉먼(Tom Hickman)이 설명하듯, 이 일의 요점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노조 카드 없이 벽돌공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데 있었습니다(87쪽).
그러나 상황은 금세 복잡해졌습니다. 단 몇 주 만에 조합원들은 "장관은 장인이 아니다"라며 반발했고, 그 압력에 가입 초대는 철회되었습니다. 분이 삭지 않았던 처칠은 누가 옳은지 증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노조 회원증을 돌려주기를 끝내 거부한 것입니다. 게다가 다음 날에는 현지 건축업자를 고용해 부지에 새 건물을 짓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이 그의 지도 아래 일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82쪽).
화살처럼 곧은 벽!
물론 바쁜 정치인이 실제로 공사장을 방문할 만한 한가한 순간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경호원이자 친구였던 월터 톰슨의 회상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톰슨, 같이 갑시다. 좀 벽돌을 쌓아 볼까 하는데." "당신이 쌓으세요, 저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데?" 그가 되물었습니다. "저는 노조 조합원이 아니거든요. 될 생각도 없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셔서 구경만 하세요."
우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으로 갔다. 우리는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내가 그가 임시 바닥에 올라서는 것을 도왔다. 건축업자가 합류해 윈스턴에게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가 세워야 할 것은 외벽에서 건물 중앙까지 이어지며 두 개의 방을 나누는 내벽이었다.
윈스턴 처칠과 충직한 경호원 월터 톰슨 (예시 삽화, 출처: Tom Hickman, 『Churchill's Bodyguard』, Replika 2011)
윈스턴은 오전 내내 열심히 작업해 벽이 허리 높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집에서 종이 울려 그는 점심 먹으러 자리를 떴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건축업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벽 좀 보세요. 한 겹만 더 쌓으면 통째로 무너질 겁니다."
나는 절반쯤 쌓인 벽을 바라보았다. 지면에서부터 한 층 한 층 갈수록 기울어져, 벽이 완만한 아치 모양으로 솟아 있었다.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벽돌 문제로 이미 충분히 상처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한 상태의 벽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허무세요. 그리고 점심 시간 동안 다시 쌓으세요." "절대 허물지 않겠습니다"라고 건축업자는 버텼다. 결국 내가 직접 허물었다.
느긋한 처칠이 식사를 마치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던 월터는 새롭고 반듯한 벽이 세워지도록 확실히 해두었습니다. 결국 상사가 돌아왔고, 그는… 자신이 한 작업의 품질을 검사하기로 했습니다.
처칠이 사다리 꼭대기에 나타났다. 건축업자와 그의 조수들은 무관심한 척하려 애썼다. 그는 내 팔을 붙잡고 바닥 중앙으로 끌고 가, 우리는 벽 끝에서 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벽의 한쪽 면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내 주위를 돌아 반대편에서 구조물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나를 비켜서게 한 뒤, 벽 끝에 딱 서서 벽 윗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나는 불안하게 건축업자를 쳐다봤고, 그도 나를 쳐다봤다. "보세요 톰슨!" 윈스턴이 외쳤다. "첫 시험인데 화살처럼 곧게 나왔잖아!" 건축업자는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윈스턴은 크게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뭐가 좀 아파요"라고 벽돌공이 대답했다(82~83쪽).
…그리고 1920년대풍 정치 쇼
처칠은 아마 자신이 쌓은 벽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험 덕분에 건축에 대한 열정이 생긴 듯합니다.
이후 그는 꽤 능숙한 벽돌공임을 입증했습니다. 차트웰 채소밭을 둘러싼 길고 높은 담장을 거의 혼자 힘으로 쌓아 올렸고, 정원에는 "메리의 집(Mary's Cottage)"이라 불리는 미니어처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소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몇 년 후에 등장합니다. 앞서 인용한 톰 힉먼의 말입니다.
어쩌면 그를 벽돌공 직능조합에서 제명하려 한 것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뒤 조합이 벽돌 시급 인하를 추진하자, 처칠은 하원에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자신이 직접 더 빨리 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이 이를 의심하자, 훗날의 총리는 벽돌과 모르타르를 웨스트민스터 궁전 마당으로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수많은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합이 제안한 기준보다 빠른 속도로 완벽한 벽 하나를 세워 보였다(87쪽).
정말 쇼맨 기질이 남다른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출처
이 글은 톰 힉먼(Tom Hickman)의 『처칠의 경호원』(Churchill's Bodyguard, Kamil Janicki 번역, Replika 출판사 2011)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