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조산사 대 외과의사, 혹은 분만실 전쟁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근대까지 산과(産科)는 여성들의 영역이었다. 이 상황은 18세기 중반까지 변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는 험한 몸싸움이 따랐다...

조산사라는 직업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임신과 출산을 돕는 여성들의 업무와 행동 방식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다. 이 문서는 이집트학자 게오르크 에베르스가 1873년에 구입했으며, 제작 시기는 기원전 1550년경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700년경의 웨스트카 파피루스(Westcar Papyrus)에도 출산 관련 내용이 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분만 예정일 계산법과 다양한 종류의 분만 의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조산사 대 외과의사, 혹은 분만실 전쟁

남성이 출산을 집도하는 일은 오랫동안 큰 논란을 낳았다.

중세 시대에도 출산은 여전히 여성의 일이었지만, 정작 산과 실습에 관한 권고와 규정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남성들의 몫이었다. 결국 변혁이 일어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너무 많이 본 남자

"분만실에 들어가는 남자는 불온한 존재로 여겨졌지만, 정작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추측성 조언을 담은 지침서를 집필하고 퍼뜨린 것은 남성들이었다." 랜디 허터 엡스타인(Randi Hutter Epstein)의 『Get Me Out: 에덴동산에서 정자은행까지, 출산의 역사』에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출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기록된 최초의 시도는 비극으로 끝났다. 1522년, 함부르크의 베르트(Dr. Wert) 박사는 여장을 하고 분만실 문을 넘었다. 하지만 그는 발각되어 화형에 처하는 형벌을 받았다!

조산사 대 외과의사, 혹은 분만실 전쟁

앙브루아즈 파레는 뛰어난 외과의사였지만 산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준 듯하다. 앙리 2세,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등 국왕들을 치료했던 저명한 프랑스 외과의사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 역시 산과에 주목했다. 16세기 중반, 그는 고대부터 전해지던 태아 회전술, 즉 출산 전 아기를 돌려 눕히는 기술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루이 14세 국왕도 변화에 한몫했다. 그는 사생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남성 조산사를 고용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남성이 출산을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합법적이지 않았다. 이 상황이 바뀌기까지는 18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복장 문제

물론 이 과정에서 남성 우월주의와 외설적인 생각이라는 비난이 오갔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18세기에는 남성 조산사가 더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출산을 돕는 일에는 여성의 능력을 넘어서는 의학적 기술과 도구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성들은 갓 생겨난 의사들이 그저 알몸을 보고 싶어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 네이선 벨로프스키(Nathan Belofsky), 『옛날에는 어떻게 치료했을까: 이끼 충전물과 다른 이야기들』에서

여기서 영국 최초의 남성 조산사 중 한 명이 된 스코틀랜드 산부인과 의사 윌리엄 스멜리(William Smellie)의 모습이 등장한다. 물론 초반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진료를 받던 산모의 집 문 앞에서 소요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산사 대 외과의사, 혹은 분만실 전쟁

윌리엄 스멜리

그래서 스멜리는 비극적으로 죽은 베르트를 본받아 여장을 하기 시작했고, 제자들에게도 같은 방식을 권했다. 넉넉한 앞치마 주름 속에는 도구를 숨길 수 있어 꽤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출산 자리를 두고 벌인 다툼의 반대편 진영에는 당대 유명한 조산사 엘리자베스 니힐(Elizabeth Nihill)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남성들이 '숙녀'의 해부학에 보이는 갑작스러운 관심과 잔혹한 술책을 비판했다. 결국 그녀는 패배했고, 출산을 집도하는 신사들은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다만 분만 과정이 편안한 가정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 심각한 실수로 판명되긴 했다!

나쁜 기운

조산사로 활동한 남성들은 여러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그중 일부는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남자가 직접 출산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도 없으니 분만을 집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냈다. 많은 반대론자들은 물론 성경을 인용하며, 남자가 출산을 집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비난은 흔한 남자의 질투에도 미쳤다. 조산사는 남의 영역에 침입한 '침입자'로 취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남성식' 기술의 오류를 지적하는 이성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도구를 사용한 것은 바로 남성 조산사들이었다. 병원의 위생 상태를 감안하면 이런 행위는 감염 위험만 높였고, '여성식' 기술로 진행된 분만에는 이런 추가 위험이 없었다. 게다가 여성들의 민간 지식보다 과학적 접근을 앞세운 남성들은 병원 출산을 권했다.

조산사 대 외과의사, 혹은 분만실 전쟁

남성 조산사들이 여성보다 불필요한 도구를 더 자주 사용했다

1846년, 헝가리 의사 이그나츠 젬멜바이스(Ignaz Semmelweis)는 남성 의사가 근무하는 분만 병동에서 여성 조산사가 담당하는 병동보다 산모 사망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조사를 벌였고, 원인이 바로 손을 씻지 않는 무경험 의사들 때문에 발생한 산욕감염 유행병임을 밝혀냈다. 부검실에서 나오자마자 임산부 진찰로 곧장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무대에 등장한다. 프랑스의 이 과학자는 산욕감염의 병리를 규명하고 위생 개선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 영향은 의학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세상은 세균에 대한 지식을 배워 받아들였고, 현대적인 분만 방식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갓난아기를 맞이하는 사람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말이다.

참고 문헌

  1. Belofsky, N., How Was Treated Before, i.e. moss fillings and other stories. RM publishing house, Warsaw, 2014.
  2. Hutter Epstein, R., Get Me Out: A History of Childbi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he Sperm Bank. W. W. Norton & Company, 2010.
  3. Nelson, A., Men and Women in Midwifery. Wonders and Marvels, 2008.
  4. https://www.wondersandmarvels.com/2008/12/men-and-women-in-midwifery.html, 2020년 7월 2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