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여성 발명가들
뛰어난 발명가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 마리 퀴리(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를 떠올립니다. 그녀의 현대 과학에 대한 공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역사의 기억 속에는 그녀만큼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여성 천재들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발명품을 세상에 남긴 다섯 명의 여성들을 소개합니다.
헤디 라마르(Hedy Lamarr) – 할리우드가 낳은 WiFi의 어머니
WiFi 기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헤디 라마르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같습니다. 본명은 헤드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Hedwig Eva Maria Kiesler)로, 1914년 빈에서 부유한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품었던 그녀는 뛰어난 미모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됩니다.
19살 때 논란이 된 영화 《엑스터시(Ecstasy)》에 출연하며 일약 유명해졌고, 이 영화는 파장이 워낙 커서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내 상영을 금지할 정도였습니다.

헤디 라마르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1933년, 제3제국과 무기를 거래하던 오스트리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프리츠 만들(Fritz Mandl)과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와의 인연은 물론 첨단 무기에 대한 지식까지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나치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면서 남편에게서도 멀어졌고, 결국 런던으로 도피했습니다.
런던에서 MGM의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를 만나 미국행을 권유받았고, 할리우드와 계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경력이 점차 잦아들면서 그녀는 과학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1941년, 친구이자 작곡가인 조지 안타일(George Antheil)과 함께 무선 전파를 이용한 어뢰 조종 시스템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증명했듯 이 발명은 시대를 크게 앞서간 것이었습니다. '주파수 호핑(frequency hopping)'이라 불리는 확산 스펙트럼 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다시 주목받으며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기술의 변형된 형태가 GSM 네트워크와 WiFi 표준인 IEEE 802.11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조세핀 코크레인(Josephine Cochrane) – 시간과 식기를 위해 태어난 식기세척기
식기세척기는 없으면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가전제품입니다. 1886년 조세핀 코크레인이 이 기기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이 가정주부는 맛있는 파티를 여는 것 외에도 식기를 무척 아꼈습니다. 하인들이 식기를 깨뜨릴까 걱정한 나머지 직접 접시를 손으로 씻곤 했는데, 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로 마음먹습니다.
집요함과 창의력으로 그녀는 가정 주방에 혁명을 일으킨 장치를 만들어냅니다. 정비공 조지 버터스(George Butters)가 이 작업을 도왔습니다. 두 사람은 최초의 수동식 식기세척기를 만들었고, 이후 제조 회사까지 설립했습니다. 몇 년 후에는 증기 엔진으로 구동되는 모델도 개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설계는 현대의 식기세척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표에 등장한 조세핀 코크레인
19세기 말에는 아직 온수나 수도 공급이 되지 않는 가정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세핀 코크레인의 성공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스테파니 클렉(Stephanie Kwolek) – 가벼움과 강함의 결합, 케블라
폴란드 이민자 부부의 딸인 스테파니 클렉 덕분에 우리는 케블라(Kevlar)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패션 디자인, 나중에는 의학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피츠버그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진학하려던 의대 학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습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듀폰(DuPont)에 실험 화학자로 입사했고, 그곳에서 합성 소재라는 진정한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테파니 클렉
스테파니는 라이크라(Lycra)를 포함한 다양한 소재 개발에 기여했지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것은 단연 케블라입니다. 이 폴리머는 방탄 조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활용 범위는 훨씬 넓습니다.
탁월한 강도 덕분에 케블라는 광통신 케이블, 자동차(자전거부터 항공기까지), 타이어, 스피커 진동판, 각종 의류와 신발 등 높은 강도와 가벼운 무게가 동시에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용됩니다.
레티샤 멈포드 기어(Letitia Mumford Geer) – 모든 사람을 위한 주사기
1899년, 의료계는 오늘날까지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인 의료용 주사기로 또 한 번 변모했습니다. 주사라는 행위 자체는 새롭지 않았지만, 환자 스스로 주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관습을 바꾼 사람이 바로 레티샤 멈포드 기어입니다.
그녀가 고안한 주사기는 노즐이 달린 실린더(배럴)와 약액을 주입하거나 뽑아내는 플런저로 구성됐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혁신적인 특징은 환자 치료의 개념 자체를 바꿔 놓았고, 수많은 환자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기어의 발명 덕분에 당뇨병 환자들이 스스로 인슐린을 주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녀의 특허를 기반으로 한 주사기는 의료 현장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플로렌스 파파트(Florence Parpart) – 모든 가정에 신선한 식품을
플로렌스 파파트는 모든 가정에 있는 또 하나의 필수 가전제품 뒤에 숨은 발명가입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많지 않지만, 최초의 전기 냉장고 원형은 그녀가 만든 것입니다.
1914년 발명품의 특허를 받은 뒤, 남편과 함께 새로운 기기의 대량 생산에 나섰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는 전기 냉장고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고, 전기 냉장고는 전 세계 사람들의 가정과 식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플로렌스 파파트
플로렌스가 냉장고만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15년 전인 1900년에는 최초의 거리 청소 기계(도로 청소차) 특허를 받기도 했습니다.
참고 자료
- C. Montague, Women of Invention: Life-Changing Ideas by Remarkable Women, Chartwell Books, 2018
- C. Thimmesh, Girls Think of Everything: Stories of Ingenious Inventions by Women, HMH Books, 2002
- A.L. Macdonald, Feminine Ingenuity: How Women Inventors Changed America, Ballantine Books, 1994
- S. Braun, Incredible Women Inventors, Second Story Press, 2007
-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Stephanie-Kwolek, 2020. 5. 21.
- https://www.worldsweeper.com/History/FlorenceParpartSweeperInventor1901.html, 2020.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