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비극
'낙타 소녀(Camel Girl)'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엘라 하퍼(Ella Harper)는 눈부신 서커스 스타덤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인생 뒤에는 끊임없이 비극이 따라붙었습니다.
대중오락이 꽃핀 19세기
19세기는 인류의 삶을 여러 방면에서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시기였습니다. 오늘날 대중오락의 토대가 마련된 것도 바로 이 무렵입니다. 움직이는 영상 상영회, 극장과 오페라의 거성들, 뛰어난 작곡가와 음악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대중문화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관객을 끌어모은 것은 재능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프릭 쇼(freak show)'의 스타 중 한 명이 바로 '낙타 소녀'로 불린 엘라 하퍼였습니다.
네 발로 걸어야 했던 아이
엘라 에번스 하퍼는 1870년 1월 5일 미국 테네시주 헨더슨빌에서 어머니 미네르바 앤(결혼 전 성은 차일드레스)과 목축업자 윌리엄 하퍼 사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부에게는 엘라 외에도 네 명의 자녀가 더 있었는데, 그중에는 엘라와 쌍둥이 남동생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라에게는 생애 내내 그녀를 짓누를 선천적 질환이 있었습니다.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굽는 선천적 기형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두 발로 똑바로 설 수 없었고, 사실상 일생을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엘라는 자신의 불행을 수입으로 바꾸는 데 성공해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성공조차 그녀가 갈망하는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릭 쇼는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프릭 쇼, 조롱과 동경의 무대
19세기 후반은 서커스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경기장에는 운동선수, 곡예사, 맹수들과 함께 이른바 '프릭(freaks)', 즉 각종 신체적 질환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정상'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손가락질하며 몰아세우는 잔혹한 세상 속에서 서커스는 많은 '프릭'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동시에 정당한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고 존엄하게 살아갈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엘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2세 데뷔, '낙타 소녀'의 탄생
엘라는 12세에 서커스에 입단해 세인트루이스와 뉴올리언스 일대에서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관객과 수입은 함께 늘어갔습니다. 데뷔 4년 만에 그녀는 닉클 플레이트 W.H. 해리스 서커스의 간판 스타로 발탁되어 순회공연에 나섰습니다.
무대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상당했습니다. 주급 200달러,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주당 약 5,000달러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라의 마음이 편안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낙타와 나란히 등장해야 했고, 관객들 앞에서 낙타에 빗대어 소개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붙은 별명이 바로 '낙타 소녀(The Camel Girl)'였습니다.
그녀는 신문 광고와 언론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러러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평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공연이 대단할 것 없는, 그저 예쁜 소녀가 네 발로 걷는 모습에 불과하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럼에도 엘라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관객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무대에 오른 지 8년째, 엘라는 마침내 물러나기를 결심합니다. 학비를 충분히 모았으니 교육을 마치고 보다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대를 떠난 뒤, 다시 찾아온 비극
엘라는 성공적으로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이후 거의 20년간 그녀에 대한 소식은 끊겼습니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1890년 집안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 그리고 1900년 인구조사 당시 테네시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기록뿐이었습니다.

엘라 하퍼는 19세기 호기심 쇼 서커스에서 '낙타 소녀'로 활약했습니다. 사진: 퍼블릭 도메인
그녀에게는 사랑도 찾아왔습니다. 엘라에게 반해 청혼한 남자는 사진관 회계사이자 교사였던 로버트 새블리(Robert Savely)였습니다. 두 사람은 1905년 6월 결혼했고, 결혼 10개월도 지나지 않아 딸 메이블 에번스(Mabel Evans)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요절했고, 엘라는 크게 무너졌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달래고자 부부는 테네시주 서머너군에서 데이비슨군으로 이사했고, 딸 주얼(Jewel)을 입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주얼은 생후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부부는 더 이상 가족을 늘리는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엘라의 건강도 세월이 흐르면서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녀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부부는 마지막으로 내슈빌로 이주했습니다. 로버트는 아내가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받길 바랐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낙타 소녀' 엘라 하퍼는 1921년 12월 19일,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내슈빌 스프링힐 묘지에 가족들, 그리고 요절한 두 딸과 함께 잠들었습니다.
참고 자료
- Margaritoff, The Heartbreaking Story Of Ella Harper, The 'Camel Girl' Put On Display In 19th-Century Sideshows, allthatsinteresting.com, 2021.09.02. (2022.01.17. 확인)
- Dimri, Who Was The Camel Girl? Ella Harper, The Tragic Teen Sensation, historicmysteries.com (2022.01.17. 확인)
- Lee, Ella Harper – The Untold Story of a Camel Girl, mysteriesrunsolved.com, 2021.09.09. (2022.01.17.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