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정말 그단스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1939년 9월, 시련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프랑스 정부는 폴란드와 맺은 조약상의 의무를 잊고 히틀러에 맞서 싸우는 폴란드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얼어붙은 사람들로 구성된 프랑스 사회가 애초에 '그단스크를 위해 죽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도 남아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 프랑스에는 IFOP(Institut Français d'Opinion Publique, 프랑스 여론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기관은 놀랍게도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1939년 9월까지 IFOP는 몇 차례 중요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는데, 이 조사들은 정치 엘리트가 아닌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이 유럽 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생생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뮌헨 회담 이후의 프랑스 여론
먼저 뮌헨 회담(1938년 9월 29~30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나치의 손에 넘겨 서유럽의 일시적 평화를 산 대통령 달라디에가 독일에서 돌아오자 안도한 듯 환호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에 익숙합니다.
실제로 파리의 거리는 환호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치스러운 협정에 대한 반대의 표현이었습니다. 동시에 응답자의 무려 70%가 히틀러가 추가 요구를 한다면 프랑스와 영국이 무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장 스토첼(Jean Stoetzel). 프랑스 여론조사의 아버지이자 프랑스 여론연구소(IFOP)의 설립자입니다. 그의 덕분에 우리는 프랑스인들이 그단스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여론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은 전쟁이 온다는 것을 진심으로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허커(Daniel Hucker)가 저서 『영국과 프랑스의 여론과 유화정책의 종말(Public Opinion and the End of Appeasement in Britain and France)』에서 지적하듯, 1939년 4월 응답자의 45%가 몇 달 안에 유럽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단스크를 위해 싸울 것인가'에 대한 충격적인 결과
1939년 6월에 실시된 또 다른 여론조사는 더욱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유럽 대륙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전쟁이 눈앞에 임박한 상황에서, IFOP는 프랑스인들이 그단스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몇 달 전 내건 선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히틀러가 방금 새로운 요구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핵심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프랑스는 그단스크의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레고르 댈러스(Gregor Dallas)가 저서 『Poisoned Room』에서 소개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응답자의 76%가 "예"라고 답했습니다. 반대는 17%에 불과했고, 7%는 의견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예컨대 미국과 달리 당국이 여론조사에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레고르 댈러스는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결국 전쟁으로 치닫던 마지막 몇 달 동안 사회와 1936년에 선출된 정치인들 사이에는 커다란 균열이 존재했다."("Poisoned Room", 700쪽)
냉담하다는 영국인들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영국에서도 전쟁 전에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는데—무뚝뚝하고 냉담하다는 영국인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프랑스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여론과 유화정책의 종말』에는 갤럽이 조사한 영국 응답자의 76%가 자국이 그단스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동의했다(236쪽)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프랑스와 영국 모두에서 폴란드를 히틀러의 먹잇감으로 내던진 결정은 국민이 아니라 지도층이 내린 것이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에서 정치인들이 스스로 손을 더럽히기를 꺼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