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공갈, 납치, 그리고 처형. 이는 어떤 강력범죄 조직에 대한 혐의 목록이 아니다. 바르샤바 게토 주민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설득'하기 위해 유대인 전투 조직(ŻOB) 대원들이 불가피하게 동원했던 수단들이었다.
유대인 전투 조직(Żydowska Organizacja Bojowa, ŻOB)은 1942년 10월 15일 창설되었다. 적어도 게토 봉기의 지도자 마레크 에델만(Marek Edelman)이 늘 언급해 온 날짜가 바로 이것이다. 당시 바르샤바 게토 내 사회주의 계열과 시온주의 계열의 유대인 청년들이 모르데하이 아니엘레비치(Mordechaj Anielewicz)의 지휘 아래 하나로 뭉쳤다.
ŻOB는 태생부터 정예 부대였다. 가장 규모가 컸던 시기에도 소속 전사는 겨우 수백 명에 불과했다. 더욱이 창설 초기에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려면—그것이야말로 ŻOB 창설의 목적이었으니까—무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무기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고, 고리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이 우아한 신사들, 이 우아한 숙녀들… 게토에는 돈을 뽑아낼 만한 사람이 넘쳐났다! (사진: 분데스아르히프, 1941)
그렇다면 유대인 저항운동의 젊은 지도자들은 어떤 방법을 생각해냈을까? 게토에는 여전히 현금이 넉넉한 사람들이 많고, 좋은 명분이라면 기꺼이—물론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재산을 나눌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만약 자발적으로 내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해서 '엑스(eks)'라 불리는 징발 작전, 즉 몰수 행동이 탄생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엑스' 작전의 실체는 수년 전 출간된 마레크 에델만의 책 『스트라즈니크(Strażnik)』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살아남은 유일한 게토 봉기 지도자였던 그는 말년에, ŻOB에 특별한 '세금'을 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던 방식을 이렇게 회상했다.
"부유한 유대인, 밀수업자, 유대인 경찰관들을 찾아가 공포에 떨게 만들고 돈을 가져갔다. 우리는 유대인 평의회(유덴라트)에서 수십만 즐로티를 털었고, 물자 공급 회사도 털었다. 심지어 납치까지 감행했다. 체르니아코프 이후 유덴라트 의장을 맡았던 [마레크] 리히텐바움은 우리에게 단 한 푼도 주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아들을 붙잡았다. 열두 시간 동안 유폐했다. 리히텐바움에게 아이의 다리를 얼음장 같은 물통에 담가 두었으니 분명 병에 걸릴 거라고 적어 보냈다. 그들은 곧 돈을 들고 왔다. 또 한 번은 유대인 경찰 놈 하나가 돈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무자비한지 보여줘야 했다. 최후통첩 기한이 지난 오후 네 시쯤 그를 찾아갔다. '안 줄 거야?'—우리는 그렇게 묻고는 총을 쐈다. 그 후로는 모두가 돈을 냈다. 결국 우리에게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우리야말로 게토의 진짜 권력자였다. 게토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당파'라고 불렀다. 당파가 명령하면 그것은 실행되었다."
게토 내 흐워드나 거리와 젤라즈나 거리가 교차하는 혼잡한 교차로 (사진: 분데스아르히프)
또 다른 ŻOB 대원 시메크 라타이제르(Szymek Ratajzer) 역시 납치가 복종을 강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의 목숨이 걸린 문제임에도 돈을 내주기를 거부하는 부유한 유대인도 있었다. 그럴 때 ŻOB 대원들은 비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엇이었을까? 바로 폴란드인으로 위장하는 것이었다. 라타이제르는 이 분야의 최고 수였다. 그는 뚜렷한 '비유대인' 외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고이(goy), 즉 비유대인으로 오해했다.
'국내군(AK) 대원'인 척하는 방법
이 독특한 방법은 사실 어느 한 번의 '엑스' 작전 도중 우연히 탄생했다. 라타이제르를 다룬 책 『섀도 히어로(Shadow Hero)』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대가 '유대인 전투 조직의 필요를 위해'라는 구호 앞에서 귀중품을 내놓기를 거부하면, 라타이제르의 상관은 영감의 번뜩임처럼 폴란드어로 외친다. '카지크, 이 자랑 정리해!' 그러면 라타이제르처럼 슬라브적 외모를 지닌 이 소년이 폴란드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폴란드인과는 장난 좀 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상기되는 것이다. 이제 시메크가 아니라 카지크 라타이제르가 된 그는 리볼버 총구를 남자의 배에 들이대며 방 구석으로 밀어붙이고선 으르렁거린다. '나랑 장난 치지 마.' 돈은 그 자리에서 나왔다."
라타이제르 본인도 자신의 저서(『바르샤바 게토 전사의 회고록…』)에서 폴란드 이름이 들리는 순간 부유한 유대인들이 즉시 태도를 바꿨다고 언급했다. "고이와는 엮이지 않는 편이 좋았다. 특히 그런 시대에는 더더욱"이었기 때문이다.
『섀도 히어로』에는 또 다른 납치 사건이 전해진다. 이번에는 아버지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어린 소녀를 납치한 사건이다. 그러나 전쟁 전부터 사업가로 성공한 부자는 목숨을 걸고 지갑을 지켰다. ŻOB 대원들을 만나주긴 했지만 돈을 내주기는 거부했다. 유대인이 유대인을 쏠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정적 순간, 그가 끝내 거부하자 라타이제르가 다시 움직인다. 리볼버를 그의 머리에 들이대고 쏘겠노라 위협한다. 그리고 또다시 ŻOB와 협력하는 폴란드 국내군(AK) 병사로 위장한다. 부유한 유대인은 결국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
바르샤바 게토의 엘리트들을 담은 또 한 장의 사진. 드레스, 양복, 인력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무장 투사들을 후원할 돈도 있었던 법이다 (사진: 분데스아르히프)
배신자에게는 자비가 없다
'세금'을 내기를 거부하는 부유한 유대인들의 경우, ŻOB 대원들은 협박으로 만족했다. 위협하고 습격하고 납치까지는 했지만, 돈 때문에 총을 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치에 협력한 자들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에게 감면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라타이제르는 최소 두 건의 응징 작전에 참여했다. 스파이로 드러난 필롯카(Pilotka)와 게토 경찰국장 요제프 셰린스키(Józef Szeryński)가 그 대상이었다. 에델만 역시 처형에 대해 언급했다. "1943년 3월 한 달에만 우리는 협력자 세 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젊은 시절의 마레크 에델만. 대의명분을 위해 그는 갱스터식 수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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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상황에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 미국인 기자는 ŻOB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고, 독일인들에게 저항 없이 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시카고 마피아'의 방식을 사용할 용기를 냈다는 점을 공공연히 칭찬했다. 마레크 에델만 본인도 전사들의 결의 덕분에 게토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빵집 주인들은 우리를 위해 빵을 구워야 했다. 싸우는 사람은 먹어야 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사람답게 행동해야 했다. 독일인과의 협력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싸울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