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부상 – 전쟁이 남긴 정신의 상처
제2차 세계대전 중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미군 병사가 정신과적 치료를 받았습니다. 최전선 전투부대에서는 네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죠. 반면 독일군은 '신경증' 환자들을… 전기 충격으로 치료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미군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망자나 부상자 같은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다쳤다면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후송하고, 요양시키거나 귀국시키면 되니까요. 그러나 정신과적 문제는 군이 예측하지도 않았고, 치료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미군 병력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자마자(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유행병이라 할 만한 사태가 터져 나왔습니다.

폴란드 시들체에 있던 독일군 야전병원 ('발견자' 잡지 포럼 제공 사진)
충격적인 통계 – 미군의 8.9%
전쟁 기간 동안 총 929,307명의 미군 병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320,000명은 영구 복무 불능 판정을 받아 본국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미국인 전체의 8.9%가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은 셈입니다.
상황은 최전선 전투부대에서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1944년 6월부터 11월까지 이 비율은 무려 26%에 달했습니다. '정신을 잃은' 병사 수가 현역 병력보다 많았던(심지어 150%에 이른) 사단도 존재했습니다.
『베르마흐트 대 미군』의 저자 마르틴 판 크레펠트(Martin van Creveld)는 서유럽 전역의 심리적 피해자를 두 그룹으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들, 주로 보충병들로서 전투에 투입된 며칠 만에 정신이 무너졌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노련한 베테랑들로, 약 넉 달간의 전투 끝에 붕괴했습니다. (…) 첫 번째 유형의 병사들은 보충 시스템과 미군 부대의 낮은 결속력의 희생자였고, (…) 두 번째 유형은 무기한 복무라는 짐에 눌려 무너진 것입니다.” (147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야전병원
주목할 점은, 미군의 사망자 수가 심리적 피해자 수보다 3배 이상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부상자와 정신장애 환자의 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정반대였던 독일군의 상황
놀랍게도 독일군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적어도 공식 기록상으로는 정신질환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마르틴 판 크레펠트는 에르빈 롬멜이 지휘한 아프리카 군단의 통계를 예로 들었습니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 넉 달(1941년 9월~1942년 1월) 동안 283명이 정신과 치료를 위해 후송되었는데, 이 중 68명은 사실 신체 부상자였습니다. 43,000명 규모의 군단에 비하면 결코 큰 숫자가 아닙니다. 독일군 전체로 보더라도 매년 최대 3%의 병사에게서만 정신건강 문제가 진단되었습니다.
엄격한 규율, 체계적인 훈련 방식, 통계적으로 우월한 전투 경험,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 문화가 분명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베르마흐트 병사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것은 '치료'에 대한 두려움, 즉 처우의 전망 자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주일간의 휴식 기간 동안 ‘엄격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sic!) 대화를 나누고, 고된 신체 훈련을 받아도 호전되지 않으면 해당 병사는 특수 군사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버티는 환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위 ‘파라디제이션(faradization)’이었습니다. 고통을 유발할 만큼 강한 전류를 이용한 치료였죠. 여기에 카르디아졸(cardiazol) 같은 약물까지 투여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환자의 무려 85%가 빠르게 전선으로 복귀하며 완쾌를 확약했습니다…
출처
- 마르틴 판 크레펠트, 『베르마흐트 대 미군 1939–1945: 전투력 비교』, 에리카 출판연구소, 2011, 138–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