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검열, 중혼, 음주운전… 폴란드 제2공화국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10가지 사실

전간기 폴란드,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

전간기 폴란드는 흠잡을 데 없는 예절, 명예로운 장교, 훌륭한 카페의 나라만은 아닙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제2공화국 폴란드의 10가지 사실을 소개합니다.

불평하는 이유는 전간기 폴란드에 반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실 전간기야말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빛나는 성취는 누구나 이미 백 번쯤 들어보고 읽어왔습니다. 이제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입니다. 과연 여러분을 놀라게 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고 댓글로 알려주세요!

전간기 폴란드에서 여러분이 몰랐을 만한 일들

1. 자폭을 꿈꾸던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젊은 시절 자신을 폭파시키려 했던 인물이, 게다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던 사람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대망상에 시달렸고, 가족 부양과 육아는 전부 아내에게 떠넘겼습니다. 본인은 케피르 생산 사업 등으로 큰돈을 벌어보려 했죠.

2. 범죄율은 오늘날보다 수 배 높았다

당시 범죄는 오늘날 폴란드보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 아동 범죄의 물결, 만연한 영아 살해, 심지어 바르샤바 재래시장의 짐꾼 마피아까지… 주요 도시를 제외하면 제2공화국은 '야만적인 동방'이라 불러야 마땅했습니다. 시인들이 노래하던 목가적인 폴란드 시골조차 실제로는 범죄와 병리의 온상이었습니다.

3. 음주운전은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없었고, 건국 후 첫 10년간은 금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이 문제를 전혀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 추산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의 75%가 음주운전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놀랍지 않습니다.

4. 숙청 심사가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루스트라치아(숙청 심사) 재판은 제3공화국 시절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규모로 열렸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공산 권력과의 연루가 아니라, 분할 지배국과의 타협 혐의로 사람들이 고발당했다는 점입니다. 한편 공평을 위해 덧붙이자면, 당시 폴란드 언론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이었습니다.

5. 성적 자유는 생각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도덕적·성적 자유는 우리가 오늘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실제로 1918년 이후 폴란드에서 이 분야의 진정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부작용도 컸습니다. 성범죄와 아동 성학대가 만연했음에도 당국은 문제가 없는 듯 외면했습니다.

6. 경찰은 유럽 최악 수준이었다

폴란드 경찰은 유럽에서 가장 무능한 조직 중 하나였습니다. 형사들은 지문 채취 대신 점쟁이의 도움을 청하는 쪽을 선호했고, 안목도 형편없었습니다. 백만장자 기에르셰프스키 살해 사건에서 그들은 머리의 총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7. 피우수트스키는 독재자가 되었다

폴란드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1926년 독재자로 변신했고, 폴란드는 권위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집권 세력 산차치아는 베레자 카르투스카에 강제수용소를 설립했고, 선거 승리를 위해 정적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브레스트 요새에 가둬버렸습니다. 그래도 전화요금만큼은 헐값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폴란드에 진정한 자유는 없었습니다.

8. 중혼이 거대한 사회 문제였다

중혼(重婚)은 거대한 사회 문제였습니다. 지참금을 노리고 열 번씩 결혼하는 사기꾼들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다중 결혼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닥쳤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서 발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느 디나 S.라는 여성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 명의 남편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9. 독립은 여성들도 함께 쟁취했다

독립은 남자들만의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에 잊힌 소녀들도 함께 싸웠습니다. 여성 군단원들은 종종 은밀히, 남장을 하고 활동하며 부상자를 치료했을 뿐 아니라 무기를 들고 전선에 나섰습니다. 어쩌면 이제 "군복 입은 창병을 위하여…"라는 말과 함께 그들의 이름을 부를 때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10. 이혼은 전국적으로 불법이었다

이혼은 나라 전역에서 불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무덤까지 이어지거나, 아니면… 종교를 바꿀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첫 아내를 떠나기 위해 루터교로 개종했습니다. 이그나치 모시츠키의 아내는 두 번째 남편의 도움으로 교회로부터 첫 혼인의 무효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더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했습니다. 부부 살인 건수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