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피라미드 그림자 속의 밤: 종교가 지켜준 고대 이집트의 매춘 [18+]

매춘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마지막 맘모스 무리가 랑겔섬에서 활보하던 시절, 이집트에서는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를 쌓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여인네들이 내건 서비스를 실컷 누리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오늘날과 같은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피라미드의 나라에서 알몸으로 거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자위하는 행위조차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제사장들은 물론 파라오마저 각종 축제에서 그런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 성관계 또한 부끄러움이나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고대 문화권과 달리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개방적인 풍토는 여성의 해방과도 맞닿아 있었다. 평범한 그리스나 로마의 여성이라면 나일 강변 여인네들의 자유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집트 여성들은 남성의 동반 없이 집 밖을 나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명예나 체면을 걱정하지 않고 순전히 육체적 만남을 목적으로 다양한 남성들과 교제하기도 했다.

피라미드 그림자 속의 밤: 종교가 지켜준 고대 이집트의 매춘 [18+]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나체를 꺼리지 않았다. 사진은 약 4000년 전의 조각상으로, 아시우트(Assiut)에서 출토되어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카밀 야니츠키)

이렇게 개방적인 풍습 속에서 매춘이 어디보다도 번성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종교였다.

신전 하렘의 '무료 입장권'

예컨대 이집트에는 신전 하렘이 존재했다. 이시스와 아몬의 신전에 딸린 하렘이 대표적이다. 이런 신전을 찾은 순례자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여사제'의 성적 서비스를 받으면서 동시에 신께 경배를 올리는 것이다.

다만 이는 엄밀히 말해 매춘은 아니었다. 종교 의식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순례자가 지갑을 열 필요는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신전에서 나그네들을 상대해 준 여성들이 사회에서 특별히 존중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붉게 칠한 입술, 가슴과 허벅지에 새긴 문신, 푸른 옷으로 구별될 수 있었다. 아니면 아예 옷을 입지 않았거나.

성년이 되면 몸을 내주어야 했다

무리 지어 이집트 전역을 돌며 몸을 팔던 무희들 역시 종교적 역할을 수행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파라오의 나라에는 젊은 여성이 매춘을 통해 성인이 된다는 성년식 풍습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피라미드 그림자 속의 밤: 종교가 지켜준 고대 이집트의 매춘 [18+]

19세기 회화에 그려진, 고양이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이집트 여사제.

한 가지 설에 따르면 소녀들은 무희 무리에 합류해 여행을 다녔고, 임신했을 때에만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집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다산(多産)의 증거를 안고 돌아온 셈이다.

파라오의 나라에서 '여자'는 어디서 구할까?

이집트 남성이 매춘부를 찾는 데 큰 수고는 필요 없었다. 이런 소녀들의 무리는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수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나라를 떠돌았다. 아니면 그저 흥미로운 명절만 기다리면 됐다. 예컨대 여신 무트(Mut)를 기리는 축제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맥주가 소비되었는데,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쏟아붓는 법을 모르는 민족이었다. 이런 날이면 쉬운 돈을 벌고자 하는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평범한 이집트인이 선택했다면 단연 곳곳에 있던 맥주집이었으리라. 큰 도시에 자리한 이곳들은 음식점·술집·클럽을 겸한 복합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떠돌이 무리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확실히 편했고, 무엇보다 안전했다. 당시 기록에는 '낯선 여인'들을 경계하는 경고문이 자주 등장하는데, 일부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통치자의 딸마저 몸을 팔았다!

이집트에서 매춘은 중요한 종교적·의례적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처럼 부끄러운 행위로 취급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딸을 매춘시킨 파라오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파라오 람프시니테(Rhampsinitos)는 보물창고 도둑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직접 친딸의 포주 노릇을 했다. 딸을 창관에 보내 일하게 한 그는, 매번 관계에 앞서 상대에게 인생에서 가장 교활했던 짓이 무엇이냐고 묻도록 지시했다.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정체가 드러난 도둑은 보상으로 공주의 손을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쿠푸 왕에 관한 것이다. 재정이 궁해진 그는 딸을 익히 알려진 방법으로 돈을 벌게 보냈다고 한다. 영리한 소녀는 화폐뿐 아니라 돌로도 대금을 받아냈다.

피라미드 그림자 속의 밤: 종교가 지켜준 고대 이집트의 매춘 [18+]

죽음조차 이집트 남성의 에로틱한 욕망을 꺾지 못한 모양이다. 사진은 빈 미술사 박물관 전시회에 전시된 발기 상태의 미라 조형물. (사진: 카밀 야니츠키)

그렇게 모은 돌로 소녀는 대피라미드 옆에 붙은 세 개의 작은 피라미드 중 하나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사치스러운 첩들, 이집트의 수출품

이집트의 매춘 열풍은 점차 국경 밖으로도 번져나갔다. 나일 강변의 방종이 고대 그리스의 헤테라(hetera) 문화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지칭하는 이집트 매춘부가 바로 '헤테라'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흔한 길거리 매춘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라미드 그림자 속의 밤: 종교가 지켜준 고대 이집트의 매춘 [18+]

이집트 창관 앞에 줄지어 선 손님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 인형들은 저주를 새기는 데 쓰이던 조형물이다. (사진: 카밀 야니츠키, 루브르 박물관)

헤테라는 교양과 매너를 갖추고 확고한 사회적 지위까지 지닌 여인을 일컫는다. 문화적으로 세련된 그리스인들이 이런 '직업 요건'마저 파라오의 나라에서 본떴다면, 그것은 이집트의 성 서비스 수준이 정말 높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로 헬레니즘의 높은 기준에 익숙했을 헤로도토스 본인도 이집트의 한 도시에 대해 감탄하며 기록을 남겼다.

'위대한 삼키는 자'에게 물려받은 재능

오늘날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매춘부들도 있다. 뛰어난 기량 덕분에 막대한 부와 불멸의 명성을 손에 넣은 이들이다. 이집트인들은 평생을 불멸을 쟁취하는 데 바쳤다. 위대한 통치자, 용맹한 지휘관, 혹은… 최고의 홀궁처(娼妓)가 되는 것으로도 말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헤테라였던 타아이스(Tais)가 후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 디아도코이(후계자)와 사치스러운 매춘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기원전 31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한 왕조를 세웠고, 그 마지막 군주가 바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였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인으로서 '위대한 삼키는 자'라 불린 클레오파트라의 우아함과 재능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말이다.

참고 문헌:

  1. Krzemińska A., Miłość w starożytnym Egipcie(고대 이집트의 사랑), Warszawa 2004.
  2. Krzemińska A., Papirusowa pornografia(파피루스 포르노그래피), "Polityka", 43/2002.
  3. Karpiński M., Najstarszy zawód świata. Historia prostytucji(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매춘의 역사), Warszawa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