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꺼낸 증인, 죽은 자를 되살린 주교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법정 증인으로 세웠다고요? 강령술(네크로맨시)이 자랑거리이자 돈버는 수단이었다고요? 사생활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조치도 지나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폴란드의 수호성자 중 한 명도 그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보다 전설이 앞선 성인
성 스타니스와프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1079년경 크라쿠프의 주교로서 볼레스와프 2세 '용맹공' 국왕과 갈등을 빚었고,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 사실 여기까지가 확실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무려 백여 년이 지난 13세기에 이르러서야 크라쿠프 성직자들은 이 주교를 순교자로 추앙하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의 경쟁 수호성자인 보이치에흐(성 아달베르트)를 능가하는 성인상을 서둘러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웰식 역사 재편에 성인전(聖人傳) 이야기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크라쿠프 주교를 역임하기도 했던 연대기 작가 빈센티 카드우베크가 1208년경 집필한 저작에서 이미 그를 찬양했고, 13세기 중반 활동한 도미니코회 수사 키엘체의 빈센티가 이 이야기를 한층 발전시키며 세부 사항을 채워 넣었습니다.

야누 마테이코가 그린 성 스타니스와프 살해 장면 (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스타니스와프는 1253년 성인으로 시성되었고, 그에 관한 전설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다만 교회 선전가들이 모든 전설을 자랑스러워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성인전 작가들은 오히려 스스로 곤경에 빠졌습니다. 주교를 지나치게 미화하려다 보니 그에게 강령술, 즉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술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붙여 버린 것입니다.
되살아난 기사
전설에 따르면 주교는 무덤에서 죽은 기사를 꺼내 왕실 법정에서 증언하게 하기 위해 되살렸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재산, 정확히는 소유권 증서였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스타니스와프는 피오트라빈 마을을 피오트르 스트셰미엔치크라는 인물에게서 합법적으로 매입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주교에게는 필요한 서류가 없었으며, 고인의 가족들도 주교의 말을 그대로 믿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소송은 국왕에게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성인은 잠시 명상에 잠긴 뒤, 고인의 영혼의 안식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에 나섭니다. 신성모독의 위협이나 계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기사 피오트르를 되살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전설을 만든 성직자들이 소유권 입증이라는 하찮은 목적을 위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며 저승에서 사람을 불러내는 일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어쩌면 우리 세대는 천주교 재산위원회 관련 스캔들 이후 비슷한 문제에 예민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스타니스와프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걸출한 연대기 작가 야누 드우고시, 안토니 그라마티카의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연대기 작가 야누 드우고시가 직접 남긴 판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주교는] 성당을 나선 뒤 흙을 파서 고인이 된 기사 피오트르의 무덤을 열라고 명했다. 삼 년째 썩어가던 시신이 수많은 사제와 백성들 앞에 나타나자, 그는 땅에 엎드려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드우고시에 따르면 성인은 기도 중 성경에 나오는 라자로의 부활을 회상한 뒤 이렇게 외쳤습니다. "흙에서 일어나 다시 살아나라, 피오트르여! 진리를 증언하라!"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
기사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고, 스타니스와프는 그를 볼레스와프 왕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물론 왕과 신하들은 그 기적을 보고 턱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거의 제정신을 잃어 아무 말도, 아무 질문도 감히 하지 못했다"). 되살아난 기사는 스타니스와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증언했을 뿐 아니라, 교회를 상대로 소동을 일으킨 자신의 친척들을 질책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주교는 피오트르에게 묻습니다. 이미 한 번 되살아난 김에 몇 해 더 살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기사는 그 은혜를 사양하고 연옥으로 돌아가기를 택했습니다. 그는 무덤에 누워 "영혼을 육체 속에 두고 숨을 거두었고", 스타니스와프는 "성직자들과 함께 가장 경건하게 시편을 노래하며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긴 뒤, 시신에 흙을 덮었다"고 합니다.
주교의 기적들
믿기지 않는 분(믿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은 피오트라빈의 성 토마스 사도·성 스타니스와프 교회 옆 고딕 예배당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강령술사 주교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 성당 자리에 15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안에는 17세기 피오트르의 묘비와 더 오래된 중세 묘비(현재는 벽에 박혀 있음)를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부활은 실제로 이 교회에서 일어났을까? (사진: Epegeiro, CC BY-SA 3.0 pl)
성당 옆에는 또한 특이한 생명력을 지닌 린덴나무가 있습니다. 스타니스와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의 후손입니다. 기사 피오트르와의 일을 마친 주교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거꾸로, 즉 끝부분이 땅을 향하게 꽂으면서 "기억 속에서 자라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강령술사는 자신의 법정 공연을 축하할 방법을 찾았던 것이죠. 실제로 피오트라빈의 린덴나무는 뿌리가 하늘을 향한 채 자라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원목은 1930년에 부러져 사라졌기에 오늘날에는 사진과 그림으로만 감상할 수 있고, 현재 피오트라빈에는 그 '딸'나무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스타니스와프의 강령술 기적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는 무덤 너머에서도 사람을 되살렸습니다. 13세기 성인전에 따르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리샤르 롬바르치크의 아들이 크라쿠프에서 되살아났는데, 세례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고 이후 금세 다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스타니스와프의 무덤에서 가져온 자갈 덕분에 폴리카르치체 출신 기사의 아들 비헤르도 되살아났다고 전해지며, 미스와프치체 출신 헝가리인의 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라쿠프, 폴란드의 수호성자
상징적으로 스타니스와프는 '죽은' 폴란드 왕국의 부활에도 기여했습니다. 빈센티 카드우베크의 연대기에 따르면, 국왕의 명령으로 토막 난 주교의 시신은 다시 온전하게 자라났습니다. 분열된 폴란드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죠.
문제는, 강조하자면, 그 통합이 크라쿠프와 크라쿠프 성인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네즈노의 체코 출신 보이치에흐가 아니라, 초대 피아스트 왕조가 밀어준 성 람베르트도 아니고, 결국 소방관의 수호성자로 전락한 성 플로리안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마소 돌라벨라가 그린 토머스 베켓의 죽음 환시. 잉글랜드 주교 살해 이야기가 성 스타니스와프 전설의 영감이 되었을까? (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리고 분노한 볼레스와프 왕이 스타니스와프를 살해하고 토막 냈다는 이야기가, 1170년 헨리 2세 플랜태저넷의 자객들에게 제단 앞에서 살해된 잉글랜드 주교 토머스 베켓의 유럽 전역에 알려진 이야기와 기묘하게 닮았다는 점은 어떨까요? 어쩌면 그 성인의 이야기가 크라쿠프 순교자 전설의 영감을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신죄로 지체를 처형당한 주교라는 씁쓸한 설보다는, 이 성스러운 이야기가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 주니까요.
설령 기사 피오트르의 부활에 관한 성인전 작가들의 이야기만큼 '진실'하다 해도, 이 논쟁에서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아니면 폴란드 역사의 벽장 속에 갇힌 산 자와 죽은 자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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