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누구세요? 어리석은 연극, 외국인이 '폴란드인' 행세한 5가지 사례

역사 속 가짜 폴란드인들

폴란드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며, 세계 다른 나라들에게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스스로에 대해 꽤 높은 평가를 갖고 있죠. 그런데 역사를 되돌아보면, 낯선 이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폴란드인 행세를 한 사례는 의외로 드물습니다. 물론 여러 가짜 폴란드인들이 존재했지만, 그들의 의도가 항상 순수했던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들이 폴란드인으로 행세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다섯 가지 역사적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들의 동기는 저마다 달랐고, 그 결과가 항상 설득력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기이한 현상은 그 희귀성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5. 글리비체의 도발자들, 히틀러를 위한 '폴란드인'

"주목! 여기는 글리비체입니다. 라디오 방송국이 폴란드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 1939년 8월 31일, 실레시아 봉기군을 자칭하는 무리가 당시 독일 영토였던 글리비체의 라디오 방송국을 습격하며 방송에 내보낸 선전 문구였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폴란드인' 공격자들은 사실 민간인 복장을 한 무장친위대(SS) 요원들이었습니다. 이 공격은 나치가 준비한 다른 국경 도발들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작극이었습니다.

누구세요? 어리석은 연극, 외국인이  폴란드인  행세한 5가지 사례

글리비체 라디오 방송국의 송신실. 악명 높은 도발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곳입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퓌러는 세계 여론에 폴란드가 침략자임을 각인시키고, 서방 동맹국들이 폴란드 편에 개입하지 않도록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4. 질투 많은 영국인들, 폴란드인 행세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폴란드 조종사들은 영국 전역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용감하고, 잘생겼으며, 신사적이면서도 솔직담백한 그들은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사회적 금기에 묶여 있던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살아가던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영국 여성들이 폴란드 '독수리'들의 품안에서 그 금기를 하나씩 벗어나기 시작하자, 영국 남성들은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댄스 파티에 '폴란드'라는 문구가 붙은 제복을 입고 등장했고, 모든 기회에 여성들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으며, 심지어 슬라브 억양으로 말하는 법까지 익혔습니다.

누구세요? 어리석은 연극, 외국인이  폴란드인  행세한 5가지 사례

용맹하고 신사적인 폴란드 조종사들은 순식간에 영국 여성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영국인들이 그들을 사칭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사진은 유명한 제303비행대대의 파일럿들입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심지어 "저는 폴란드 비행사입니다. 저와 한잔해 주시겠어요? 저는 너무 외로워요"라는 말로 영국 여성들을 매혹한 사칭꾼에 대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3. 푸른 눈의 아이티인들, 예의 바른 '폴란드인'

나폴레옹이 프랑스 식민지 산도밍고(아이티)의 노예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폴란드 군단병들을 파견했을 때, 놀랍게도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탈영하여 반군 진영에 합류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프랑스군의 잔혹행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잃어버린 조국의 자유를 떠올리며 타인을 억압하는 데 가담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아이티가 독립국이 된 1805년 헌법에는 커피 재배로 평화롭게 정착해 살던 독일인들과 함께 폴란드인이 유럽인 중 유일하게 재산 소유 및 취득권을 보장받은 민족으로 명시되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오늘날까지 동포들의 고결한 선택을 기억하며, 피부가 밝고 눈동자 색이 옅은 아이티인을 군단병의 후손으로 여깁니다.

물론 섬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 폴란드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현지인들은 이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먼 나라에서 온 손님에 대한 예의로 기꺼이 그들 안에서 폴란드의 뿌리를 찾아주곤 합니다.

2. 허무주의자 니체, 분노 때문에 '폴란드인'이 되다

"내 혈통과 성은 귀족 니키치 가문에서 이어졌다고 배웠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3년에 털어놓은 고백입니다. "어린 소년 시절부터 나는 내 폴란드 혈통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그는 덧붙이며, 어린 시절 마주르카 악보가 적힌 책을 소유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야말로 이 허무주의 철학자가 강조하려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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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는 동포를 자극하기 위해 폴란드 뿌리를 지어냈습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는 자신의 귀족 출신, 그리고 귀족만이 누릴 수 있었던 자유거부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 혈통을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성격에 있어 나는 폴란드인으로 남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불행히도 훗날 진행된 계보학 연구에서는 이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니체는 생전에 폴란드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마 당대 독일인들과, 자신의 눈에 '타락한' 문화로 보이던 그들의 정체성을 자극하기 위해 폴란드 출신 전설을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일 겁니다.

1. 차르 파벨 1세, 꿈꾸던 '폴란드인'

파벨 1세 로마노프는 공식적으로 차르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대제)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어머니가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와 맺은 불륜의 열매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 시점은 포니아토프스키가 차리나의 지원으로 폴란드 국왕이 되기 이전의 일이었죠. 문제는 파벨이 1754년에 태어난 반면, 예카테리나는 1755년에야 스타니스와프를 처음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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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아이는 파벨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요절한 딸 안나(1757~1759)였습니다. 포니아토프스키는 차르의 착각을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벨은 끝내 스타니스와프와 폴란드인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집권 이후 그는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를 비롯한 수많은 폴란드인들을 감옥에서 석방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전 국왕에게는 품위 있는 생활과 장례가 제공되었습니다. 파벨은 심지어 자신이 언제나 폴란드 분할에 반대했다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렸던 걸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이 표트르 3세의 아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의 연인들 가운데 포니아토프스키가 아버지로서 가장 가치 있는 인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