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지뢰, 대전차견의 등장
1941년과 1942년, 소련 영토 깊숙이 파고드는 독일 기갑 부대의 공세를 막는 일은 적군(紅軍)에게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독일군은 보통 소련군보다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지뢰밭을 미리 설치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모스크바는 '움직이는' 지뢰를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등에 폭발물을 얹은 대전차견이 전선으로 향한 것입니다. 소련군은 이 개들에게 적 전차를 파괴하고 함께 죽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쟁에서는 무든 것이 가능하다." 마루샤 오고니오크가 놀라워하는 리트카에게 남긴 이 말은, 후방에서 멀리 독일 전차의 궤도 소음이 들려올 때 나온 대사였지만 실로 정확한 통찰이었습니다. 독일 전차병들은 동부 전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기이한 무기 중 하나인 '개 지뢰'와 마주하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했습니다. 이 무기는 공격당하는 자와 공격하는 자 모두에게 위협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모스크바 지역의 대전차견 훈련소 (1931년)
군용 개 훈련의 역사
개를 전쟁 목적으로 활용한 역사는 말이나 코끼리를 군사적으로 사용한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차르 시절 러시아에서도 개들은 초병 임무나 도망자 추적에 동원되었습니다. 물론 시민 감시와 통제에 집중했던 소련에서도 이런 군용 견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1924년에는 이미 중앙 군견학교가 설립되어 개들을 군 복무에 대비시켰습니다. 초기에 훈련된 임무는 비교적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보고서 운반, 탄약 및 식량 배급, 비둘기장 운반, 전화선 가설, 지뢰 탐지, 경비 근무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위생견과 지뢰견
더욱 전문화된 '위생견'도 훈련되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전장에서 활동하는 위생병을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등에 드레싱 가방을 메고 다니며 부상자를 후방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가 사용되었습니다. 개와 부상자를 실은 썰매는 낮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들것으로 부상자를 옮기는 두 명의 위생병보다 피탄 확률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덕분에 위생병이 썰매에 부상자를 싣고 보내면 부상자는 추가 부상 없이 치료소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졌고, 위생병은 그 자리에 머물러 다음 부상자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군은 1945년 4~5월 베를린 전투에서도 위생 썰매를 사용했습니다. 러시아 역사가들은 이 의료 후송 방식이 약 70만 명의 병사를 구했다고 주장합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대전차견을 동반한 적군 퍼레이드 (1938년)
'공격형' 무기로의 전환
아마도 의료 물품을 나르던 개들을 훈련하던 중, 이들을 '공격' 용도로 활용한다는 발상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해법의 잠재력 조사는 울랴놉스크 군관구의 군견학교에 맡겨졌습니다. 포성, 연기, 폭발음에 동물을 익숙하게 만드는 훈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습니다. 훈련 첫 단계에서는 개들을 며칠간 굶긴 뒤, 훈련장에 풀어놓고 탐색 명령을 내렸습니다.
먹이는 궤도 트랙터나 전차 밑에 숨겨졌습니다. 처음에는 정지해 있는 차량 밑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움직이는 전차 아래서도 먹이를 찾도록 훈련했습니다. 개들은 전차 특유의 냄새와 요란한 소음에도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시끄럽고 악취 나는 이 거대한 기계가 좋은 것과 연결되어야, 두려움 없이 달려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들에게 전차 앞에 폭발물 가방을 놓고 오도록 가르치려 했지만, 가장 똑똑한 개체조차 이 임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국 더 간단한 해결책을 찾게 됩니다.
대전차견의 전술과 작전 계획
'대전차견'의 전투 운용 계획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예상 공격 며칠 전부터 개들을 굶긴 뒤, 진격하는 적 전차를 향해 전장에 풀어놓는 것. 독일 전차의 공격 선상에 열두 마리에서 수십 마리의 개를 풀면 '움직이는 지뢰밭'이 형성되어, 이론상으로는 적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뢰견의 등에는 TNT 6kg씩이 담긴 가방 두 개가 장착되었습니다. 가방 사이에는 안테나처럼 돌출된 신관이 달려 있었고, 개를 풀기 직전에 기폭 상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개가 먹이를 찾아 적 전차에 달려들다 궤도에 몸을 부딪히면, 등에 얹힌 '안테나'가 꺾이면서 폭발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임무에서 살아남을 개는 한 마리도 없다고 가정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뢰견은 일회용 무기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전장에서의 대전차견
1941년 독일 기갑 부대가 소련 영토 깊숙이 진입하면서, 훈련 기간의 가정들을 실전에서 시험할 기회가 왔습니다. 필사적인 방어 상황에서 모든 수단이 허용되었고, 개들은 1941년 늦여름과 가을에 실전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첫 공격에 20마리가 투입되었음에도 성공 보고는 없었습니다. 일부 개는 도망쳤고, 다른 개들은 전차 궤도에 깔리거나 포격에 희생되었습니다. 이후 작전에서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무장한 폭발물을 등에 진 개들은 소련군 참호로 숨어들거나 주인에게 되돌아오기도 했고, 심지어 주인에게 아첨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소련 지뢰견의 공격은 제7기갑사단장이었던 한스 폰 룩 중령이 회고록에 기록했습니다. 독일군은 곧바로 눈치챘습니다. 화망이 없는데도 전차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그 주변에 개가 있다면, 그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을요. 독일군은 사건을 조사하고 개의 사체를 검시한 뒤 결론을 내렸습니다. 주변을 뛰어다니는 모든 개에게 즉시 사격을 개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새로운 위협에 대한 정보는 무전으로 다른 기갑 부대에 전파되었습니다. 폰 룩은 "불쌍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개를 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지뢰견은 적 전차만이 아니라 아군 전차에도 위협이 되었습니다. 동물들은 연료, 화약, 윤활유의 익숙한 냄새 때문에 소련 전차를 아군으로 인식했습니다. 반면 독일 전차는 완전히 다른 냄새가 나는 낯선 존재였기에, 개들은 이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한편 대전차견이 특정 전선 구역에서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은 소련 전차병들 사이에서도 공포를 불러일었습니다. 이들은 위협을 줄이기 위해 간단한 방어책을 강구했는데, 바로 개가 궤도 사이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전차에 강철 스커트를 장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무능하지 않았던 무기
하지만 지뢰견이 겉보기처럼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련의 전투 보고서에는 독일 전차를 향한 대전차견의 성공적인 공격이 수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리한 조건(안개, 눈보라)에서는 투입된 개 전부가 목표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눈 속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흰색 위장 덮개를 씌우기도 했습니다. 성공적인 공격은 1941년 모스크바 근교 전투, 1942년 스탈린그라드와 로스토프 전투, 그리고 1943년 보로네시 근교 전투에서 기록되었습니다. 1942년에는 약 1,000명의 군견 핸들러와 800마리의 훈련된 대전차견이 전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또 소수의 대전차견이 쿠르스크 전투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소련 정보 당국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독일의 공격에 대비해 준비된 수많은 '지뢰밭' 중 하나로 투입된 것입니다.

훈련 중 촬영된 사진
전선에서의 철수와 새로운 임무
쿠르스크 전투 이후 적군은 국방군에 대한 결정적 우위를 확보했고, 이제 방어가 아닌 공격에 나섰습니다. 우랄 산맥 너머에서는 전차 생산이 가동을 거듭했고, 이전 전투에서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이미 노련한 베테랑이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소련과 독일의 기갑 교전은 점점 팽팽한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지뢰견을 포함한 기이한 무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대전차견을 전선에서 철수시켜 재훈련을 거친 후 다른 임무에 배치하기로 결정됩니다. 주로 지뢰 탐지, 부상자 후송, 적후 정찰 순찰 임무가 그것이었습니다.
종전까지 적군은 모든 분야의 전투견 6만 8천 마리를 복무에 편입했습니다. 지뢰견들이 약 300대의 독일 전차를 파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수치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측 자료에는 몇 마리의 개가 희생되었고, 몇 대의 자국 전차가 이 기이한 무기의 희생자가 되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기념물과 박물관에 남은 대전차견의 역사
지뢰견의 역사는 오늘날 러시아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전쟁의 전설로 여겨지고 있지만, 지뢰견은 기념물과 박물관에도 그 자리를 찾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앙 포병·공병군 박물관에는 각종 폭발물을 장착한 지뢰견 박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스크바(그리스도 구원자 성당 근처 승리 공원)와 볼고그라드(체키스트 광장)에는 전투견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볼고그라드의 기념비는 대전차견을, 모스크바의 기념비는 위생견을 형상화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러시아 모형 회사 즈베즈다(Zvezda)가 대전차견을 동반한 적군 병사 피규어 세트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뢰견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기이한 무기와 전장에서의 동물 활용을 다룬 수많은 글에도 등장합니다.
모스크바의 군견 기념비 받침대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위대한 애국전쟁 동안, 전투견들은 300여 대의 파시스트 전차를 폭파시켰으며, 12만 건의 보고서와 전투 문서를 전달하고, 전장에서 약 70만 명의 부상자를 후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