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그때 처음으로 '신의 바람'이 불었다 — 몽골의 일본 침략, 피로 물든 역사

일본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몽골의 침입

일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무사들의 정복 전쟁과 사무라이 전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수백 년 전, 이 나라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마저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몽골의 침략이었고, 이는 일본 역사에서 유례없이 어두운 장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기는 최근 콘솔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Ghost of Tsushima)』의 소재가 되며 가상의 이야기로 재탄생했습니다. 석세스 펀치(Sucker Punch)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네이트 폭스와 공동창업자 크리스 지머는 사무라이의 몸으로 봉건 시대 일본을 누비는 발상이 처음부터 색다르게 느껴졌다고 털어놓습니다. 대중문화 속에 담긴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징기스칸의 후계자

시간을 1274년으로 되돌려 봅시다. 당시 몽골 제국은 아시아 대륙의 거의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승슬장구하던, 그리고 극도로 잔혹했던 진격은 곧 막힐 운명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 대한해협 한가운데 위치한 섬이 있었으니까요. 쓰시마, 바로 이곳이 곧 몽골군과 일본군 간의 지옥 같은 전투의 무대가 됩니다.

거인과 거인의 충돌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영토적 정점, 약 3,3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판도는 13세기 후반에 완성되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 제국을 이끈 이가 유명한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1215~1294)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신의 바람 이 불었다 — 몽골의 일본 침략, 피로 물든 역사

사진: 쿠빌라이 칸 앞에 선 마르코 폴로(퍼블릭 도메인).

쿠빌라이 칸은 철저한 교육을 받았으며 공예·과학·예술, 그리고 무예의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260년 몽골의 칸으로 즉위한 그는 이웃 나라들의 영토를 차츰 정복해 나갔고, 마침내 제국의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한발릭, 즉 오늘날의 베이징으로 옮겼습니다.

1271년에는 원나라를 세웠고, 8년 뒤에는 중원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일본을 향해 극도로 피비린내 나는 침략을 개시합니다. 군사 원정의 첫 번째 경유지가 바로 쓰시마였습니다.

안개 속의 피

몽골은 제국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주권을 인정받기를 요구했습니다. 정복당한 통치자들은 반드시 몽골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해야 했죠.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칸이 여러 차례 국서를 보내 불필요한 유혈사태를 피하고자 했음에도 말입니다.

첫 외교 사절단은 1266년 파견되었지만, 고려가 몽골군의 다음 목표가 되기 싫어 정치적 타결을 저지하면서 무산됩니다. 2년 뒤 다른 사절들은 규슈의 다자이후까지 도달했지만 임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쇼군 고레야스를 대신해 집정으로 권력을 쥔 호조 마사무라가 일본의 항복을 거부하며 사절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쿠빌라이 칸은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적이 자신을 공공연히 무시하는데도, 최고 사령관으로서 신하들 앞에서 권위를 잃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270년과 1271년의 추가 협상 시도 역시 허사로 돌아갔고, 결국 징기스칸의 후계자는 다음에는 무력이라는 논거를 들이밀기로 결심합니다.

그때 처음으로  신의 바람 이 불었다 — 몽골의 일본 침략, 피로 물든 역사

전통 갑옷을 갖춘 사무라이.

그의 군세는 추산에 따라 몽골·중국·여진·고려 병사를 합쳐 3만에 달했습니다. 침공의 초기 목표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쓰시마섬으로, 당시 이곳은 매우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습니다. 마지막 사무라이들이 이 섬을 지키려 한 시도가 『고스트 오브 쓰시마』 스토리의 출발점입니다.

몽골군은 특유의 잔혹함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포로의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 살아있는 방패로 삼기도 했습니다. 양측의 차이는 전략뿐 아니라 무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몽골군은 합성궁을 사용해 사거리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만약 자연의 힘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사무라이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신풍(神風), 카미카제의 원류

오늘날 '카미카제'라는 단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특수한 철학으로 무장한 일본군 부대를 연상시킵니다. 그 병사들은 특수 개조된 항공기나 선박을 몰고 적을 공격하다 스스로 목숨을 바쳤죠.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자살적인 용맹 행위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개입을 가리켰습니다.

'신풍', 즉 '신의 바람'은 처음에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 함대의 계획을 좌절시킨 태풍을 일컫는 이름이었습니다. 규슈 상륙 직전 벌어진 일이 그렇습니다. 역사상 가장 대규모 해상 공세 중 하나가 침략자들에게 참패로 끝난 것이죠.

그때 처음으로  신의 바람 이 불었다 — 몽골의 일본 침략, 피로 물든 역사

미국 함선을 공격하는 카미카제.

50일 넘게 이어진 침공은 신의 바람 한 줄기로 끊겼습니다. 태풍 속에서 황급히 도피하던 몽골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배에 매달렸지만, 배들은 연이어 해안 암벽에 부딪혀 파손되었습니다. 대군의 생존자들, 어떤 추산으로는 10만에 이른다는 그 병사들은 끝내 드넓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 역사를 회상할 때 우리는 흔히 용맹한 사무라이의 승리를 떠올립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준 사건들은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