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폴란드를 멸망에서 구한 독일 왕, 하인리히 3세의 결단

역사 속에서 독일은 대개 폴란드를 조각내려 했던 나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은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폴란드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것이 바로 독일인이었던 것입니다.

11세기 30년대의 폴란드는 아직 뿌리가 깊지 않고 앞날이 불투명한 젊은 국가였습니다. 미에슈코 1세와 볼레스와프 1세 ‘용감공’이라는 두 명의 호전적이면서도 총명한 통치자가 영토를 넓히고 유럽에 이름을 떨쳤지만, 곧 운명은 피아스트 왕조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폴란드는 내전으로 흔들렸고, 거의 모든 이웃 나라들이 용감공의 피비린내 나는 원정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미에슈코 2세는 추방당하고 신체를 훼손당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그의 아들 카지미에시가 1034년 폴란드 왕위에 올랐을 때 상황은 바닥에 이르렀습니다. 국고는 텅 비었고, 통치자는 겨우 18살이었으며, 전사들과 궁정 귀족들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를 멸망에서 구한 독일 왕, 하인리히 3세의 결단

19세기 회화에 담긴 카지미에시의 폴란드 귀환 장면입니다. 이상하게도 화폭 속에는 독일 기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카지미에시는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에는 더 이상 왕가의 일원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중앙 정부는 붕괴했고, 각 지방의 유력자들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 마조비아 지방에 자신만의 국가를 세운 미에츠와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보헤미아의 통치자 브르제티스와프가 대폴란드 지방으로 무장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교회들을 약탈하고 성곽들을 헐어버렸으며 성유물들을 훔쳐갔습니다. 포즈난과 그니에즈노는 불타 재만 남았습니다. 그는 북쪽에 자리를 잡고 피아스트 국가의 최소한 일부라도 체코에 합병하는 것까지 계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폴란드는 유럽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했습니다.

카지미에시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그는 헝가리 왕에게 최소한 몇 달간 유폐되었습니다. 자유를 되찾은 후에는 어머니 리헤자가 살던 독일로 향했습니다. 마레크 K. 바란스키가 저서 『중세 폴란드의 역사』에서 쓰듯, 바로 그녀의 궁정에서 카지미에시는 은신처와 도움을 찾았습니다. 리헤자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그녀의 친척들은 국가의 최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 형제는 쾰른 대주교이자 이탈리아 재상이었고, 다른 한 명은 슈바벤 공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카지미에시는 좋은 가문 출신의 기사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연대기 작가 갈루스 아노니무스는 카지미에시가 독일 왕 하인리히 3세를 섬기며 ‘기사도의 업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기록했습니다.

폴란드를 멸망에서 구한 독일 왕, 하인리히 3세의 결단

카지미에시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브르제티스와프의 통치 아래 강대해진 체코가 하인리히 3세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왕은 피아스트 가문의 공작을 돕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하인리히가 내린, 아마도 폴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왕위에서 쫓겨난 공작을 도울 것인가? 만약 독일 왕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폴란드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고, 체코가 몇 개 주를 빼앗아 갔을 것이며, 오늘날 ‘폴란드인의 나라’는 대모라비아나 비스툴란 공국처럼 역사책 속 궁금거리 정도로 남았을 것입니다.

폴란드를 멸망에서 구한 독일 왕, 하인리히 3세의 결단

다행히 하인리히 3세는 카지미에시를 돕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마레크 K. 바란스키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독일 왕은 체코 공작 브르제티스와프의 승리를 우려했습니다. 그는 브르제티스와프가 폴란드를 정복하고 독일에 위협이 되는 대슬라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 프라하의 통치자가 서슬라브 지역 전체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래서] 하인리히 3세는 폴란드 공작을 도왔습니다.”

카지미에시는 왕으로부터 자금과 중무장한 독일 기사 500명을 지원받았고, 이들을 이끌고 크라쿠프로 진군하여 무력으로 왕위를 되찾았습니다. 그는 성공했고, 덕분에 ‘복위자(오드노비치엘)’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인리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의 폴란드 역사 속 역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출처:

  • 마레크 카지미에시 바란스키, 『중세 폴란드의 역사』, Zysk i S-ka,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