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모스크바의 데이비스, 스탈린에게 홀린 속기 쉬운 바보

1933년, 미국은 뜻밖의 결정을 내려 소련과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낙원'이라 불리던 소련은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새로 부임한 미국 대사들은 대숙청과 스탈린의 테러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체제의 범죄적인 실상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는 대신, 워싱턴으로 스탈린을 기리는 축하 카드만을 보냈습니다.

특히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로 부임한 조지프 에드워드 데이비스는, 중요한 경제 현안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던 대통령이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낼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데이비스가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날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소련 외교 측이 이 교양 있는 변호사를 손쉽게 놀려먹었을 뿐입니다.

대사 자리를 '산' 남자

데이비스는 이전부터 러시아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고, 모스크바를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토록 어렵고 중대한 임무를 맡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936년, 그는 사실상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대사가 되었습니다. 루스벨트의 두 번째 대선 운동 기간 동안 선거위원회에 거액을 기부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 금액이 무려 1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요컨대 그는 돈으로 자리를 샀고, 이를 러시아를 방문하고 흥미로운 사교생활을 누릴 좋은 기회로 여겼을 뿐입니다.

모스크바의 데이비스, 스탈린에게 홀린 속기 쉬운 바보

잡지 '타임' 표지를 장식한 데이비스 부부.

그는 유유히 지냈고, 이는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모든 편지에서 확인됩니다. 유럽은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었고, 독일은 강대국으로 무장해 가고 있었으며, 스탈린은 수백만 명의 소련 시민을 학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공장과 미술관에서 미소를 지으며, 개인 컬렉션을 위한 골동품을 사들이고 있었습니다.

공판정의 '자작극'을 그대로 믿다

1937년, 스탈린이 당과 군 내부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재판 연속극을 시작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데이비스는 피고인들이 무죄일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라데크, 소콜니코프, 피아타코프에 대한 재판을 직접 참관했습니다. 피고들이 한결같이 유죄를 인정하고 자기비평을 늘어놓자, 그는 고문과 협박의 결과라고는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검찰 총장 비신스키의 재능을 칭찬했습니다. 그의 연설을 "학술적이며 재능 있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했고, 재판 과정에서 비신스키가 "변호사로서 존경과 감탄을 받을 만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쁜 동맹, 루스벨트의 주소련 대사들』의 저자 보그단 그젤론스키 교수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데이비스는 제시된 사실을 근거로 정부 전복을 노린 정치적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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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 둘러싸여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데이비스 대사.

대숙청마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해석

데이비스는 소련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그럴듯한 설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을 미국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에 비유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자연스러운 단계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고 더 나은 체제가 자신을 해치는 인물들을 걸러내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중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군 대숙청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판단했습니다. 서구 외교관들 모두 그 음모가 허술하게 꾸며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데이비스만이 태연하게 설명했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이것이 분명 쿠데타를 노린 군사 음모였다는 것이다. 반(反)스탈린주의라기보다는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었고 (...) 스탈린은 특유의 빠르고 단호하며 강력한 방식으로 일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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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당해도 '오히려 좋다'던 대사

데이비스는 소련과의 협상에도 비슷한 식의 안이함과, 솔직히 말해 순진함으로 임했습니다. 소련 요인들은 그의 집무실을 도청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 스스로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고, 심지어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채무 상환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대사관 직원들이 발견한 실제 도청 장치도 그가 이 나라와 지도자들에 대한 호감을 재고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젤론스키 교수가 인용한 대사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소련이 도청기를 설치했다면 더욱 좋다. 그들이 우리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을 더 빨리 알게 될 테니까." GPU(국가정치총국)에 의한 끊임없는 감시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였습니다. 『나쁜 동맹』의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데이비스는 비밀경찰 인원들을 자신의 업무를 도와주는 사람, 즉 개인 경호원처럼 대했다." 그는 외교관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자신은 GPU 요원들과 일종의 우정을 맺었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눈에 데이비스는 동료가 아니라 수동적인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대사 임기에 대해 좋은 말 한마디 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고위직의 '유용한 바보들' 덕분에 미국은 스탈린을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바로 이들 때문에 미국은 폴란드를 포함한 중부 유럽 전체를 망설임 없이 스탈린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출처:

  • 보그단 그젤론스키, 『나쁜 동맹: 루스벨트의 주소련 대사들』, 폴란드 과학출판사(PW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