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소련군이 루마니아 국경으로 접근해오던 시기에도 폴란드 전직 외무장관 요제프 베크(Józef Beck)는 여전히 루마니아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6월 5일, 그는 결핵으로 홀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최근 발견된 문서들은 폴란드 당국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의외로 스위스가 관여하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발견된 새로운 기록
구출 시도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는 폴란드, 루마니아, 혹은 런던이 아니라 스위스에서 발견되었다. 문서들은 이미 1944년 5월부터 스위스 외교부가 요제프 베크를 자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왜 이런 일에 나섰을까? 중립국인 스위스는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던 루마니아 내에서 폴란드의 이익을 대표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폴란드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베른(Bern) 당국이 전직 폴란드 장관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증거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1935년 7월,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과 요제프 베크 (사진: Lothar Schaack, Bundesarchiv, CC-BY-SA 3.0)
루마니아의 거짓말
베른 주재 폴란드 특사 알렉산데르 와도시(Aleksander Ładoś)는 1944년 5월, 요제프 베크를 루마니아에서 데려나올 수 있도록 스위스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슐레유페크(Sulejówek)에 있는 유제프 피우수츠키 박물관의 파베우 두베르(Paweł Duber) 박사가 발견한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는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허사로 돌아갔다.
루마니아 부총리 미하이 안토네스쿠(Mihai Antonescu)는 폴란드 장관이 국내 깊숙한 곳으로 후송될 것이라고만 확약했을 뿐인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글은 학술지 「기억과 정의(Memory and Justice)」에 게재된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6월 초, 루마니아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던 베크를 위해 폴란드 당국은 다시 한번 스위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파베우 두베르 박사가 강조하듯, 이 시도는 이미 늦어져 있었고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직 장관은 스위스 외교가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왜 하필 1944년 봄이었나?
그렇다면 왜 1944년 봄에야 비로소 요제프 베크를 스위스로 데려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을까? 그는 1939년 9월의 참사, 즉 폴란드 침공과 무너짐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망명 정부 내부에도 적이 많았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그를 루마니아에 계속 머물게 하는 것이 당시 폴란드 당국에 편리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전직 장관이 독일이나 소련의 손에 넘어가는 상황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야말로 안전한 곳으로의 후송을 위한, 비록 늦었지만 절박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출처
Paweł Duber, Unknown documents regarding the attempt to get Minister Józef Beck out of Romania in 1944(1944년 요제프 베크 장관의 루마니아 탈출 시도에 관한 미공개 문서), 학술지 「Memory and Justice」, 2014년, 제2호(24), 447~4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