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역사상 가장 귀중한 다이아몬드 5개, 전설의 보석들이 걸어온 길

다이아몬드는 수세기 동안 왕과 황제, 부유층, 그리고 물론 도둑들까지 매료시켜 온 보석입니다. 수많은 다이아몬드의 역사는 영화 시나리오를 따로 쓸 필요가 없을 만큼 극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들은 어떻게 지금의 주인 손에 들어갔으며, 얼마나 많은 값이 치러졌을까요?


스페인 작가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이아몬드란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성공한 석탄 덩어리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지만, 그 '석탄 덩어리'가 빛나는 보석이 되기까지는 스릴러 영화 같은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코이누르(Koh-i-Noor) — '빛의 산'

오늘날 '코이누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귀한 보석보다는 크레파스 회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명은 사실 영국 여왕의 왕관 십자가를 장식하는 전설적인 보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진짜 코이누르, 즉 '빛의 산(Mountain of Light)'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지금 런던 타워 박물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귀중한 다이아몬드 5개, 전설의 보석들이 걸어온 길

다이아몬드는 영국 군주의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사진은 조지 5세 국왕과 마리 왕비로, 왕비의 왕관에는 코이누르가 박혀 있고 목걸이에는 컬리넌 1호가, 브로치에는 컬리넌 2호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보석의 발견 역사는 미스터리로 가득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코이누르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이아몬드이며 기원전 3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반면 13세기 인도 남서부 콜루르에서 발굴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문제는 그 지역 광산이 개장된 것은 16세기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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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코이누르. 사진은 유명 보석의 복제품입니다.

'빛의 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무굴 제국의 황제 바부르(Babur), 즉 15~16세기 교차기에 살았던 인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부르는 이 무가의 보석을 아들 후마윤에게 넘겨주며, 이런 보물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신이 결정짓는 전쟁에서 빼앗거나 주인에게서 물려받을 수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후마윤은 후자를 택해 페르시아의 샤 타흐마스프에게 선물함으로써 환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군주들을 기록한 한 작가는, 페르시아 보석상들이 코이누르를 "그 어떤 값으로도 평가할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바부르의 다이아몬드는 다른 보물들과 달리 가격 자체를 매길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후 보석은 여러 번 주인을 바꿨습니다. 18세기에는 페르시아 정복자 나디르 샤의 손에 들어갔고, 이후 카불로 옮겨졌습니다. 마침내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뉜 역사적 지역인 펀자브의 최대 도시 라호르에 도달했고, 바로 그곳에서 동인도회사 군대가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이 보석을 압수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귀중한 전리품이 유럽에 도달하기 전 영원히 잃어버릴 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영국행 마지막 구간에서 코이누르를 실은 메데아 호는 12시간 동안 거센 폭풍우와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 보석은 1850년 7월 3일 버킹엄궁에서 여왕에게 헌상되었습니다.

그 이후 '빛의 산'의 운명은 큰 파란 없이 이어졌습니다. 감정을 좀 더 끌어올린 1852년의 재연마 작업이 몇 가지 화제를 모았고, 20세기에는 누가 진짜 소유자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76년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보석의 평온을 깬 것은 무게를 잴 때뿐이었고, 마침내 왕관에 자리 잡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코이누르를 손에 넣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권력을 쥔 자는 원하는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요.


컬리넌(Cullinan) — 하나의 원석에서 나온 9개의 다이아몬드

또 하나의 독특한 다이아몬드인 컬리넌은 19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인근 프리미어 광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무게는 3,100캐럿이 넘었고 620g을 훌쩍 넘었습니다. 한쪽 면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원래는 더 컸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 발견은 '등불 아래가 어둡다'는 말로 요약하기에 딱 좋습니다. 광산 감독관 프레더릭 웰스는 평소처럼 광산을 점검하다 지하에서 노을의 마지막 빛줄기처럼 반짝이는 무언가에 시선을 끌렸습니다. 그 전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웰스는 저 큰 조각이 진짜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고, 분명 유리 조각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판단은 틀렸고, 이 발견물은 광산 소유주인 토머스 컬리넌 경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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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프레더릭 웰스가 컬리넌 다이아몬드를 들고 있는 모습.

당연히 이런 규모의 보석은 아무에게나 넘어가지 않습니다. 거대 원석은 19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구입했으며, 15만 파운드를 주고 산 컬리넌은 에드워드 7세 국왕의 생일 선물로 준비되었습니다.

보석 운송 과정은 의외로 완전히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배로 영국으로 갈지 숨기려는 노력조차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위장 연극이었다는 점입니다. 귀중한 선물은 특별히 보호된 상자가 아니라 평범한 우편 소포로 발송되었고, 소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에드워드 국왕은 선물을 높이 평가했지만, 원석을 작은 조각으로 나눌 것을 원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아홉 개의 다이아몬드가 탄생했고, 지금 모두 왕실 보석류에 속해 있습니다.

왕실의 의뢰를 맡은 곳은 네덜란드의 저명한 애셔 형제 회사, 로열 애셔 다이아몬드 컴퍼니였습니다. 이들은 10개월 동안 원석을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마침내 1908년 2월 10일, 조지프 애셔가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적절한 홈이 파인 특수 절단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작업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날이 부러지고 원석은 꿈쩍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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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넌을 절단하는 조지프 애셔.

세 달 뒤 두 번째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번에는 계획대로 원석이 갈라졌습니다. 작업 직후 애셔는 기절했다고 전해지는데,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이때 만들어진 아홉 개 중 가장 큰 컬리넌 1호는 530.2캐럿으로 영국 왕실의 홀에 박혀 있으며, 그 가치는 4억 달러에 달한다고 평가됩니다.


호프(Hope) — '희망'과는 거리가 먼 이름

'호프'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보석은 1668년 이전 인도 골콘다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 우상의 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세상 어딘가에 쌍둥이가 있을 텐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12캐럿의 푸른 다이아몬드는 여행가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가 여정 중 발견했습니다. 이 색을 지닌 보석 중 가장 크다는 확신이 든 그는 다이아몬드를 사서 프랑스로 밀반출했습니다. 그리고 기록적인 크기의 보석과 군주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간파해 루이 14세에게 팔았습니다. 태양왕의 요청으로 연마된 호프는 '겨우' 67.5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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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푸른 보석은 마리 앙투아네트 등 여러 인물의 손을 거쳤습니다.

태양왕은 이 비싼 보석을 단 한 차례 착용한 뒤 몽테스팡 후작 부인에게 넘겼습니다. 불행히도 국왕의 정부이자 일곱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곧 국왕의 총애를 잃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아름다운 장식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친구 마리테레즈루이즈 드 사부아카리냥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두 여인 모두 처형대에 올랐지만, 이는 궁정과 혁명기에 '거대한 푸른 다이아몬드'라 불리던 저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를 집어삼킨 혼란은 왕실 보물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792년 보석은 도난당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1830년에야 같은 색의 다이아몬드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연마 방식이 달라져 크기는 '겨우' 44.5캐럿이 되어 있었고, 영국 은행가 헨리 토머스 호프가 이를 구입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는 이 보물에 100만 달러의 보험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 소유물은 후계자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호프 경의 상속인 프랜시스 펠햄 클린턴 호프는 그렇게 큰 재산에도 불구하고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보석의 다음 주인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하미트 2세였습니다. 그는 45만 달러를 지불해 보석을 네 명의 아내 중 한 명인 수바야에게 주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술탄에 대한 음모를 꾸미다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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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호프 다이아몬드는 워싱턴 D.C.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호프는 거대한 재산을 소유한 미국인 에블린 월시 매클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파티에서 이 보석을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습니다. 그 뒤 미국의 저명한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보석을 인수했고, 10년간 소유하다 마침내 워싱턴 스미소니언 협회에 기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현재 호프는 세계 최대의 짙은 푸른 다이아몬드이며, 가치는 최대 3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물론 판매된다면의 이야기입니다.


디비어스 센테너리 — 1억 달러의 보험

디비어스 센테너리(De Beers Centenary)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1988년 5월 11일, 디비어스 다이아몬드 광산 100주년을 기념해 공개되었습니다. 1986년 프리미어 광산에서 X선을 이용해 발견되었으며, 완전히 무색임을 의미하는 D등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런 원석은 극히 드물기에 1억 달러에 달하는 보험이 들어졌습니다.

디비어스 광산의 자랑인 이 보석은 크기에서도 돋보입니다. 원석 무게는 무려 599캐럿에 달했습니다. 독특한 다이아몬드는 저명한 보석 장인 가브리엘 톨코프스키의 감독 아래 엄선된 소수 인원이 연마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에는 디비어스 센테너리 작업을 위한 특수 지하 실험실이 마련되었습니다. 진동도 없었고 미세한 온도 변화조차 없었습니다. 자연의 기적을 연마하는 데 어떤 방해 요소도 용납되지 않았고, 경비원들이 전 과정의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완성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는 자연스러운 배 모양을 유지했지만 무게는 '겨우' 273캐럿, 약 55g으로 줄었습니다.

이 보석은 1991년 앤트워프 전시회에서 대중에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 몇 년간 런던 타워에 대여되었습니다. 불행히도 판매되었는지, 누구에게 팔렸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 팔렸지만 한 번도 결제되지 않은 보석

지금까지 소개한 전설적인 보석들은 일반인의 손이 닿지 않습니다. 가격 문제만이 아니라 애초에 판매에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독특한 다이아몬드가 경매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구매 가능'하다는 건 천문학적인 가격을 감수해야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역사상 가장 귀중한 다이아몬드 5개, 전설의 보석들이 걸어온 길

핑크 스타. 소더비 경매장이 제작한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지금까지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보석은 핑크 스타(Pink Star)입니다. 자두 크기만 한 이 독특한 원석은 2017년 소더비 경매에서 7천만 달러를 넘는 가격에 팔렸습니다. 흥미롭게도 4년 전인 2013년에는 8천 3백만 달러로 더 높은 가격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낙찰자인 아이작 울프가 대금을 결제하지 않으면서 거래는 무산되었습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배경에는 이 보석이 역대 발견된 분홍색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크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1999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 당시 무게는 132.5캐럿이었고, 이스라엘 사업가 베니 슈타인메츠의 2년간 연마 끝에 59.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탄생했습니다. 보석의 첫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슈타인메츠 핑크'였습니다. 이후 새 주인인 보석 유통기업 초우타이푹(Chow Tai Fook Enterprises)을 기려 CTF 핑크 스타로 개명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마체이 시엠비에다의 소설 장소와 이름(Capital Letter, 2018)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