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혹한 속 살아남은 자들의 조언: 동부전선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추위 대처법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북극권의 혹한 앞에서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매일같이 적과 최악의 날씨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사람들만큼, 추위와 싸우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만 밀어주면 저 무너져가는 건물 전체가 쿵 하고 주저앉을 것이다."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직전 아돌프 히틀러가 내뱉은 이 말은, 그가 소련군을 얼마나 얕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독일의 입장에서 이번 전역 역시 또 하나의 신속하고 승리스러운 원정이 될 터였습니다.

국방군(베르마흐트)은 몇 달 안에 붉은 군대를 궤멸시키고, 크렘린궁 위에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게양될 것이라 계획했습니다.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힌 독일군은 러시아의 혹한에 대한 준비조차 하지 않은 채 전쟁에 나섰습니다. 마치 반팔 차림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믿는 듯이 말입니다.

바이에른 반바지 vs 서리 할아버지

전선 반대편인 소련의 상황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와의 전쟁(겨울전쟁) 경험까지 있었으니, 소련군은 추위와의 싸움에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마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붉은 군대의 일부 사단, 특히 시베리아 출신 부대들은 훌륭한 동장구를 갖추고 있었지만, 나머지 병력 대다수는 '서리 할아버지'의 도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따뜻한 모자와 장갑이 절실히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붉은 군대에게 지급된 의복은 독일군의 동복보다는 나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솜을 넣은 누비 바지와 누비 재킷(텔로그레이카)은 양측 진영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탐님이 되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생존의 열쇠는 바로 즉석 재주와 임기응변이었습니다.

혹한 속 살아남은 자들의 조언: 동부전선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추위 대처법

심한 혹한에는 적절한 방한복이 필수입니다. 사진 속 붉은 군대 병사들에게는 불평거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 정도 차림이라면 어떤 혹한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출처: Bundesarchiv; lic. CC ASA 3.0).

생명을 구한 양동이 난로!

전쟁에서 생존하려면 좋은 참호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땅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소련군 병사들은 겨우 40~50cm 깊이의 움막밖에 파지 못했습니다. 완성된 움막 위에는 방수포를 덮었습니다. 이런 피난처에서는 누울 수밖에 없었는데, 되도록이면 통조림 정어리처럼 몸을 붙여 나란히 눕는 것이 좋았습니다. 한쪽으로 몸을 붙여 잠을 잤고, 때로는 서리가 너무 강해 손가락이나 코는 물론 몸의 절반이 얼어붙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병사 중 한 명이 주기적으로 "몸을 돌려!"라는 명령을 외치곤 했습니다.

가능할 때마다 병사들은 양동이를 활용한 조잡한 난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가장 추운 밤에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이런 열원은 몸을 데워줄 뿐 아니라 사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발을 난로에 올려놓을 수도 있었고, 발레니키(무릎 아래까지 오는 방수성 펠트 부츠)를 말리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러시아식 신발에서 나는 악취는 충격적이었지만, 전쟁터에서는 무엇이든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일부 병사들은 '호화로운 숙소'를 밝히기 위해 전화선 피복을 태워 불을 밝혔는데, 그 연기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얼굴을 새카맣게 그을렸습니다.

아침이면 병사들은 타르처럼 검은 침을 뱉어냈습니다. 어느 상등병은 온통 그을음투성이가 된 동료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르겠네, 당신이 얼굴로 가는 건지 엉덩이로 가는 건지..." (N. 니쿨린, 『솔다트』 인용)

신발이 안 벗겨진다고요? 다리째 잘라내죠!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국방군 병사 모두가 꿈꾸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총통과의 악수? 헬가라는 이름의 아내가 데워준 침대? 물론 아닙니다. 그들을 사로잡은 집착은 단 하나, 러시아식 양피지 코트를 손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양피지 코트는 매우 따뜻하고 재단도 잘 된 외투였습니다. 소련 시베리아 사단들이 주로 착용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최전선에서 싸웠습니다. 독일군(러시아인들은 독일군을 '프리츠'라고 불렀습니다)은 전사한 소련군 병사들에게서 이 외투를 벗겨 얻곤 했습니다.

혹한 속 살아남은 자들의 조언: 동부전선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추위 대처법

폐허와 눈, 그것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싸우는 이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손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발레니키였습니다. 얼어붙은 시신의 발에서 이 신발은 어떤 보물을 줘도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독일군 병사는 시신의 다리를 통째로 잘라내는 방법을 고안했고, 잘라낸 다리를 목욕탕으로 옮겨 해동한 뒤 신발을 벗겨냈습니다.

이런 기발함을 보인 사람은 그가 유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는 혹한과 싸우는 방법 중 가장 덜 섬뜩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기온이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면, 전선 양측의 병사들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독일군은 너무 절박한 나머지 배회하던 개를 잡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가죽을 벗겨 장갑 같은 것을 만들었고, 말 가죽으로는 재킷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수제 '의복'은 입으면 딱딱하고 불편했지만 제 역할은 했습니다. 마비시키는 듯한 혹한으로부터 몸을 지켜준 것입니다.

혹한 속 살아남은 자들의 조언: 동부전선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추위 대처법

가난과 절망의 초상, 스탈린그라드의 루마니아군 병사. 그의 군복은 소련의 혹한에 명백히 맞지 않았습니다.

모자 대신 소련군 발싸개를 두른 독일군

심한 혹한 속에서 독일군의 유명한 철모는 마치 냉동실 칸처럼 변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사들은 손에 닿는 무엇이든 머리에 감았습니다. 흔히 스카프나 포장천을 사용했고, 속옷이나 소련군의 발싸개(오누치)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오누치는 양말 대신 사용하는 리넨이나 면 플란넬 천 조각으로, 발과 다리를 감싸는 용도였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된 많은 독일군 병사들은 제대로 된 방한복을 제때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즉석 재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처참했던 것은 들판 한가운데 노출된 병사들이었습니다. 땅이 너무 얼어 있어 참호를 파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땅을 조금이라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워야 했습니다.

나무는 구하기 어려운 귀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시골 오두막이 근처에 있다면 즉시 해체해버렸습니다. 이렇게 얻은 판재와 들보는 움막 지붕을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러시아인 주인들은 쫓겨나 홀로 남겨졌고, 물론 그 전에 병사들은 주인의 따뜻한 옷부터 거두어 갔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에게 생존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부었다면? 잘라내죠!

극심한 혹한으로 목숨을 잃은 병사의 수는 가늠조차 불가능합니다. 병사들은 늘 자신의 재주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독일군 지휘관들은 부하들을 좀 더 챙겼습니다. 동상 치료용 특제 노란 연고가 지급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연고가 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한 속 살아남은 자들의 조언: 동부전선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추위 대처법

스탈린그라드에서 가장 가혹했던 것은 들판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몫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너무 심하게 부어 방아쇠 울타리에도 들어가지 않아, 불쌍한 병사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괴저가 자주 발생했고, 이때 유일한 선택지는 팔다리 절단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이름으로 싸우러 나섰던 오만한 아리안인들은 결국 러시아의 겨울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절단된 팔다리에, 노획한 소련군 발싸개를 머리에 감은 채 그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만약 동부전선에 '그런 기후'가 없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