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잠수함의 수와 전투력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막는 문제가 영국에게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기묘하고, 때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영국 해군은 적 잠수함을 탐지하고 무력화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대전에 돌입했다. 손실은 경악스러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그야말로 절박했다.

젤리코 제독의 우려

1914년에는 유보트가 겨우 3척의 상선을 격침시켰지만, 다음 해에는 무려 640척, 1916년에는 1301척으로 치솟았다. 이런 속도로 수송선단이 줄어든다면 섬나라 영국은 기근의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영국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로버트 K. 매시가 저서 『강철 요새』 4권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당시 왕립해군 사령관 존 젤리코 제독은 1916년 말 이렇게 적었다.

“수송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 불필요한 수입을 억제하고, 식량 배급을 실시하고, 새 배 건조를 시작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몇 달 전에 취했어야 했다. 너무 늦지 않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영국식 '대규모 민간 순찰'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수함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하는 일이었다. 전쟁 초기 영국 해군 부대는 공격해오는 유보트 앞에서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자원하는 시민들이 동원되었고, 항구 주변을 개인 요트와 보트들이 순찰하기 시작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또 한 척의 유보트 희생자가 가라앉는다. 그런데 이런 적을 대체 어떻게 막아야 할까? 사진은 화가 윌리 슈퇴베르의 작품이다.

그러나 수중의 적과 마주쳐도 그들을 위협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로버트 K. 매시에 따르면 10척 중 단 1척만이 엽총보다 큰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 선박들 중에는 잠수부 두 명을 태운 배도 몇 척 있었다. 한 명은 망치를, 다른 한 명은 검은 자루를 들고 있었다. 유보트의 잠망경이 발견되면 잠수부 한 명이 그 위에 자루를 씌우는 임무를 맡았다.

실패하면 다른 병사가 나서서 망치로 잠망경 유리를 깨야 했다. 곡괭이로 '연약한' 잠수함 선체에 구멍을 뚫자는 발상도 있었다.

어떤 구상은 완전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예컨대 바다에 녹색 페인트를 뿌려 잠망경 렌즈에 달라붙게 하면, 독일 함장이 자신 함정의 잠항 깊이를 착각하게 될 것이라는 제안이 있었다.

극히 강력한 자석으로 유보트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자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함대 사령부는 어쩌면 무력감의 표현이었을지 모르지만, 심해에 숨어 있는 적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영능력자까지 고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갈매기를 목표물로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영국은 잠수함 탐지에 동물을 활용하는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바다사자와 갈매기가 극비리에 훈련되었다. 바다사자는 물고기의 존재는 무시하고 잠항한 유보트 소리에만 반응하도록 훈련받았으며, 성공할 때마다 특별한 먹이로 보상받았다.

갈매기를 활용하는 계획은 훨씬 더 진전되어 있었다. 이 새들의 임무는 자신의 배설물로 잠망경을 '폭격'해 독일 승조원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것이었다! 왕립해군은 이 문제를 최대한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험을 위해 자체 잠수함까지 배정했다. 프로젝트는 결국 1917년 8월 중단되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갈매기 배설물이 유보트에 대한 효과적인 무기? 영국은 실제로 이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했다!(사진: Sanchezn, CC BY-SA 3.0)

이 모든 아이디어는 실전에 적용되지 못했다. 유보트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상함의 포격이나 충각 돌입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운이 필요했다. 독일 잠수함을 수면 위에서 포획해 함포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낮은 실루엣 때문에 신속한 탐지와 사격이 어려웠다.

유보트의 최대 긴급 잠항 시간은 약 3분이었고, 대개 그 안에 심해로 무사히 숨을 수 있었다. 충각 공격의 경우 공격함은 사라지는 적을 붙잡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의 함정이 크게 손상될 위험도 항상 따랐다.

처칠의 기습

1915년 6월 23일, 포스만(Firth of Forth) 북쪽 약 60마일 해상에서 U-40 잠수함의 신호병들이 작은 어선 한 척을 발견했다. 쉬운 먹이라 확신한 독일군은 즉시 그 배를 향해 이동했다. 타라나키(Taranaki)라는 이름의 이 배는 유보트의 신호에 따라 정지했다. U-40은 영국 승조원이 배를 떠나 포격으로 침몰시킬 수 있기를 기다리며 서서히 접근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1차 대전 당시 유보트의 내부 모습.

그런데 뜻밖에도 어뢰 한 발이 함교 바로 아래 선체에 꽂혔다. U-40은 빠르게 해저로 가라앉았다. 승조원 중 생존자는 겨우 세 명뿐이었으며, 그중에는 우연히 함교 밖에 있던 함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격침의 장본인은 영국 잠수함 C-24였다. '타라나키'는 미끼였다. 이 배는 C-24를 예인하면서 동시에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 잠수함의 함장은 어선 승무원으로부터 모든 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영국 잠수함 C-24. 바로 이 함정이 U-40을 해저로 보냈다.

로버트 K. 매시가 『강철 요새』 4권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유보트 함장이 트롤선에 끌려 올라왔을 때 그는 자신의 배가 '더러운 속임수'로 인해 침몰했다며 쓰디쓴 불평을 토해냈다.

이 독일 잠수함 대응법의 창안자는 다름 아닌 윈스턴 처칠 본인이었다. 온갖 비정통적 기획을 즐기던 그는 당시 해군성 장관(First Lord of the Admiralty)이었다.

특별 임무 함선, Q-십

처칠이 직책에서 물러난 후 미끼 어선과 잠수함의 연계 운용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겉보기에 '무방비한' 함선으로 유보트를 잡는다는 발상 자체는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다.

영국은 위장된 함포를 갖춘, 무장이 잘 된 더 큰 배들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배들의 임무 역시 잠수함을 수면 위로 유인해 올라온 순간, 즉 공격에 가장 취약한 시점에 포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 함선들은 Q-십(Q-ships), 즉 '특별 임무 함선' 또는 '미스터리 함선'이라 불렸다.

승조원은 영국 해군 장교와 수병 자원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신분은 항상 이중이었다. 일부는 기계, 장비, 무기를 담당했고, 나머지는 이른바 '패닉 부대'에 속했다. 이들은 진짜 배우로 변신해야 했다. 매시는 이렇게 기술했다.

군복을 벗고 누더기를 걸치고 (...),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콧수염이 늘어져 있었다. 한 해군 중령은 자신의 Q-함 함교에서 금발 가발을 쓰고 걸어 다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망진창인 외모와는 달리, Q-함의 규율과 전투 준비태세는 대함대 기함보다 더 높았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영국의 Q-함 HMS 타마리스크(HMS Tamarisk).

이것은 목숨을 건 고양이와 쥐 놀이였다. 유보트가 위치를 드러내는 순간, '패닉에 빠진' 부대는 독일 함장을 속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수병들은 갑판 위를 뛰어다니며 구명보트를 내리고 배를 버리는 척 떠났다.

자신만만한 독일 잠수함이 '텅 빈' 무방비한 배에 가까이 다가와 포격을 가하려는 순간, 포 방패가 내려왔다. 함포는 적 함정에 최대한 많은 구멍을 뚫어 '최후의 잠항'을 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전쟁 내내 Q-함은 총 12척의 유보트를 격침시켰다.

해상 전쟁을 바꾼 발명품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영국 함대는 독일 잠수함과 싸울 더 효과적인 도구들을 하나씩 갖추게 되었다. 호위 부대가 유보트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소음 탐지기가 등장했다.

최초의 소나 장치들도 시험 단계에 들어갔다. 산업계는 대잠 기뢰와 함께, 대부분의 함정에 투하할 수 있는 폭뢰(depth charge)를 공급했다.

훈련된 갈매기와 함정선 — 100년 전, 영국이 독일 유보트를 잡던 기발한 방법들

1915년, 해군성 장관 시절의 윈스턴 처칠.

특수 어뢰도 개발되었다. 발사 후 이 어뢰의 항적은 수심 30m에서 반경 약 200m의 원형을 그리며 돌았다. 이런 어뢰를 여러 발 발사하면 적어도 한 발이 목표물에 명중할 확률이 높았다.

마침내 항공기도 유보트의 추적과 공격에 투입되었다. 100여 년 전에 개발된 이 방법들 대부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