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마음을 준 남자들은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여자에게 무심코 눈길 한 번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지하실의 양철통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애의 끝까지, 자신이 연인들을 살해한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사진과 기록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성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남은 단서들로는 온전한 모습을 짜 맞추기 어렵다. 대체 베라 렌치(Vera Renczi), 루마니아 출신의 '검은 미망인'은 누구였으며, 무엇이 그녀의 사랑을 치명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걸까?

별난 요구는 무엇이든 들어주던 귀족 영애

19세기 말(일부 자료는 1903년생이라고 잘못 기술하고 있다) 부쿠레슈티의 루마니아-헝가리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어린 귀족 영애에게 모두가 관심을 쏟았고, 그녀의 별난 요구는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베라의 반사회적 성향이 자라난 도시 베르케레쿨(현재 즈레니야닌). 현재 모습 (사진: Alexzr88, 퍼블릭 도메인).

상황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급변했다. 아버지는 13세 딸을 데리고 세르비아 북부의 작은 마을 베르케레쿨(현재 즈레니야닌)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아이를 소홀히 했다.

늘 자신에게 집중되던 관심에 익숙했던 베라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출 시도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그녀를 여학교에 보냈다. 올바른 처신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빠르게 어엿한 여인으로 성장했다. 먼저 인근 김나지움 학생들, 이어 교사, 은행가, 사업가들까지. 그녀의 연인 목록은 끝이 없었다. 그녀는 구애하는 이들에게 온 마음을 쏟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들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에 싫증을 느꼈다. 바람을 피우거나, 거절하거나, 그저 떠나갔다. 젊은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묶어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곧 방법을 찾아냈다.

바람기 있는 남편은 죽은 남편

스무 살이 되기 전, 그녀의 첫 남편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유한 오스트리아 은행가 카를 싱크(Karl Schink)였다. 아들 로렌츠가 태어날 때까지 두 사람의 나날은 평탄했다. 그러다 중년 신사의 애정이 식기 시작했다. 싱크 부부가 베르케레쿨로 이사한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곳에서 카를은 금세 현지 숙녀들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러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베라의 첫 남편도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다… 잠시 동안만. 라이프치히의 한 은행 내부 (출처: 퍼블릭 도메인).

베라는 지인들에게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말했다. 증거로 그의 마지막 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1년 후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세르비아 사업가 요제프 렌치(Joseph Renczi)였다. 재혼하기 위해서는 이혼 서류든 카를의 사망확인서든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애도하는 척하며 남편이 사고로 죽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현지 관료들은 그녀를 믿었을 뿐 아니라 필요한 문서까지 발급해 주었다. 이윽고 베라는 성을 렌치로 바꿨다. 그런데 결혼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남편 역시 다른 여인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것. 요제프는 아내를 배신했고, 전임자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되었다.

다시 애도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상처받은 여인은 이번에는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하지만 남자들의 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사랑과 찬사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해 새로운 연인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심지어 빈에서부터 구애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고, 곁의 남자들은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의 저택으로 들어온 이들이 잠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렌치 부인은 독신 남자들과 어울리는 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갔다.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베라의 짧은 연애가 펼쳐진 무대. 1914년 베르케레쿨의 헝가리 엽서 (출처: 퍼블릭 도메인).

문제는 20년째 기혼자인 세르비아 은행가 밀로라드(Milorad) 씨가 그녀의 눈에 띄면서 시작됐다. 그마저 실종되자 아내가 직접 수색에 나섰고, 실마리는 베르케레쿨로 이어졌다. 불안해진 밀로라드 부인은 경찰에 의심을 털어놓았다. 베라 렌치는 존경받는 미망인이었기에 관료들은 그녀가 기혼 은행가의 실종에 연루되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다만 이 실마리를 확인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당신들이 올 줄 알았어요"

1925년 5월, 세르비아 경찰관들은 웅장한 저택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렌치 부인은 문을 열어 그들을 안으로 맞았다. 경찰관들이 첫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올 줄 알았어요." 그러고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가리켰다.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렌치 부인의 지하실에서 경찰관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과 비슷한 광경… (웁살라 성당 납골당의 관들, 사진: Riggwelter, CC BY-SA 3.0 라이선스).

경찰관들은 말없이 지하실로 내려갔다. 등불이 음침한 지하를 비추기 시작하자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방 안에는 35개의 양철통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부패의 정도가 제각각인 시체들이 들어 있었다.

관들은 원을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안락의자 하나와 적포도주 한 잔이 놓인 탁자가 있었다. 베라는 즉시 죄를 인정했다. 그녀는 저녁마다 이곳에 찾아와 남자들 곁에 앉았다고 말했다. 포도주를 홀짝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각 관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불쌍한 남자가 그녀와 함께 보낸 날수까지 새겨져 있었다.

관들 사이에는 더 작은 것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한 소년의 유해가 담겨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10살 아들 로렌조의 것으로,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독살된 것이었다. 자신의 '컬렉션'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검은 미망인'은 체포되었다. 구금 중 그녀는 모든 살인을 자백했다. 그녀는 포도주나 음식에 비소를 타서 남자들을 독살했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대량의 독으로 즉사시켰고, 어떤 이들은 매일 소량씩 먹여 천천히 죽였다. 마지막 희생자에게는 치사량의 스트리키닌을 먹였다.

감옥에서 죽은 자들과 나눈 대화

수사 과정에서 베라의 두 남편의 유골이 두 개의 관에 안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밀로라드 씨와 렌치 부인의 아들도 신원이 확인되었다. 나머지 죽은 구애자들은 합동묘지에 안치되었고, 매장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며칠 후 미국 신문 킹스턴 데일리 프리먼(The Kingston Daily Freeman)은 세르비아의 베르케레쿨에서 현지 경찰이 '새로운 루크레치아 보르기아'를 검거했다고 보도했다.

공판에서 베라는 다른 여자에게 떠나갈까 두려워 연인들을 독살했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오직 그녀의 것만이어야 했다. 그들을 영원히 붙잡아 두는 유일한 방법은 살인이었다.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 — 연인 35명을 지하실 양철통에 담아둔  검은 미망인  베라 렌치

이 글은 리처드 G. 존스(Richard G. Jones)의 『여자 살인자들의 대서(The Mammoth Book of Women Who Kill)』 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검은 미망인'은 법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세르비아에서 여성에 대한 사형 집행이 금지되면서 형량은 종신형으로 변경되었다.

너무 많이 사랑한 여자

감옥에서 베라는 정신 질환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희생자들의 환영을 보며 며칠씩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을 사랑한다며, 떠나지 않아 준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그녀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렌치 부인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말일까? 그녀가 1960년까지 살았다는 소문도 있다…

베라 렌치의 이야기는 인생의 남자들을 끝내 놓아줄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이 사랑한 여자에 대한 전설이 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베라의 살인 방식이 미국 작가 조지프 케셀링(Joseph Kesselring)이 1939년 희곡 '독과 낡은 레이스(Arsenic and Old Lace)'를 창작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