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우슈비츠, 마이다네크, 소비보르를 기억한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범죄가 자행되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수백 개의 강제 노동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는 어떠한가? 전간기 폴란드 영토에 있던 그러한 네 곳을 다시 조명한다.
루블린 공항 강제 노동 수용소
마이다네크의 절멸 현장을 보러 루블린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이 이 도시에서 운영된 유일한 독일 수용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1940년, 루블린 중심가 근처에 있던 전쟁 전 공항이 폐쇄되었고, 그 부지 위에 강제 노동 수용소(흔히 '공항 수용소' 또는 '플루크플라츠(Flugplatz) 수용소'로 불림)가 세워졌다. 이곳에는 수많은 작업장이 있었으며, 각국에서 끌려온 유대인들뿐 아니라 폴란드 국적의 여성들도 노역에 동원되었다. 수용자들은 절멸 수용소에서 살해된 희생자들의 유물을 분류하는, 그야말로 역겨운 임무를 맡았다.
마르틴 윈스톤(Martin Winstone)은 저서 『유럽의 홀로코스트 현장』에서 이 수용소의 특이하고도 충격적인 면모를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 안에는 "루블린 최고로 손꼽히던 식당이 있었고, 히믈러도 세 차례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폴란드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자들을 젊고 아름다운 유대인 여성들이 시중들었다."
리비우(Lwów)의 야누프스키(Janowska) 수용소
제3제국이 소련을 침공한 지 몇 달 만에, 새로 점령한 리비우에서 유대인 주민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SS가 통제하던 회사 '도이체 아우스뤼스퉁스베르케(Deutsche Ausrüstungswerke)'는 이전에 유대인 가문이 소유했던 야노프스카 거리의 공장을 인수했고, 이곳은 새로 설립된 수용소의 중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리비우 거리에서 잡혀 온 남성들이 이곳으로 끌려왔다.
독일군은 처음부터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선별을 실시했다. 일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즉시 근처 계곡으로 끌려가 살해되었고, 한계를 넘는 노역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야누프스키 수용소의 경비병들은 극도의 잔혹함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장난감 삼는 병적인 성향까지 드러냈다.
1944년, 리비우 야누프스키 수용소의 중앙 입구
예컨대 그들은 수용소 울타리 주위에서 '죽음의 경주'를 열었다. 가장 늦게 달린 사람(혹은 그들이 지목한 사람)은 계곡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수용소 소장 구스타프 빌하우스(Gustav Wilhaus)와 그의 아내 역시 비슷한 '오락'을 즐겼다. 소장 집무실 발코니에 나와 아홉 살 난 딸을 웃기기 위해 수용자들을 향해 총을 쏘곤 했다는 것이다.
이 수용소에서는 무려 2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살해되었고,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치료받지 못한 병으로 사망했다.
성 안나 언덕(Góra Świętej Anny) 수용소
폴란드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언덕 중 하나의 사면에 세워진 이 수용소는 스스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거의 완전히 잊혀졌지만, 그곳에 갇힌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의 결과물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두 교대로, 주 7일 쉬지 않고 일하며 브로츠와프와 카토비체를 연결할 독일 고속도로 RAB29를 건설했다. 이 도로는 현재 폴란드 국도 88호선의 일부로 남아 있다.
이 글은 마치에이 시엠비에다(Maciej Siembieda)의 소설 『장소와 이름』(Big Letter, 2018)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
'버추얼 슈텔(Virtual Shtetl)'은 『오폴레 실레지아 나치 수용소의 유대인들』이라는 연구를 바탕으로 이렇게 전한다.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노동 체계와 극도로 열악한 생활 조건 탓에 노동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할 수 없는 수용자를 걸러내는 수차례의 선별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는 노동력 부족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성 안나 언덕 수용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이것이 거의 전부다. 이곳은 독일의 죽음 기계에서도 특히 미스터리한 부분 중 하나다. 국가기억연구소(IPN) 오폴레 지부의 야누시 오시트코(Janusz Oszytko)가 강조했듯이 "이 수용소에 관한 문헌은 극히 빈약"하며, 기록은 흩어져 있고 서로 모순된다. 그 결과 매일같이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어갔음에도 희생자 수를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고속도로 공사에 관한 기록도 없다. 적어도 이 수용소의 희생자들과 관련해서는 말이다. 또한 도로 공사가 끝난 후 갇힌 유대인들이 어떤 노역을 강요당했는지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수용소의 미스터리한 역사는 독일 수용소 수용자들의 고통을 산문의 형태로 되살리려는 연구자들과 작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최근에 그런 시도를 한 이가 바로 마치에이 시엠비에다다. 그의 소설 『장소와 이름』의 핵심 줄거리는 오폴레 근교의 수용소에서 펼쳐진다.
1930년대의 안나베르크(Annaberg), 오늘날의 성 안나 언덕
이즈비차(Izbica) 수용소
루블린 주에 위치한 이즈비차는 1월 봉기 이후의 탄압 과정에서 도시 특권을 박탈당한 수많은 폴란드 도시 중 하나였다. 전간기에 6,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았지만, 이 마을은 도시 지위를 결코 되찾지 못했다. 대신 풍자시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즈비차 – 유대인의 수도"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마을의 인구 구성으로 정당화되는 명칭이었다. 유대인 혈통의 사람들이 이즈비차 주민의 9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942년, 마을 전체가 26,000명의 유대인을 수용하는 대규모 게토로 변모했다. 기존 주민들은 빠르게 쫓겨났다. 같은 해 3월, 지역 공동체 소속 4,000명이 베우제츠(Bełżec)로 이송되어 살해되었다. 다른 이들 역시 이즈비차 묘지와 소비보르(Sobibór)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쟁을 살아남은 이즈비차 출신 유대인은 단 13명뿐이었고, 남은 것은 옛 마을의 건물들과 이름뿐이었다.
성 안나 언덕의 수용소와 같은 곳을 만들고, 인간의 생명을 무시한 채 운영한 범죄적인 독일 조직 '슈멜트 조직(Schmelt Organization)'에 대한 글도 함께 읽어보자.
참고 문헌
- M.M. 보비치(M.M. Borwicz), 『폭력배들의 대학교. 리비우 야누프스키 수용소 1941–1944』, High Castle, 2014.
- R. 쿠바웨크(R. Kuwałek), 『루블린에서 베우제츠까지: 루블린 남동부 지역의 유대인 흔적과 절멸』, Adrem, 2006.
- 『플루크플라츠 강제 노동 수용소』, "NN 극장(NN Theater)".
- 『강제 노동 수용소 – 츠반스아르바이츠라거 안나베르크(Zwangsarbeitslager Annaberg)』, "버추얼 슈텔(Virtual Shtetl)".
- J. 오시트코(J. Oszytko), 『성 안나 언덕 유대인 강제 노동 수용소(1941–1945)』, [수록] 『현대 폴란드 연구의 유대인과 유대교』(편집: K. 필라르치크, S. 갱시오로프스키), 폴란드 학술원(PAU), 2000.
- K. 시비에르코시(K. Świerkosz), 『제2차 세계대전 중 오폴레 실레지아 나치 수용소의 유대인들』, [수록] 『바르샤바 게토 봉기 45주년(1943–1988)』, 대중 과학 세미나 자료집, 오폴레, 1988.
- M. 윈스톤(M. Winstone), 『유럽의 홀로코스트 현장』, Bellona,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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