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제국에서는 모든 것이 군사화되었습니다. 히틀러유겐트 소속 소년들은 군 복무를 준비했고, 제국노동봉사단의 노동자들은 소총 대신 삽을 어깨에 멘 채 행진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여성들의 자궁마저 정치적 전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자녀를 낳는 것에 대한 보상은 결코 새로운 발상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20년에 '프랑스 가족 명예 메달'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독일판인 '독일 어머니 명예십자장(Ehrenkreuz der Deutschen Mutter)'은 훨씬 강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훈장은 1938년에 제정되었으며, 일반적으로 '무터크로이츠(Mutterkreuz)', 즉 '어머니 십자장'으로 불렸습니다. 길쭉하게 늘어난 철십자장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흰색 테두리가 둘린 파란색 에나멜로 덮여 있었습니다. 십자 팔 사이에는 금색 광선이 빛나고, 중앙에는 "Der Deutschen Mutter(독일의 어머니)"라는 문구로 둘러싸인 검은 만자가 새겨진 원형 방패가 자리했습니다. 뒷면에는 수여 날짜인 1938년 12월 16일과 히틀러의 서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준, 자녀의 수
이 훈장의 수여 기준은 언뜻 단순해 보였습니다. 자녀 수에 따라 등급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네 명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청동 십자장이, 여섯 명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은제, 여덟 명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금제 십자장이 수여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훈장을 조롱 섞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바로 '토끼 훈장'입니다.
그러나 실제 수여 기준은 단순한 출산 수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인종적·사회적 편견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 여성과 롬 여성은 훈장을 받을 수 없었고, 후보자와 그 배우자는 유전병이 없는 아리아인이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성실하고 법을 준수하며 도덕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부모만이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고, 근면하지 않은 이들은 배제되었습니다. 그 결과 신청자들은 철저한 조사를 거쳐야 했으며, 신청서의 약 5%는 거부되었습니다.
무터크로이츠가 처음 수여된 것은 1939년 5월 21일이었습니다. 여덟 명의 자녀를 키워낸 뮌헨의 루이제 바이덴펠러(Louise Weidenfeller)가 최고 등급인 금제 십자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 훈장은 400만 명이 넘는 어머니들에게 수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훈식은 지역 당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로 어머니의 날에 거행되었습니다.
최고의 예우와 함께
훈장을 받은 어머니 앞에서 히틀러유겐트 단원들은 경례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또한 수훈자들은 나치 관료들의 우대를 받았고,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과 동등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무터크로이츠를 조롱하여 '토끼 훈장(Kaninchenorden)'이라 불렀던지도 모릅니다.

무터크로이츠가 말해주는 것
나치 통치의 잔혹한 현실 속에서 어머니 십자장은 다소 시시해 보이는 주제, 훨씬 중요한 이야기에 덧붙은 사소한 장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훈장은 나치 독일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사회 전반이 군사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제3제국이 훗날의 전통적인 전쟁에 참전했듯이 이미 '인구 통계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무터크로이츠는 우생학에 대한 집착이나 인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 사람들에 대한 강제 불임 수술과 마찬가지로, 나치가 국민의 생물학적 건강 상태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부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훈장은 독일 여성의 자궁마저 정치화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처
이 글은 로저 무어하우스(Roger Moorhouse)의 저서 『100개의 물건으로 본 제3제국(The Third Reich in 100 Objects)』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