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939년, 바르샤바 항복 명령에 분노한 사관후보생이 르멜 장군을 쏘러 온 날

항복 명령과 병사들의 반발

1939년 9월 말, 폴란드의 지휘관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례차례 항복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자기 부대 안에서조차 오해와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바르샤바 방어군을 지휘한 율리우시 르멜(Juliusz Rómmel) 장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명령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입니다.

바르샤바 인근에서 르멜 장군의 항복 명령에 대해 병사들이 쏟아낸 격렬한 항의는, 침략자와의 싸움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진 수비군의 뜨거운 투지를 잘 보여줍니다. 각 방어 구역의 부대들은 끝까지 무장 해제를 거부했습니다. 직속 지휘관들이 상황의 참상과 더 이상의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직접 설득해야만, 병사들은 비로소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병사들의 타협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바르샤바' 군(軍) 사령부에는 기묘한 사건이 벌어졌고, 르멜 장군은 고스란히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사령부를 찾아온 '피우수츠키'

9월 29일, '피우수츠키(Piłsudski)'라는 이름의 사관후보생이 사령부를 찾아왔습니다. 장군은 그가 고(故) 피우수츠키 원수의 가족일 것이라 여기고 그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전투 복장을 완비하고 손에는 소총을 든 사관후보생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장군 앞에 서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부담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르멜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 대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야말로 비상한 시대였던 만큼, 사람들의 반응 역시 비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 많은 아들을 군에 두고 있던 르멜 장군은 이 젊은이에게 높은 상관이라기보다 아버지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사관후보생에게 다가가 끌어안았습니다.

그러자 후보생은 자신이 참호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승리했고, 독일군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으며, 교전이 벌어질 때마다 적을 모든 면에서 눌러부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행한 항복 명령이 우리 모두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게 하고 겁먹게 했습니다."라고 그는 장군에게 아뢰었습니다.

1939년, 바르샤바 항복 명령에 분노한 사관후보생이 르멜 장군을 쏘러 온 날

권총을 탁자에 던지며

이 일화의 결말은 아폴로니우시 자빌스키(Apoloniusz Zawilski)의 저서 『폴란드의 9월 전투』(Horizon 2018)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장군이 침착하게 조국이 처한 실제 상황을 설명하고, 더 이상의 유혈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확신시켰을 때, 후보생은 제복에서 권총을 꺼내 탁자 위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리 중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장군님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군님을 쏘러 왔습니다. 부디 저를 군법회의에 넘겨주십시오."

이 가엾고도 비극적인 '1939년의 코르디안(Kordian)'은, 눈부신 승리를 약속받았던 수십만 병사에게 패배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율리우시 스워바츠키의 동명 희곡 주인공처럼, 그는 조국을 위해 총구를 겨눴지만 결국 자신의 무지와 충성심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출처

위 글은 아폴로니우시 자빌스키의 대작 『폴란드의 9월 전투』(Horizon 2018)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제목, 리드, 삽화와 캡션, 강조 표현 및 소제목은 편집부가 추가했으며, 본문은 가독성을 위해 문단 구분 등 일부 편집을 거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