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연합군은 그들을 '캐러밴'이라 불렀다… 나치 U보트 승선 생활은 얼마나 처참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보트(독일 잠수함)는 공중·육상·해상을 통틀어 양측 모두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한 부대였습니다. 잠수함 승조원의 평균 수명은 불과 50일. 나치 독일 잠수함에서의 복무는 결코 쉽고 유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U보트 내부는 출항 6일 만에 이미 퀴퀴한 냄새와 축축한 습기로 가득 찼습니다. U-48은 1940년 9월 8일 저녁 프랑스 로리앙 항구를 떠났습니다. 38명의 승조원은 자신들이 수중 생활에 완벽히 준비되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들은 일부 아직 십대 소년이었고 거의 대부분 미혼자였으며, 엄격한 체력 훈련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어려운 수중 항해술을 배웠고 잠수함의 구조와 기술도 익혔습니다. 강철 선체의 폐쇄적인 좁은 공간과, 배가 무거운 모터보트처럼 수면을 가르며 전진할 때 갑판 난간에 몸을 묶어야 하는 굴욕을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최종 선발되었습니다.

U보트처럼 무력한 존재

그럼에도 잠수함의 냉혹한 현실에 대비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젖은 식탁, 끊임없이 눅눅한 수건, 그리고 파리지앵처럼 탐스러운 이(빈대)들이 그것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평온했던 순간은 수면 위였습니다. 독일산 디젤 엔진이 드디어 공기를 빨아들이며 전속으로 질주할 때였습니다. 반면 수중에서는 배가 느려지고 무방비 상태가 되었는데, 전동 모터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만 배를 천천히 앞으로 밀어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전된 축전지를 재충전하려면 결국 수면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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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보트에서의 복무는 고되었고, 급작스러운 죽음의 위협과 늘 함께했습니다.

U-48의 선체 안에서 승조원 중 누구도 자신만의 자리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침상은 교대로 사용했고, 여전히 이전 사용자의 체온이 남아 있어 반갑기도 하고 역겹기도 했습니다. 예민하게 잠드는 이들은 피스톤의 끊임없는 두근거림, 흡기 밸브의 탄식과 덜컹거림, 빌지 펌프의 꾸르륵거림에 잠에서 깨곤 했습니다.

승조원들은 이 모든 소음을 사이렌이 "Achtung!(경계!)" 신호와 함께 알리는 위험 징후와 구분하는 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속삭임의 나라

며칠씩 지루함이 이어졌습니다. 죽은 시간은 체스를 두고 편지를 쓰며 채워졌습니다. 한 선원은 파도 아래에서 자신을 곁에 있어 달라고 물고기를 데려왔는데, 프리돌린(Fridolin)이라는 이름을 붙인 금붕어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른한 분위기는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었습니다.

호위함에게 발각된 U보트는 계기판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깊이 잠수했습니다. 이 기동에는 상당한 섬세함이 요구되었습니다. 너무 깊이 가라앉으면 수압에 의해 리벳이 리볼버 총알처럼 제 자리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반대로 너무 얕으면 공격자의 폭뢰(수심폭탄) 충격파 범위 안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폭뢰란 갑판에서 바다로 던져지고 다양한 수심에서 폭발하도록 설정된 원통형 폭발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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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항한 U보트는 위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왕립 해군의 코르벳함(영국 꽃 이름에서 따온 함명이 상당히 많았는데, 꽤나 역설적인 일이었습니다)이나 구축함이 추격할 때 들려오는 소음은 지나가는 열차 아래 선로 사이에 누워 있는 사람이 듣는 굉음과 같았습니다. 이런 수상 함선에서는 함장의 명령이 바람 소리를 뚫고 들리도록 고함을 지르며 전달되었습니다. 반면 U보트에서는 엔진을 끄는 순간 '속삭임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죽이거나 죽거나'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바로 이 깊은 심해에서 대부분의 잠수함이 침몰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U보트는 공중·육상·해상의 모든 부대 중 양측 모두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습니다.

영국군 비행기는 독일 상공에 전단을 살포하며 잠재적 지원병들에게 경고했습니다. 현재 영국군 포로로 살아 있는 독일 잠수함 2,000척당, 바다에서는 그 5배에 달하는 잠수함이 침몰했다고요. 중립국의 보험회사들은 잠수함 승선 선원의 평균 수명을 50일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선전에 의해 과장된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잠수함에서 복무한 39,000명 중 70%가 전사했습니다. 반면 영국 육군 병력 중 같은 운명을 맞은 이는 6%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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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반, U보트에서 죽을 위험은 당시 존재하는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컸습니다. 연합군 암호에서 U보트는 '캐러밴(caravan)'이라고 불렸습니다. U보트 승조원이 전선 복귀를 신청하기 위해 필요한 12차례 순항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희박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에 지원했는지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U보트 승조원들의 '죽이거나 죽거나'라는 태도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적에 대한 연민—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은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습니다.

수중의 기적 무기(분더바페)

U-48은 길이 66.5미터, 폭 6.2미터였고 수상 최고 속도는 거의 18노트에 달해 대부분의 희생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VII-B형 U보트는 빠른 잠항 속도와 뛰어난 기동성 덕분에 대서양 전투에 완벽히 적합한 함선이었습니다. 다만 그 내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좁았습니다. 38명의 승조원 전체가 화장실 하나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통조림과 기타 항해 물자로 천장까지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함내에는 별도의 개인 공간이 없었습니다. 늘 붐비고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박탈하는, 철도 객차를 닮은 긴 복도 하나뿐이었습니다. 화장실의 악취는 각종 향수로 서투르게나마 가려졌습니다.

연합군은 그들을  캐러밴 이라 불렀다… 나치 U보트 승선 생활은 얼마나 처참했나

U-48의 뱃속에는 승조원들이 '장어(eel)'라고 부른 어뢰 14발이 실려 있었습니다. 길이 7미터의 이 발사체들은 승조원들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로, 바닥판 아래 좁은 칸에 수납되고 격벽을 따라 쌓여 있었습니다. 어뢰 몸체에는 그림, 문구, 중요한 날짜 또는 그저 낙서들이 덧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뢰 한두 발이 발사되기 전까지는 사람이 서서 옷을 갈아입을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승조원들은 하루빨리 적 함선을 발견하고 공격하고 싶어 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U-48은 히틀러 잠수함 함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U보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소 55척의 배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후, 전쟁 말기 자기 승조원의 손에 의해 침몰되었습니다.

출처

이 글은 시몬 파킨(Simon Parkin)의 저서 『새와 늑대의 게임: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바꾼 비밀 게임』(레비스 출판사 간행)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