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크스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군사 진형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중문화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강철 같은 규율과 어마어마한 체력을 요구했던 이 진형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팔랑크스가 그리스의 군사 진형으로서 놀라운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조차 수수께끼에 싸여 있어, 여전히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진형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표적 유물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독수리의 비석'입니다. 기원전 2400년경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출토 유물로, 라가시와 움마 도시 국가 전사들 간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가시 전사들은 빽빽한 대열을 이루고 있으며, 방패 벽 사이로 창끝이 돋보이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플리테스의 필수 장비
팔랑크스는 기원전 8세기 그리스에서 하나의 군사 진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대열에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엘리트만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팔랑크스를 구성한 호플리테스는 스스로 무장을 갖춰야 했습니다. 전사에게 필요한 장비 중 하나는 지름 약 1미터의 원형 청동 방패였습니다.
또 다른 필수품은 끝에 철제 창끝이 달린 한 손용 창으로, 길이는 1.8~2.4미터였습니다. 창의 아랫부분에는 '도마뱀 킬러'라 불리는 쇠심지가 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도마뱀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상당한 적을 마무리하는 데 쓰였고, 창을 땅에 꽂아둘 때 나무 자루가 습기에 닿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호플리테스 장비의 또 다른 요소는 길이 30~60센티미터의 검이었습니다. 장비상 반드시 갖춰야 했지만, 검은 사실상 예비 무기에 가까웠고 그리스인들은 창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만 검을 사용했습니다.
호플리테스를 보호하기 위해 흉갑과 등판, 정강이받이, 투구도 착용했습니다. 추가로 다른 종류의 검이나 단검을 지닐 수도 있었지만, 이것들은 호플리테스의 필수품은 아니었습니다. 병사 한 명의 전체 무장은 약 20킬로그램에 달할 수 있었으며, 주인에게 매우 귀중한 재산이었습니다.
완벽한 방패 벽
팔랑크스 성공의 기반은 바늘 하나도 들어갈 수 없는, 끊어짐이 없는 방패 벽이었습니다. 방패 위로는 투구만 보이고, 아래로는 정강이받이만 보였습니다. 이 진형은 병사들에게 막대한 체력뿐 아니라 완벽한 동기화를 요구했습니다.

무게 약 8킬로그램의 방패는 왼팔을 뻗어 들어야 했습니다. 흑회식·적회식 도자기에 남겨진 묘사들을 보면 호플리테스들이 방패를 받칠 추가 지지대를 따로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랑크스를 그린 그림 속 전사들은 방패를 몸에서 떨어뜨린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8킬로그램짜리 방패를 앞으로 뻗은 채 조밀한 대열을 유지하려면 비범한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했습니다.
전술의 진화
고전 형태의 팔랑크스는 방패 벽에 기대어 정면을 향한 진형이었습니다. 기본 형태는 8~16열의 호플리테스로 구성되었으며, 필요할 때나 동료가 쓰러졌을 때 교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진형에는 넘기 어려운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투키디데스는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이를 지적했습니다.
"모든 군대에서 공격 시 우익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려는 경향이 나타나며, 그 결과 교전하는 양측 모두 우익이 적의 좌익을 능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각 병사가 방패로 가려지지 않은 몸의 오른쪽을 두려워하여 오른쪽 이웃의 방패 아래 최대한 가까이 붙으려 하기 때문이며, 대열의 조밀함이 가장 좋은 방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움직임은 우익 맨 끝에 선 첫 번째 병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노출된 몸의 오른쪽을 적에게서 멀리 하고 싶어 하며, 이 두려움만을 따라 나머지 모두가 그를 따르게 됩니다."

팔랑크스 진형의 첫 번째 혁신은 에파메이논다스가 대각선 진형을 도입하면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결과 최대 50열까지 증강된 좌익이 적의 우익을 더 빨리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술은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테바이 군대는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스파르타군을 격파했습니다.
이후의 개혁은 이피크라테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창의 길이를 2.5미터로 늘렸습니다. 이를 통해 적군 간의 거리를 벌렸고, 그동안 방패 충돌과 함께 벌어지던 첫 접전에서 검을 사용할 가능성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이 개혁은 무장 면에서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더 긴 창은 양손으로 싸워야 함을 의미했고, 따라서 방패를 더 가볍고 작은 것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검도 길어졌으며, 갑옷과 신발 역시 개량되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완성형
앞서 설명한 개혁의 정점은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였습니다. 무장의 지속적인 변화 덕분에 이 진형은 16열까지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창은 약 5~6.5미터로 늘어났고, 그만큼 운반이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창은 두 조각으로 보관되었다가 전투 전 특수한 금속 소켓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창에는 비교적 작은 철제 창끝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는 무기 윗부분의 무게를 덜어줄 뿐 아니라 적의 갑옷을 꿰뚫는 데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주 무기의 길이 연장은 후방 대열까지 전투에 참여시킬 수 있는 능력을 팔랑크스에 부여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첫 번째 열을 돌파한 적은 더 많은 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무기의 숲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병사들은 여전히 검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이들 역시 형태가 발전해 왔습니다. 방어 장비는 갑옷, 투구, 정강이받이, 그리고 지름 약 60센티미터의 얕은 방패로 구성되었습니다.
실전 속의 팔랑크스
이 놀라운 군사 진형은 군대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전술을 도입한 로마 군단과의 충돌만이 그 위력을 쇠퇴로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성기의 팔랑크스는 힘, 민첩성, 타이밍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과시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전장에서 팔랑크스는 어떻게 작동했을까요? 콘 이굴든의 소설 『아테네의 문』은 마라톤 전투에서 사용된 팔랑크스 전술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내 신호에 맞춰! 여섯 걸음 뒤로! 내 신호에 여섯 걸음. 창을 준비해!" 그가 병사들 머리 위로 외쳤습니다.
전투의 격렬함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와서 물러서고 싶은 병사는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살육의 광기에 사로잡혀, 방금 전까지 적 전선 돌파 일보 직전이라 믿었던 헐떡이는 불멸자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있었습니다.

"여섯 걸음... 지금!"
분노의 함성과 함께 테미스토클레스의 병사들이 물러났습니다. 두 번째 대열 교체는 한결 매끄러웠고,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물러나면서도 모두 허공을 헛되이 가르는 페르시아인들의 검을 노려보았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걸음을 세는 동안 호플리테스들이 교체되었습니다. 그들은 방패를 들어 올렸고, 일부는 땅에서 창을 집어 들었습니다.
참고 문헌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카지미에시 쿠마니에츠키 옮김, 바르샤바, 1988.
- 콜, 『군단 대 팔랑크스: 고대 세계의 서사시적 보병 대결』, 포즈난, 2020.
- 핸슨, 『호플리테스: 고전 그리스의 전투 경험』, 런던, 1993.
- 이굴든, 『아테네의 문』, 포즈난,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