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적인 질투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흉측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잔인하고, 시기하고, 집착적이었죠. 그런데도 당시 대중은 남자가 감히 그런 비겁한 짓—여성에게만 있다고 여겨졌던 짓—을 저지를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전간기 타블로이드를 뒤덮은 산 테러 사건들
2차 세계대전 이전 타블로이드는 배신당한 여성들이 염산으로 보복했다는 소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정부나 바람 피운 파트너의 눈에 곧장 산을 뿌리는 방식이었죠. 1932년 11월 한 달에만 인기 지역 타블로이드 '크라쿠프 최후의 뉴스'가 네 건의 사례를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남편과 정부의 밀회를 숨긴 아내? 정부가 부식성 물질을 꺼내 얼굴에 확 뿌립니다. 약혼자가 다른 여자를 택했나요? 혼례 청사진에서 막 내려오는 순간 눈에 산을 뿌립니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여자? 주머니 속에 숨긴 산병 한 개, 갑작스러운 습격, 목과 얼굴의 심한 화상—언제나 같은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치명적인 부식성 물질은 아무 약국에서나, 아니면 아무 잡화점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1938년 바르샤바의 한 약국입니다.
때로는 염산 대신 끓는 기름 냄비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실명으로 끝나기도 했죠. '일러스트레이티드 쿠리에르 코지엔니'는 돌연 피해자에게 덮쳐 혀를 잘라낸 여성의 이야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우치에서는 잔혹한 약혼자가 끓는 돼지기름에 익어 죽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지역 타블로이드들은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곧장 눈을 겨냥했다
산을 눈에 뿌리는 행위는 오직 여성만이 저지를 법한 비겁하고 원한 깊은 짓이라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헌 옷 장사를 하던 스룰 무헤르는 이런 평가에 결단코 반대할 사람입니다. 1930년 8월, 그는 어느 여성 라야 카츠에게 산을 뿌렸습니다. 이유는 그저 그녀가 "그의 구애에 무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룰은 공격 장소조차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짝사랑 상대가 노점을 하던, 사람 붐비는 시장에서 덮쳤죠. 결과는 일간지 '포트바벨스키에 구호'의 보도 그대로였습니다. "군중은 스룰을 물렁해질 때까지 두들겨 팼고, 그 전에 남은 산을 그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산을 무기로 쓸 만큼 비겁한 것은 여성들뿐"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의 교차기, 미국 언론의 사진.
1년 뒤에는 리비우 출신 안토니 미엘니체크가 비슷한 공격을 집에서 저질렀습니다. 그의 약혼녀는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차버렸는데, 요리사로 일하는 그녀는 후보들을 가려낼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겠죠. 가정부 계급의 거의 정점에 서 있는 몸이었으니까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미엘니체크는 약혼녀 안나 미하니우크를 찾아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에 염산을 쏟아붓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미하니우크는 왼쪽 눈을 잃었고 얼굴에 흉터가 남았습니다.
재판정에서 가해자는 그저 사고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산은 "자신이 마시려고 준비한" 것이며 약혼녀 앞에서 마실 참이었다는 거죠. 그러다 소녀가 더는 귀찮게 굴지 말라고, 차라리 완전히 내버려두라고 고함을 지르자 "성질이 나서 산을 뿌렸다"고 변명했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모든 구애'에 너무 무심했던 여자
미엘니체크의 경우 공격 동기가 깨진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유리한 혼사 기회를 놓친 데 대한 분노였는지 의문을 가질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얀 마옙스키 사건에는 그런 여지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마옙스키에게는 친구 안토니 코지에우카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매력적이면서도 맹목적으로 헌신적인 아내가 있었습니다. 1933년 코지에우카가 군사 훈련에 소집되자, 자칭 도니환이었던 마옙스키는 즉시 공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짚신 과부'는 모든 구애에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전간기 사진에 담긴 약국용 작은 병.
마옙스키가 물러설 기미 없이 점점 더 집요하게 구는 바람에 그녀는 결국 그를 문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며칠 뒤 그 애인은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그는 마리아가 문을 나서자 황산을 그녀에게 쏟아붓습니다. '익스프레스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보도에 따르면 여성은 손, 가슴, 목,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왼쪽 눈이 탔습니다.
낯선 여성들을 괴롭히던 타락자들
피해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공격자들도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피해자 쪽에서는 그런 '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였죠. 1931년 우치에서는 50세의 안나 셀라리가 신원 미상의 공격자가 뿌린 염산으로 머리에 전반적인 화상을 입었습니다. 또 카토비체와 크롤레프스카 후타에서는 1932년과 1933년의 해가 바뀌는 무렵 수개월 동안 '수수께끼의 남자'가 호화로운 모피 코트와 외투를 걸친, 우아하게 차려입은 숙녀들을 따라다니며 습격했습니다.
흉기는 이번에도 역시 염산이었습니다. 긴 수사 끝에 막심리안 니에스트루이라는 남자가 체포됐습니다. 특히 자극적인 타블로이드 '세븐 페니즈'를 비롯한 지역 언론들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를 민중 재판에 회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불쌍히 여길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가 억울하게 체포된 것으로 드러나 우연히 만난 여성들에 대한 공격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남자가 전형적인 스토커였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전 약혼녀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이별에 동의하기는커녕 "차라리 그녀의 눈을 긁어버리겠다"고 위협하던 인물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