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유대인, 1급·2급 혼혈인 — 인간을 분류한 나치의 계산법
제3제국의 관료들은 인간의 존재를 냉혹하게 분류했습니다. 완전한 유대인, 1급 혼혈인(Mischling 1. Grades), 2급 혼혈인(Mischling 2. Grades)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내려진 처벌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밀하게 계산된 기준 속에도 예외는 존재했을까요?
'유대인'이라는 개념을 세밀하게 정의하는 작업은 나치 관료들이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밟은 첫 번째 단계 중 하나였습니다. 순수 혈통의 유대인이라면 문제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혼혈 가정 출신자들, 심지어 아리아 혈통이 4분의 3에 달하고 유대인 혈통은 극히 일부만 섞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요? 인종적 순수성에 집착하던 제3제국 안에 이런 사람들에게 자리는 있었을까요?
'혼혈인'의 지위에 관한 최초의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35년 9월 15일 통과된 뉘른베르크 법률에서 등장했습니다. 부모 중 한 명만 유대인 혈통인 사람들은 당시 '완전한' 유대인과 동등하게 차별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1급 혼혈인'은 여전히 순수 아리안보다 열등하게 취급되었으며, 특별한 표식 대상에서 예외적으로 면제되는 경우에 한해 겨우 차별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혼혈인 문제의 '최종 해결'?
전쟁이 발발한 후 제3제국의 엘리트들은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에서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필요성에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명백했듯, '소개(疏散)'라는 말은 실제로 사형 선고를 의미했습니다. 비인간적인 강제노동 수용소행이거나 즉각적인 학살이었으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혼혈인' 출신들에 대한 태도 역시 급진화해 갔습니다.

이미 뉘른베르크 법률은 누가 '순수 혈통'의 아리안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극히 상세한 계산 방식을 도입한 바 있었습니다.
혼혈인의 지위를 면밀히 규제하려는 시도는 1942년 1월 20일 열린 반제 회의(Wannsee Conference) 참석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기존 법률을 인용했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담긴 해결책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역사학자 페터 롱거리히(Peter Longerich)는 저서 『반제 회의: 최종 해결로 가는 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반제 회의 직전(...) 나치당 인종정책국, 국가보안본부(RSHA), 당 관리국으로 구성된 연합은 '반(半) 유대인'을 유대인과 동일시하려고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특히 점령지에서 관련 규정을 시행해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제국 본토에서도 유사한 해결책이 채택되도록 강요하려 했다.
베를린 근교의 빌라에 모인 나치 관료들의 제안은 독일-유대인 혼혈 출신들의 지위를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적어도 제국 영토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1급 혼혈인', 즉 '반(半) 유대인'을 완전한 유대인과 동등하게 취급하자는 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독일인의 피를 지닌 사람'과 결혼해 자녀를 둔 경우, 그리고 당과 국가의 최고 기관이 지정한 개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조차 가혹한 제약을 받아야 했는데, 그 내용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작성한 회의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제 조치에서 제외된 1급 혼혈인은 누구든지 불임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는 새로운 혼혈 세대의 탄생을 막고 독일 민족을 궁극적으로 정화하기 위해서다. 불임 수술은 자발적으로 받는 것이지만, 독일 제국에 남아 있기 위한 조건이다. 불임 수술을 받은 '혼혈인'은 그동안 적용받던 모든 규제에서 해방된다.
단계별 등급과 혼인 문제
회의 결정에 따르면 '2급 혼혈인'은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를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이드리히는 원칙적으로 이들을 순수 혈통으로 간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두 명의 1급 혼혈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유대인으로 간주되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추방 명령 대상자의 분류는 '불리한 외모'나 '경찰 및 정치 당국의 부정적 평가'에 따라 좌우될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겉모습과 행동이 '유대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핏줄에 흐르는 '유대인 피'의 양과 무관하게 유대인으로 분류될 운명이었습니다.

제3제국의 관료들이 누구를 유대인으로 간주할지 논의한 이 회의는 베를린 근교, 호숫가에 자리한 아름다운 빌라에서 열렸습니다.
회의록은 유대인, 각 등급의 혼혈인, 독일인 사이의 혼인 문제도 규정했습니다. 배우자가 있는 유대인은 일반적으로 '소개'되거나, 특별한 경우 고령자용 게토로 보내져야 했습니다. 1급 혼혈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 앞서 언급했듯 '독일인으로 간주되는' 자녀를 둔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의 눈에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들은 1급 혼혈인과 연인 관계에 있는 2급 혼혈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족은 단순히 전원 유대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의 설계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히만의 회의록이 증언하듯, '유대인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훨씬 더 과격한 제안들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불임 수술은 대규모로 적용해야 할 해결책"이라고 SS 인종 및 이주 본부의 오토 호프만(Otto Hofmann)은 제안했습니다.
퓌러 자신보다 더 급진적이었던 남자
반제 의정서에 담긴 해결책은 '혼혈인' 문제를 규제하려는 가장 극단적인 시도였습니다. 회의를 주최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가 이러한 해결책의 채택을 강력히 밀어붙이며 선두에 섰습니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해결책의 창시자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습니다.
회의 의장이었던 그는 이 문제에 한해 히틀러 자신보다 더 급진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페터 롱거리히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1941년 8월, 제국 관리국 수장의 명확한 서면 진술에 따르면, 히틀러는 본질적으로 '혼혈인'을 유대인과 동일시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1942년 봄부터 시작된 연이은 추방 물결 동안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일괄 소개는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본부가 하달한 명령은 여전히 잠정적인 것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롱거리히는 추방될 '사람들의 범위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협상 대상이었다고 강조합니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 범위가 얼마나 넓어졌을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든, 반제 의정서는 문자 그대로 살인적인 나치의 야망이 먹을수록 커져갔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참고 자료
- 페터 롱거리히, 『반제 회의: '최종 해결'로 가는 길』(Wannsee Conference. Road to "Final Solution"), Prószyński i S-ka,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