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티하르 왕조와 불교
인도 라자스탄 지역에서 8세기부터 10세기까지는 구르자라 프라티하르(Pratihara) 왕조가 흥기한 시기였다. 프라티하르 왕조는 자신들을 주신(主神) 라마의 동생 락슈만(Lakshmana)의 후손이라고 여겼다. 굽타 왕조처럼 프라티하르 왕조 역시 비슈누 신의 화신인 바라하 아바타(Varaha Avatar, 멧돼지 머리를 한 구세주)와 락슈미가 모시는 세샤사이 비슈누(Sheshasayi Vishnu, 뱀 위에 누운 비슈누) 상을 안치한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티하르 왕조의 비문 곳곳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남아 있다.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프라티하르 비문 중 하나에는 불교 승려에게 바친 기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프라티하르 왕조가 권력을 잡기 전인 서기 641년, 중국의 승려이자 여행가였던 현장(玄奘)은 빈말(Bhinmal)을 방문하여 그곳에 승려 100명이 함께 생활하는 불교 사원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프라티하르 왕조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위상이 크게 낮아졌고, 가야(Gaya)를 중심으로 한 신도 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 자이나교의 전파 역시 제한적이었다.
마하마루 양식과 풍요로운 문화유산
굽타 왕조와 마찬가지로 프라티하르 왕조 역시 풍요로운 문화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잘로르(Jalore)의 프라티하르 왕국은 마르와르나 라자스탄에 국한되지 않고 쿠치(Kutch)에서 벵골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뻗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8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세워진 대부분의 사원은 '마하마루(Mahamaru)' 양식의 특징, 즉 민중 예술의 자발성과 감성적인 장식미가 어우러진 인간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광대한 지역 안에서 구르자라 프라티하르 왕조가 예술적인 사원과 계단우물(stepwell)을 짓지 않은 곳을 찾기란 어렵다. 이들 사원에는 불교·굽타·간다라 양식의 영향 외에도, 프라티하르 시대 삶의 활력과 근육질의 힘, 우아함, 민중 예술의 즉흥성, 화려한 장식, 요가적 정경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시안(Osian)의 고대 사원들
오시안의 오래된 사원들, 즉 사치야이 마타 사원(Sachiyay Mata Temple), 태양신 사원(수랴 만디르), 하리하르 사원, 피팔다 마타 사원(Pipalda Mata Temple), 마하비라 사원은 서기 750년부터 825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시안에서는 프라티하르 시대 건축 속에 불교 미술, 자이나교 미술, 굽타 미술이 조화롭게 융합되었으며, 이 문화의 흔적은 훗날 북인도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주라호(Khajuraho)에서 볼 수 있는 사원 예술의 절정은 바로 프라티하르 시대의 구르자라 마루, 즉 마하마루 양식이 토대가 되어 완성된 것이다. 람바(Lamba), 부츠칼라(Buchkala), 만도레(Mandore), 아바네리(Abhaneri)의 사원들도 같은 시기에 속한다. 라조르가르(Rajourgarh)와 파라나가르(Paranagar)로 불리는 유적지는 라자스탄에 남긴 프라티하르 왕조의 마지막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초티 카투(Choti Khatu)의 불교 조각상
초티 카투에는 'L'자 형태의 프라티하르 시대 계단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 계단을 내려서면 거대한 계단우물 왼쪽 벽감에, 삼발이 머리카락을 한 시바상 머리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직사각형 석판에 새겨진 비문이 있다. 이 비문은 구불구불한 문자로 된 9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기 9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에는 이 계단우물이 사막 한가운데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문 양옆에는 갓팔라바(Ghata-Pallava) 장식이 달린 아름다운 반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계단우물에는 3층 구조물이 있다. 두 개 층의 중앙부에는 좌우로 갓팔라바 장식이 배치되어 있고, 반연꽃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기둥 사이에는 정교한 장식이 더해진 니치가 있으며, 그 위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기둥 하단부에는 문지기상과 함께 물고기(마카라)를 탄 강의 여신 간가(Ganga), 거북을 탄 야무나(Yamuna) 여신이 새겨져 있다. 니치의 문설주 역시 잎사귀 장식으로 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간가와 야무나가 새겨져 있다. 니치의 상부는 시카라(sikhara) 형태의 사원과 흡사하다.
이곳 나트(Nath) 종파 수도원에는 고대 조각상들의 놀라운 보고가 소장되어 있다. 수도원 벽면에는 수많은 조각들이 박혀 있는데, 그 범위는 비슈누파부터 시바파, 좌도(Vamamarga), 불교, 자이나교에 이른다. 여기에는 불교 승려상, 일곱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탄 태양신 부반 바스카르(Bhuvan Bhaskar)상, 한손에는 술잔(수라 항아리)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금고를 든 재신 쿠베라(Kubera)상, 뱀 처녀, 물고기 처녀, 다양한 자세를 취한 남녀와 요정(압사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마을의 높은 대지 위에 자리한 옛 저택에서도 많은 고대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벽면에 세워진 형태로 박혀 있다. 이 조각상들은 서로 다른 사원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라자스탄에서 불교의 소멸
불교가 라자스탄에서 완전히 사라진 정확한 시점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무슬림의 정복이 불교에 치명타를 안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불교는 비폭력의 종교였으나, 격동의 민족 투쟁 시대에는 그런 종교가 자리할 여지가 없었다. 불교의 쇠퇴는 이미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무슬림 침략자들은 벵골 지역에 근소하게 남아 있던 불교의 잔존 세력마저 소멸시켰다. 조드푸르(Jodhpur)의 동양학 연구소에는 팔라(Pala) 양식으로 '아리야 마하비드야(Arya Mahavidya)'라는 불교 경전이 그려진 양피지가 소장되어 있으나, 이 책이 어느 세기의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6세기 기념물에 남은 불교의 영향
알와르(Alwar) 철도역 인근에는 파테중 곰바즈(Fatehjung Gumbad)가 남아 있다. 이것은 서기 1547년 칸자다 파테중 칸(Khanzada Fatehjung Khan)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 돔 형태의 캐노피에서 불교 스투파(stupa)의 영향이 엿보인다. 또한 자이푸르 근교 차크수(Chaksu)에서는 16세기 것으로 보이는 불교상의 머리 부분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힌두교 관련 조각상이 대량으로 출토된 반면, 불교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는 16세기 자이푸르 일대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사실상 없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현재 라자스탄의 불교 현황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라자스탄주의 총 인구 68,548,437명 가운데 힌두교도는 60,657,103명(88.49%), 무슬림은 6,215,377명(9.07%), 기독교도는 96,430명(0.14%), 시크교도는 872,930명(1.27%), 자이나교도는 650,493명(0.91%), 불교도는 12,185명(0.02%), 기타 종교 신자는 4,676명(0.01%)이다. 종교를 밝히지 않은 사람은 67,713명(0.10%)에 달한다. 이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불교는 라자스탄에서 사실상 소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