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푸틴이 믿는 '러시아 세계':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역사관

지난 한 주는 푸틴이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고히 믿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푸틴의 역사관은 무엇이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아닌가? 그리고 왜 그의 눈에는 이것이 전쟁을 정당화할 만큼 깊은 신념으로 자리 잡았는가?

2021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 웹사이트에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글에서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최근 몇 년간 '동일한 역사적·정신적 공간'의 두 부분 사이에 벽이 세워진 것이 그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로 존재하는 것은 소련 건국 과정에서 저질러진 역사적 실수라고 분명히 밝혔다. 푸틴에 따르면 서방은 악랄한 분열 통치 정책으로 이를 이용해 왔으며, '민족주의 및 나치 감정'을 부추기고 러시아어와 종교를 탄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앤 애플바움은 7월 31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푸틴의 이 글을 본 사람 있는가? 지금 이 글은 모든 러시아 군인에게 필독서다. 그리고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예고문이다." 애플바움의 트윗에 달린 반응들은 체념에 가까웠다. 물론 역사적 허튼소리지만, 새삼스러운 뉴스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불길하더라도 푸틴의 글은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리 예고된 침공의 비극이다.

지난 한 주는 푸틴이 자신의 역사관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나라는 것,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을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푸틴의 역사관은 무엇이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아닌가? 왜 그의 눈에는 이것이 전쟁을 정당화할 만큼 깊은 신념이 되었는가?

키예프 루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오래되고 얽켜 있는 역사를 공유한다. 그 기원은 키예프 주변 지역에 있다. 중세 초기, 스칸디나비아 출신 바이킹들이 북쪽에서 거대한 강들을 따라 내려와 이 지역을 식민화하고 느슨하게 통합했다. 이들이 '루스(Rus)'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푸틴이 글에서 말하는 '역사적·정신적 공간'의 진정한 공동 역사는 988년부터 시작된다. 키예프 제국의 통치자 블라디미르 1세(볼로디미르, 스칸디나비아어 발데마르에서 유래)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해다. 그는 크림반도의 케르소네소스에서 세례를 받았다. 블라디미르는 키예프 제국을 번영하는 기독교 문화권으로 만들었다.

전성기의 키예프 제국은 흑해에서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다. 1240년, 나라와 키예프 도시는 징기스칸의 몽골 기마병들인 황금 호드(Golden Horde)에게 유린당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키예프 함락 후 기독교 교회의 중심지가 북쪽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1299년에는 부유한 도시 블라디미르로, 이후 1325년에는 같은 이름의 공국 수도인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당시 모스크바는 아직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몽골 지배층과 손잡는 영리한 전략으로 열세를 만회했고, 이반 3세 대공은 모스크바의 영토를 빠르게 확장하며 1471년 황금 호드와 결별했다.

제국의 정당성

1500년경 모스크바는 이미 넓은 영토를 가진 강력한 독립 공국이 되어 있었다. 로마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 노선을 걷게 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도 갖추고 있었다. 강한 국가, 넓은 영토, 보편적 신앙. 이는 러시아 통치자들에게 옛 로마 제국을 연상시켰다. 로마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게 함락된 콘스탄티노플에 이어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형성되었다. 로마 제국의 계승이라는 개념은 이전에 샤를마뉴와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이제 모스크바가 자신들의 제국 정당성으로 가져갔다. 1547년 이반 4세가 차르로 즉위했다. 차르라는 단어는 카이사르(Caesar)에서 직접 유래하며 황제를 의미한다.

결정적으로, 러시아 정교회는 키예프에서 시작되었다. 블라디미르 1세가 세례를 받고 러시아 민족이 탄생한 나라. 그 요람은 모스크바에서 강대하게 이어져 살아간다. 황금 호드에게 정복당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정복당하지 않을 나라. 이것이 바로 '러시아 세계(Russky Mir)'의 역사적 핵심 사상이다(Mir는 '세계'와 '평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푸틴이 말하는 오직 모스크바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사적·정신적 공간'이 바로 이것이다. Russky Mir는 푸틴이 설립한 문화·정치 재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18세기, 예카테리나 대제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의 핵심 지역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푸틴은 자신의 글에서 이를 '해방 전쟁'이라 부르며, 키예프 인구가 '러시아 정교 민족의 주류와 재통합'되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 전성기의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뿐 아니라 발트 국가들, 폴란드의 상당 부분, 코카서스까지 포괄했다. 러시아어가 지배적인 언어였고 러시아 정교회가 신앙이었다. 다른 언어와 신앙은 이등으로 취급받았다.

민족 문화의 축제

푸틴이 소련 건국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저질렀다고 믿는 '실수'를 이해하려면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혁명 후 새 공산주의 정부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가능한 한 빨리 탈출하고자 했다. 정부 수뇌부는 발트 국가들과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상당 부분을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잃는 굴욕적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수용했다. 1917~1921년 기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국가 건설을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편입되었다.

가장 중요한 러시아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는 러시아 제국에서 일어나는 신흥 민족 운동을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유용한 도구로 여겼다. 그러나 레닌은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같은 다민족 국가가 카드집처럼 무너지는 것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후 세계의 기본 원칙, 즉 모든 민족의 자결권에 순응하기로 결심했다. 젊은 소련은 적극적인 탈러시아화 정책에 착수했다. 모든 민족 집단에 자신들의 공화국이 주어졌고, 원주민 인구가 통치에 적극 참여했다. 예컨대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어와 문화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민족 관습에는 공산주의 소스가 듬뿍 발라졌다. 이른바 코레니자치야(Korenizatsiya, '뿌리내리기')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은 한편으로는 민족주의 경향에 부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국들이 진정한 자치를 얻지 못하도록 막고자 했다.

우크라이나 같은 문화를 러시아 세계에 편입하는 대신 축하한 것이다. 소련 공화국들이 진정한 독립국가는 아니었음에도, 러시아 제국과의 대조는 더할 나위 없이 극명했다. 푸틴에 따르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구분은 따라서 이 소련 정책의 결과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이며 같은 러시아 세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역사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뿌리 깊은 우크라이나 언어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유럽 국가로 살아가겠다는 우크라이나 자체의 선택을 완전히 무시한다.

감옥과도 같은 세계

푸틴의 러시아 세계는 상당히 강압적이고 경직된 개념이다. 그의 관점에서 이 세계는 언어, 종교, 역사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감옥과도 같다. 모스크바는 초대 차르 시절부터 스스로를 러시아 세계의 수호자로 여겨왔다. 푸틴에 따르면 어떤 나라가 이 세계에 속한다면, 그 나라가 떠나기를 선택하는 것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교회와 국가의 통일, 문화·정치적 세력권, 권력 정치에 관한 역사적 논거로, 우리의 민주주의 핵심 가치 관점에서는 상당히 구식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지아와 발트 국가들 같은 구소련 국가들도 포함된다. 우크라이나는 특별한 경우라고 푸틴은 침공 이후 다른 구소련 국가들을 안심시켰다. 그 나라는 2014년 혁명 이후 파시스트·나치 정부의 손에 들어갔으며, 이 정부는 외세가 이끌고 국내 러시아계 주민들을 정기적으로 폭격한다는 것이다. 그가 언급하는 전쟁은 바로 그가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다.

한때 이 범주에 속했던 많은 나라들이 지금은 EU와 NATO 회원국이 되었다. 푸틴은 오랫동안 이에 불만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서방에 의해 일축되어 왔다. 전후 유럽에는 다른 원칙이 적용된다. 나라들이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푸틴은 당분간 러시아 세계의 요람을 잃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