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오스카 헬더블롬 교수, 손으로 적은 옛 가계부로 풀어내는 네덜란드 가구의 재정사

네덜란드의 '머니 위크(Money Week)'를 맞아 금융 역사학자 오스카 헬더블롬(Oscar Gelderblom)에게 질문을 던지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 위트레흐트 대학교 금융사 교수인 그는 네덜란드 일반 가구의 재정 생활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를 다룬 프로그램이 3월 말 방영될 예정이다.

황금기에는 시청이 은행이었다

보험에 가입하거나 돈을 빌려야 할 때, 네덜란드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에는 시청(市廳)에서 이러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도시들이 이런 금융 서비스를 폐지하면서, 평범한 네덜란드인의 재정 관리 방식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가계부가 남긴 정확한 기록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금융 산업 자체의 역사에 주목해 왔다. 금융 서비스 제공자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고객들의 이야기는 미궁에 싸여 있다. 헬더블롬 교수는 "금융 부문은 오랫동안 엘리트층에 초점을 맞춰 왔다. 평범한 사람들과 자영업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 저축했는가? 돈을 빌렸는가?"라고 말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손으로 작성한 옛 가계부(cash book)다. 컴퓨터나 은행 거래 내역서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수입과 지출을 직접 기록해야 했다. 가계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쓸 돈만 적어 둔 소규모 가계부와, 가족이나 회사의 모든 수입·지출을 빠짐없이 기록한 장부가 그것이다.

헬더블롬 교수는 연구를 위해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집에 보관된 옛 가계부를 공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받은 가계부만으로는 네덜란드 인구 전체를 대표하는 표본이라 보기 어렵다. "수입과 지출을 특히 성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은 예상 가능한 이들, 즉 학교 교사, 상점 주인 등 꼼꼼한 성향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신용으로 맺어진 동네의 유대

195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이 워낙 낮아 집세와 식비를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샀다. 상점 주인이 구매 내역을 기록해 두고, 주급이 들어올 때마다 빚을 갚아 나가는 방식이었다.

"외상으로 산다는 것이 지금 들으면 무분별해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상점 주인은 사람들의 사회적 네트워크의 일부였고, 지금보다 익명성이 훨씬 적었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은행은 엘리트층에게만 돈을 빌려줬고, 일반 사람들은 친한 사람들과 재정 문제를 대부분 해결했다. 친구나 가족, 혹은 동네 상점 주인 말이다. 우리는 고용주도 여기에 역할을 했는지, 예컨대 급여 선지급이나 이자가 붙는 회사 저축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저축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농민을 위한 '부렌레인방크(Boerenleenbank)' 같은 대안이 등장했다. 그러나 소상공인을 위한 은행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들 사업가는 은행에 맡기기보다 서로 간에 직접 금전 거래를 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한편 정부와 저축은행은 19세기부터 평범한 네덜란드인에게 저축을 장려하는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저축은 당연한 습관이 아니었다. 돈이 좀 남으면 가족이나 이웃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아이 돌봄 같은 현물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이 체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가계부에서 발견한 사례는 단 하나, 가족들에게 무료로 파마를 해 준 이발사뿐이다."

우표를 모으는 저축은 전형적으로 네덜란드적인 풍습이다. 지금도 슈퍼마켓에서 우표를 모아 수건 세트나 칼 세트로 교환하곤 한다. 그러나 살림이 넉넉지 못하던 시절, 우표는 널리 쓰이던 저축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여유 자금을 소액씩 우표 형태로 저축해 휴가 같은 미래의 큰 지출에 대비했다. 노후 대책이 아직 국가 제도로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 우표로 노후 자금을 모으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전쟁 이후, 은행이 삶에 스며들다

큰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왔다. 헬더블롬 교수는 "지금은 누구나 은행에서 금융 거래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표준이 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남는 돈이 기본적으로 생겼고, 은행들은 소상공인과 가구의 재정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은행이 급여 지급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는 봉투에 담긴 현금 지급을 대체한 것이다. 은행은 이를 통해 가구와 그들의 지출 행동에 대한 훨씬 많은 데이터를 확보했고, 저축 계좌, 대출, 주택담보대출 같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우리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해졌다." 1970년대에는 새 법률 덕분에 신용 대출이 쉬워졌고, 은행들은 차입을 '새로운 저축'으로 홍보할 기회를 잡았다.

가계의 재정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었다

가계부는 연구자들을 가구와 그들의 재정적 결정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역할 분담의 흥미로운 단서도 포착된다. "제출된 많은 가계부를 보면 재정 주도권을 쥔 쪽은 여성이었다. 문제는 그 이유다. 남편보다 숫자에 강해서였을까? 아니면 법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았기 때문일까? (여성이 법 앞에서 상행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1956년이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이 서서히 해방되었듯, 재정 영역에서도 그랬을까?"

'남편은 가장이자 지출의 결정자'라는 통념은 지나치게 흑백논리적이다. 실제로 소규모 회사나 가게에서는 여성이 재정 운영에 충분히 참여했다. 헬더블롬 교수는 여성이 재정에 비례하여 기여했는지도 밝혀내고 싶어 한다.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다락방에 가족의 옛 가계부가 묻혀 있다면, 그의 연구에 힘을 보태 달라는 호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