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메리 토프트: 토끼를 낳은 여인의 소름 돋는 실화

조지 1세(1660~1727) 시대의 잉글랜드는 기이한 사건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국왕 본인 역시 영어를 몰랐고 독일 문제를 영국 일보다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었으며, 아내를 무려 32년간 유폐시킨 것으로도 비판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모든 화제를 압도한 사건은 바로 농부의 아내 메리 토프트(Mary Toft)가 임신 중 토끼를 낳기 시작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처녀 성은 데니어(Denyer)였던 메리 토프트는 서리주 고달밍(Godalming)의 가난한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그녀는 17살에 한 살 위의 조슈아 토프트(Joshua Toft)와 결혼해 곧바로 두 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지붕 하나를 유지하기 위해 메리는 들판에서 혹독하게 일해야 했습니다. 18세기 농민에게는 임신했다고 해서 노동이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출산 직전까지 일을 계속했고, 그 대가로 유산을 겪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메리 토프트: 토끼를 낳은 여인의 소름 돋는 실화

18세기 잉글랜드에서 메리 토프트의 이야기는 정말로 경이로운 사건이었습니다.

1726년 8월,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메리는 들판에서 일하다가 친구와 함께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은 생각 없이 그 토끼를 잡아 저녁 식탁에 올리기로 했지만, 안타깝게도 동물 쪽이 더 빨랐습니다. 며칠 후 토끼는 다시 들판에 나타나 또다시 도망쳤습니다. 이 상황은 메리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줬고, 이윽고 토끼는 그녀의 꿈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이 메리 토프트라는 이름을 잉글랜드 역사책에 남기게 될 일련의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이어졌습니다.

토끼의 '수태 고지'

18세기에는 "임산부의 강렬한 감정이 태아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세기 뒤에도 같은 이론으로 '코끼리 인간'이라 불린 조지프 메릭(Joseph Merrick)의 사례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 코끼리에게 크게 놀랐고, 그 충격 때문에 태아의 몸이 변형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토프트 가족의 이야기는 훨씬 더 섬뜩했습니다.

메리 토프트: 토끼를 낳은 여인의 소름 돋는 실화

메리 토프트는 정말로 토끼를 낳은 걸까요?

토끼 꿈을 꾸기 시작한 직후 메리에게 합병증이 생겼고, 젊은 부부는 한동안 그녀가 유산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1726년 9월 27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메리가 갑자기 진통을 시작해 분만에 들어갔는데, 그녀가 낳은 것은 인간의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가 그녀의 몸 밖으로 나오고 있었지만, 기대했던 형상과는 달랐습니다. 살갗은 벗겨져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토끼였습니다.

토끼를 낳은 산모

이 기이한 분만에는 지역 의사 존 하워드(John Howard)가 입회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이 모든 상황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일회성 기이한 현상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환자가 규칙적으로 토끼 태아를 추가로 낳기 시작하자 그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여자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지 확인하고자 하워드는 메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관찰했고, 거기서도 분만은 계속됐습니다. 결국 메리는 죽은 토끼 아홉 마리를 낳았고, 매번 분만에는 진통을 덜어주려 애쓰는 하워드 의사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메리의 배에 손을 얹었을 때 "태아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밖으로 나오려는 것처럼"이라고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메리에 대한 관찰이 워낙 오래 이어지자, 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를 보상하고자 존은 금전적 보상을 지급했습니다.

메리 토프트: 토끼를 낳은 여인의 소름 돋는 실화

국왕 조지 1세 본인과 궁정 의사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워드는 이 특별한 사건을 널리 알리고 싶어 잉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들과 학자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래서 조지 1세의 궁정에서 활동하던 스위스 출신 해부학 외과의 내서니얼 생트앙드레(Nathaniel St. André)와 웨일스 공의 비서 새뮤얼 몰리뉴(Samuel Molyneux)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워드가 진료하던 길퍼드(Guildford)로 가서 기이한 환자를 관찰했습니다.

1726년 11월 중순, 두 사람은 마침 메리의 열다섯 번째 '분만'을 목격할 때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이어진 분만들은 그들이 뭔가 특별한 현상의 목격자임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곧이어 다른 의사들도 관찰자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해부학자이자 산과의사이며 왕립내과의사대학 회원인 제임스 더글러스(James Douglas), 그리고 조지 1세의 직접 명령을 받고 파견된 키리아쿠스 알러스(Cyriacus Ahlers)가 그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알러스가 토끼 위장극 전체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거짓이 드러나다

키리아쿠스 알러스는 메리의 열여섯 번째 분만을 지켜봤고, 그 순간 이 모든 사건이 단순한 장난에 불과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분만 전 메리는 무릎을 꽉 움켜쥔 채 침대에 누웠다. 마치 태아가 빠져나올까 두려운 것처럼"이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그는 죽은 태아를 부검하여 소화관에서 "곡물과 건초 알갱이"를 발견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알러스는 런던으로 돌아가 국왕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온 영국 신문에 실릴 만큼 떠들썩한 이 소동을 끝내고자 한 군주는 여자와 보존된 태아들을 수도로 호송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극은 막을 내렸습니다. 런던에서의 검사 결과, 메리의 몸에서 토끼가 나왔을 리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부는 태아의 모습조차 아니었고, 생후 석 달 정도 된 토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메리가 수도에 도착하자 분만이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그녀가 묵던 하숙집의 짐꾼이 토끼를 방으로 반입하다 붙잡혔습니다.

소년은 훗날 메리의 시누이 마거릿 토프트(Margaret Toft)가 자신에게 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토끼를 얻어 오빠의 아내 방으로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씁쓸한 진실

토끼 분만은 가짜였지만, 고통은 진짜였습니다. 메리의 증언에 따르면 그 속임수는 공범이 죽은 동물의 조각들을 그녀의 몸 안에 넣는 방식이었으며, 이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토끼들은 날카로운 발톱이 그대로인 채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동물의 사체 조각들은 오랫동안 그녀의 몸속에 숨겨져 있어야 했습니다. 세균 감염으로 죽지 않은 것 자체가 진짜 기적이었습니다.

메리 토프트: 토끼를 낳은 여인의 소름 돋는 실화

메리 토프트는 사후 '토끼 사기꾼'이라는 별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들은 토끼 사기극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메리는 증언에서 여러 차례 남편과 시어머니를 지목했지만, 많은 이들은 그녀를 광적인 돈욕의 꾀꼬리로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녀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견뎌야 했던 젊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절망은 그 결과가 어떻든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동력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메리 토프트는 처벌받았습니다. 1726년 12월 9일, 그녀는 브라이드웰 교도소(Bridewell Prison)에 수감되었습니다. 공개된 감방 앞에는 구경꾼들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결국 그녀는 석방되어 고향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쁜 평판은 그녀가 죽는 날까지 따라다녔습니다. 그녀는 1763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구 기록에는 그날을 "토끼 사기꾼 메리 토프트가 죽은 날"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