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이크로 CT 스캔과 3D 프린트로 밝혀낸 고대 설형문자의 숨겨진 메시지

연구진이 마이크로 CT 스캐너를 활용해 수천 년 전의 설형문자를 처음으로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TU Delft)의 기술진과 라이덴 대학교의 아시리아학자가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르 제3왕조의 방대한 행정 기록

우리 선조들이 마지막 거석무덤을 세웠던 기원전 3천년기 무렵, 지금의 이라크 남동부에 있던 도시 우르(Ur)에는 이미 정교한 행정 시스템과 관료 조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우르는 모든 주(州)에서 거두는 세금을 등록하기 위한 행정 업무를 운영했고, 그 흔적은 약 10만 장에 달하는 점토판으로 전해집니다. 수메르 사람들은 그 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설형문자를 적었으며, 그들의 모국어인 수메르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입니다. 이것은 점토라는 기록 재료가 지닌 뛰어난 보존성 덕분입니다.

점토판들은 수십 년 전 이라크에서 발굴되어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수메르 제3왕조의 이름을 딴 우르 제3왕조(기원전 2110~2004년) 행정 기록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라크 지하에는 아직 훨씬 더 많은 점토판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가 확보한 점토판은 기원전 2000년경의 것으로, 과거를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독특한 창을 제공합니다. 그중 일부는 네덜란드 라이덴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밀 까끔처럼 여겨졌던 행정 문서들

"라이덴에는 약 3천 장의 점토판 컬렉션이 있습니다." 라이덴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리언츠 데 부르(Rients de Boer)가 말합니다. "캠퍼스 안 금고에 보관되어 있지요." 데 부르는 아시리아학자로, 최근까지 라이덴 대학교에서 근무하며 대학 산하 네덜란드 근동 연구소가 관리하는 점토판의 큐레이터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컬렉션은 1930년대 한 교수가 수집한 것으로,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점토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곧 이 컬렉션은 국립 고대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자료들은 이미 선별되어 출간됐습니다. 특히 문학 텍스트들이요. 남은 것은 영수증이나 납품 기록 같은 행정 문서 더미, 즉 '밀 까끔'입니다. 행정 기록은 어차피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큰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지요."

그럼에도 데 부르는 큐레이터로 재직하던 시절 이 행정 점토판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아시리아학을 공부하기 전 경제학 학위를 받은 배경도 한몫했을지 모릅니다. 사실 점토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자는 아이디어는 당시 국립 고대박물관의 시리아 유산 전시를 함께 준비하던 델프트 동료 도미니크 응안-틸라르(Dominique Ngan-Tillard)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봉투(외피)에 들어 있는 점토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마이크로 CT를 활용할 기회를 보았습니다."

다른 점토판과 달리 이것들은 점토 외피에 감싸져 있어 내용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데 부르는 이것이 주로 부정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합니다. 매매 계약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외피 안에는 점토판 본문과 거의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원본은 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어떤 수메르 사람이 100제곱미터 필지에 집을 샀는데, 실제 주거 면적이 90제곱미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봉인된 외피를 깨서 진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피 덕분에 판매자가 텍스트를 몰래 바꾸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원래 점토는 변조가 쉬운 재료였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점토판은 가마에 굽지 않고 햇볕에 말리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외피 너머를 들여다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점토판은 여전히 외피에 싸여 있습니다. 아시리아학자들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 마지 않습니다. 직접 열면 훼손될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델프트공과대학교 지오엔지니어링 학과의 응안-틸라르는 "CT 스캐너를 사용하면 외피를 열거나 손상시키지 않고도 그 안의 내용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냉장고만 하고 옆으로 눕혀진 흰색 장치를 가리켰습니다.

점토판이 장치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저 종이 커피컵에 담깁니다. 첨단 CT 스캐너와 저렴한 종이컵의 조합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응안-틸라르는 충분히 잘 작동한다고 강조합니다. "값비싼 고정대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값싼 커피컵으로도 충분히 잘 되니까요."

응안-틸라르가 스캐너 측면의 해치를 밀어 열면, 그 안에 컵과 점토판이 올라가는 받침대가 보입니다. 옆에는 노란색 튜브가 있는데, 이것이 컵을 향해 X선을 쏘는 방사선원입니다. 반대편에는 X선을 받아들이는 검은 판, 즉 검출기가 자리합니다. 장치는 방사선원과 검출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함으로써 외피를 '투시'하는 것입니다. 이 연구에 함께 참여한 델프트 원자로 연구소의 과학자 램버트 판 에이크(Lambert van Eijck)는 "병원에서 의사가 우리 몸속을 들여다보는 CT 스캐너와 똑같은 원리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자들은 수천 년간 외피 속에 비밀로 남아 있던 메시지를 하나씩 풀어내고 있습니다. 응안-틸라르는 컴퓨터 화면에서 외피를 디지털 방식으로 벗겨내며 점토판의 메시지를 읽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개의 경우 내용은 그리 흥미롭지 않은 계약서들입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옵니다. 응안-틸라르가 아직 열지 않은 편지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 안에는 아시리아 상인이 어머니가 하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분노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당대의 문해력 수준

분노한 아들이 편지를 썼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데 부르는 당시 글을 쓰던 사람들이 매우 다양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그 시대의 문해력은 생각보다 상당히 높았습니다. 지금과 다른 점은 문해력에도 단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전문 필사가들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장인으로, 이 기술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도 했지요. 신전이나 왕궁은 기록 업무를 위해 서기(scribe)를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 읽고 쓸 줄 아는 상인과 일반인들도 많았습니다. 예컨대 곡물 창고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면 제한된 문자 세트만 익히면 됩니다. 반면 왕을 위해 어려운 찬가를 써야 하는 궁정 서기는 훨씬 폭넓은 지식이 필요했겠지요."

CT 스캔이 끝나면 연구진은 점토판의 3D 프린트를 제작합니다. 응안-틸라르의 책상 위에는 그런 3D 프린트가 약 20개 놓여 있습니다. 의외로 작아서 손바닥에 얹힐 만큼 작습니다. 대개 직사각형 모양에 쿠션처럼 살짝 볼록한 형태입니다. 그녀가 하나를 보여줍니다. 앞면과 뒷면뿐 아니라 좁은 측면까지 문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3D 프린트 덕분에 과학자들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도 점토판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습니다.

점토 속에 숨어 있던 수천 년 된 식물 유체

흥미로운 것은 외피 아래의 문자만이 아닙니다. 점토판 그 자체가 더 많은 정보를 품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점토의 성분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응안-틸라르는 "CT 스캔을 통해 점토 속에 식물 유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시리아인들이 점토를 더 단단하게 만들려고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흐로닝언 대학교의 식물학자가 이 식물 유체를 연구 중입니다. 이는 수천 년 전에 어떤 작물이 재배되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정보입니다."

재료 자체는 더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응안-틸라르는 "점토에 균열이 생기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점토가 장기간에 걸쳐 어떻게 거동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재료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제방에 점토를 사용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설형문자 해독 프로젝트로 시작된 연구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판 에이크는 "앞으로 점토의 화학 조성을 연구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합니다. "CT 스캐너뿐 아니라 델프트 원자로 연구소의 다른 스캐닝 장치도 활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점토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어떤 종류가 사용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발견도 있을지 모릅니다."

응안-틸라르가 화면에서 스캔된 점토판의 3D 이미지를 확대합니다. "아랫부분이 살짝 들어간 게 보이시죠? 아마 손가락 자국인 것 같습니다. 이제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마치 이 점토판을 만든 사람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