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그 본질은 종교였다

우리가 아는 자유롭고 활동적인 시민성의 뿌리는 최초의 민주주의인 아테네에 있다고 흔히 생각됩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활동적인 시민성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종교 의식의 특징을 훨씬 더 짙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탄생

기원전 508년, 저명한 아테네 가문 알크메오니다이(Alkmeonids) 출신의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는 폴리스(도시 국가) 아테네에서 역사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개혁으로 아테네는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자유민은 가문 배경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폴리스의 정치 생활에 평등한 지위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도시 주변의 토지를 10개의 필라이(phylai), 즉 부족 단위 지역으로 나누었고, 이를 다시 트리티스(trittyes)와 작은 데메(demes, 촌락 공동체)로 세분화했습니다.

시민권은 '법적 지위'가 아니었다

아테네 혈통이 인정되면 자유민 남성은 데모테스(demotes)로 등록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트리티스와 필라이의 일원이 되었고, 마침내 아테네에서 집단적으로 권력을 쥐던 데모스(demos), 즉 국민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흔히 클레이스테네스 개혁 이후 모든 자유 시민이 이러한 방식으로 일종의 법적 지위로서 아테네 시민권을 자동으로 갖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정치적 권리와 의무, 즉 우리 현대의 시민권 개념에 대해서는 클레이스테네스 시대 이후의 기록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정치·법적 시민권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네덜란드 그로닝언 대학교 출신 역사학자 사라 바이마(Sara Wijma)입니다. 그녀는 네덜란드 『역사 저널(Journal of History)』에 게재한 글에서, 클레이스테네스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테네 남성이 갑자기 시민권을 '소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폴리스의 종교 생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활동적인 시민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데메 달력이 보여주는 종교 생활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아테네 사회의 구획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그와 함께 사회적 역할 분담도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분류 체계는 무엇보다 종교 생활에 뚜렷하게 반영되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갑자기 특정 데메나 필라이에 소속되어 종교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테네에는 그러한 축제가 매우 많았는데, 일부 기록에 따르면 한 해의 3분의 1이 공식적인 종교 휴일이었다고 합니다.

클레이스테네스 이후 종교 생활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된 사실은 이른바 '데메 달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데메 성원들이 어떤 신들을 숭배해야 하는지, 언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제물의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역 숭배 의식들은 대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부터는 달력에 데메 성원들이 폴리스 차원의 의식에 어떻게, 언제 참여해야 하는지까지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필라이가 만든 새로운 공동체 의식

클레이스테네스 이후 필라이의 회원 자격은 곧 종교적·의례적 의무를 수반했습니다. 델포이 신탁소는 각 필라이마다 열 명의 신화 속 영웅을 선정했고, 이 영웅들의 이름이 새로운 필라이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영웅, 신,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일은 더 이상 지역적으로나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고, 필라이 전체의 규모로 치러졌습니다.

체육 경기 참여 역시 기원전 508년 이후 점차 필라이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축제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아테네인들은 갑자기 자신의 필라이를 대표해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행진하고, 함께 훈련하며, 승리하면 상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원전 508년 이전에는 서로 거의 아무 연고도 없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변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