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는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뤼터 총리는 정책을 수립할 때 주로 의학 전문가들의 조언에만 의존하고 있다. 의료사학자 리나 크노에프(Rina Knoeff)는 역사학자들의 목소리 또한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들은 코로나 위기가 역사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공론장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노에프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녀는 웨비나 시리즈 ‘COVID-19: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기획했다. 그녀가 소장으로 있는 흐로닝언 보건인문학 센터(Groningen Center for Health and Humanities)는 인문학자들에게 이번 위기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금은 가만히 앉아서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의사결정을 맡겨둘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의무가 있습니다.”
요즘 그녀의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대체 왜 감염병 관리팀(Outbreak Management Team)이 그토록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가? 크노에프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는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현재의 의약품으로는 이 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의료진은 바이러스가 남긴 결과와 싸우느라 바쁘지만,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회적 조치로 버텨야 합니다.”
의학의 실패담
만약 크노에프가 결정권자라면 감염병 관리팀에 곧바로 역사학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추가했을 것이다. “현재 팀은 통계 모델을 다루는 의사와 역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계 모델은 비교적 쉽게 통제할 수 있지만, 사회적 현실은 훨씬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언제나 실패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학자가 일종의 경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는 의사가 미처 예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경고할 수 있을까? 크노에프에 따르면 역사는 가장 빛나는 해법조차 사회적 저항 앞에서 실전에서 자주 실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면 성공담 위주로 보기 쉽다. 우리는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게 한 의학의 발견들만 주로 살펴보곤 한다.
그러나 의학의 역사는 실패의 연속이다. 바로 그것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크노에프의 주장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8세기 말, 영국의 의사 존 헤이가스(John Haygarth)는 치명적인 천연두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에 맞서는 방안을 고안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실내에 머물며, 무엇보다 특히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일종의 집단 면역이 서서히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지식으로 보면 헤이가스의 정책이 즉각 효과를 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대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시민들은 규칙을 계속 지킬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식탁에 빵이 올라가야 했으니까요. 부유층은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에 순응할 수 있었지만, 자기 집단의 면역을 달성하고 나서는 제한 조치를 손쉽게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라
크노에프가 역사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사회경제적 격차의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정작 지금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그 약자들입니다. 돈도, 주거 공간도 부족하면 방역 당국의 제한 지침을 따르는 것 자체가 훨씬 어렵습니다. 따라서 노숙인, 난민 신청자, 요양원 거주자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런 조치가 지금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역사학자들이 감염병 관리팀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물론 나중에 와서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는지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방대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지만, 역사는 오늘의 문제에 대한 즉답을 주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의 기여는 주로 마련된 해법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있습니다. 어떤 조치가 과학자에게는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생계가 위태로워지는 시민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예컨대 19세기 콜레라 유행은 가난한 계층이 의사들이 강요한 조치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큰 폭동으로 번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크노에프는 지금이야말로 감염병 관리팀에 추가 전문성을 더할 때라고 강조한다.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의 과학자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를 오직 실험실에서만 진단하고 검사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본다면 해법은 전적으로 의학 전문가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백신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죠. 하지만 코로나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전혀 다른 해법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 속의 권력
그럼에도 뤼터 총리는 정책을 주로 의학 전문가들의 조언에 근거하고 있다. 왜 심리학자, 경제학자, 인문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걸까? 크노에프는 이 질문에 역사적으로 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답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실험실은 점차 질병과 건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다. 크노에프는 “더 많은 권력이 의학 전문가들에게 넘어갔고, 사람들 자신에게서는 멀어졌다”고 설명한다. “그 권력이 의료 기관 안에 얼마나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진단되기 전까지는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증상으로 사망했더라도 검사를 통해 진단받지 못했다면 공식적으로 코로나 사망이 아닌 거죠. 이건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 그렇게 작동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의학은 언제나 정치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크노에프는 강조한다. 언뜻 논리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사실을 발견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노에프에 따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자들에게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일이다. 코로나19라는 질병은 현실에 이미 완성된 채 존재하다가 ‘발견’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화의 과정이며, 그 안에서 권력 작용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정치와 과학의 경계는 그렇게 흑백논리적이지 않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의학 안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한다. “독일에서는 병리학자들이 부검을 통해 확인한 코로나 사망자들이 모두 암이나 심부전 같은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기저질환이 없었다면 이 사람들이 코로나로 사망했을까요? 건강한 사람에게 코로나바이러스는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만큼 치명적일까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즉 독일판 방역 당국은 이러한 결과에 결코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역학 모델이 의심받게 되었으니까요. 연구소는 조사가 계속되지 않도록 막으려 했습니다. 결국 일은 진정되었지만, 여기서 과학자들 사이의 흥미로운 정치적 권력 게임이 벌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생활 의학
크노에프는 의학에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공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코로나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이 없다. 정의는 저마다 다르며, 문화와 시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요즘 그녀의 머리에 자주 떠오르는 사고실험이 하나 있다. 코로나가 근세 초기였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코로나 여부를 판정해 줄 대형 병원이나 실험실이 존재하기 전의 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같은 질병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근거로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증상에 훨씬 더 많은 주의가 기울여졌겠죠. 해법 역시 개인의 삶의 방식과 스스로 길들인 습관 속에서 찾아졌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 점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이렇게 빠르게 퍼진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세계 곳곳을 대량으로 오가는 비행을 일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런 삶의 방식이 여전히 지속 가능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