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극비 문서로 밝혀진 미국의 핵전쟁 시뮬레이션, 1962년까지는 '승자'였다

지금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문서들에 따르면, 1957년부터 1963년까지 미군은 소련과 중국과의 핵전쟁이 가져올 결과를 극비 속에서 진지하게 조사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1962년까지 미국이 상호 파괴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핵전쟁의 '승자'로 부상할 것으로 분석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전략적 우위는 이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에게 전해진 충격적인 보고서

1961년 7월 20일 새벽, 베를린 위기로 미소 간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 건의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핵평가소위원회(Net Evaluation Subcommittee, NESC)'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소규모 최상급 기밀 그룹이 작성한 것으로, 백악관의 위탁을 받아 1957년부터 세계 규모의 핵전쟁이 초래할 결과를 연구해 온 결과물이었습니다.

케네디에게 제출된 보고서에는 매우 충격적인 수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러시아 핵잠수함이 미국 공군 기지를 기습 공격하면서 핵전쟁이 시작되는 시나리오에서는 무려 7,100만 명의 미국인이 '즉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핵폭발 후 떨어져 내리는 방사성 먼지, 즉 치명적인 낙진이 인구 밀집 지역 대부분을 덮친다는 전망이었습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이어질 미국의 핵 반격은 한 달 안에 6,900만 명의 소련 국민, 그리고 어쩌면 7,900만 명의 중국인의 목숨을 앗아갈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딘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우리가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르는구나"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집니다.

NESC와 그들의 연례 분석 보고서는 오랫동안 최고 기밀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최근 들어 방대한 원문 보고서의 요약본이 일부 대중에 공개되면서, 냉전 시기 미국이 소련과의 파괴적인 핵 충돌 가능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NESC가 소련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하는 시나리오만 검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이 '예방 차원에서' 먼저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시나리오 역시 분석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즉, 미국 역시 자신들이 먼저 타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시작되는 핵전쟁 시나리오

핵전쟁 시나리오는 실제 상황을 토대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62년 보고서에서 NESC는 1957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 즉 '동남아시아의 지역 분쟁'이 확전되어 1965년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습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원을 받은 북베트남 공산 세력이 남베트남 전역을 점령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후 미 공군이 공격에 나서고 중국과 소련의 MiG 전투기와 교전하며, 미사일 발사대가 최고 경계태세에 배치됩니다. 모스크바는 이를 공격 준비로 오인하고 기습 핵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하며, 그 결과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전개였습니다.

NESC의 분석은 케네디의 전임자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재임 1953~1961)이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선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미소 간 갈등이 필연적으로 핵전쟁으로 번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이 승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러시아도 같은 분석을 하고 있을 것이며, 미국이 가장 강자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은 핵 대결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사라진 미국의 우위

1950년대 후반의 초기 보고서들에서 미국은 '승자'로 그려졌습니다. 상호 파괴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지만, 놀랍도록 냉철한 NESC의 수치에 따르면 미국이 핵 충돌에서 가장 강한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핵탄두가 러시아에 입히는 인적·물적 피해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위는 쿠바 미사일 위기로 양 초강대국이 공개적 대결 직전까지 몰렸던 1962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1963년 NESC 분석에서는 미국의 우위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미국과 소련 모두 핵 충돌에서 심각한 피해 없이 생존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는 핵탄두를 미국 본토에까지 운반할 수 있는 소련의 장거리 미사일(ICBM) 보유량이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미국 측에 가해지는 파괴는 러시아 측만큼 클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결국 핵 충돌 시 미국은 더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후 초대 대통령들이 소련을 견제하는 데 활용해 온 억지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보고서, 그리고 전환점

1963년 보고서는 NESC의 마지막 분석이 되었습니다. NESC가 이를 중단한 정확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파괴의 처참한 수치로 가득한 이런 보고서들을 접한 케네디가 NESC에 외교적 위기 관리에 더 집중하고 모스크바와의 군비 경쟁을 억제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비슷한 성격의 보고서는 1964년과 1965년에도 일부 작성되었지만, 1963년 이후 워싱턴에게 핵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무릇 막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