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EYE 필름 뮤지엄에서 특별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정확히는 '재구성된 역사'다. 헝가리 출신 아티스트 페테르 포르가치(Péter Forgács)는 전쟁 이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촬영된 개인 필름들과 같은 시기의 편지들을 엮어 영상 설치 작품 '슬럼버링 파이어(Slumbering Fire)'를 탄생시켰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인연이 없었던 예술가
흥미롭게도 포르가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뿌리도, 지식도, 제대로 된 개념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방대한 네덜란드령 동인도 개인 필름 컬렉션을 다루기에 적임자였다.
1980년대부터 그는 개인 필름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며 해당 시기의 역사에 새로운 조명을 비춰왔다. 네덜란드 역사를 다룬 사례도 있다. 대표작 '더 말스트롬(De maelstroom)'은 1939~1942년경 홀로코스트로 생을 마감한 유대인 피레붐(Peereboom) 가족의 아마추어 필름으로 구성된 가족 연대기다.
20년에 걸친 긴 여정
포르가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프로젝트에 거의 20년을 바쳤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필름 소재를 TV용으로 편집할 계획이었지만, 주제가 여전히 너무 민감하다는 이유로 계획은 백지화됐다. 15년 후에야 EYE 필름 뮤지엄이 과감하게 이 주제로 전시를 열기로 결심했다. 영화 박물관은 동인도에서 촬영된 100시간이 넘는 아마추어 영상을 소장하고 있었고,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필름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포르가치는 90분짜리 단일 영화 대신 설치 작품 형태를 선택했다. 덕분에 훨씬 많은 아카이브 자료를 담을 수 있었다. 총 6시간 분량의 영상이 15개 스크린에 걸쳐 전시된다. 각 스크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고 포르가치는 말한다. 즉,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영상에는 당시 아마추어 필름과 같은 시기에 작성되어 네덜란드 본국의 친척들에게 보내진 편지들의 내용이 함께 흐른다. 편지는 대부분 라이덴에 위치한 왕립 언어학·토지·민족학연구소(KITLV) 컬렉션에서 발췌됐다.
편지, 책, 영화 아카이브 속 연구
전쟁·홀로코스트·집단살해 연구소(NIOD)의 연구원 에벨린 부하임(Eveline Buchheim)은 컬렉션을 연구하고 프로젝트에 사용할 편지들을 선별했다. 어떤 경우에는 영상 자료와 편지가 같은 사람의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포르가치가 두 매체를 직접 짜 맞추고 편집했다. 그는 '진실한 역사'를 보여준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객관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식민지 역사에 대한 개인적 해석이다.
문화와 역사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포르가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섭렵했다. 그리고 역사는 흑백논리로 나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동인도를 낭만화할 필요는 없지만, 동양에서의 네덜란드의 역할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단순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회색 지대인 것입니다." 낭만적인 낙원도 아니지만, 경멸스러운 식민지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설치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영상 속 네덜란드인들은 하인들에게 상냥하게 굴며 행복해 보이고, 편지에서는 '하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우쭐하게 이야기한다. 본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인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하인을 훨씬 강하게 대했고, 부모들은 이를 오히려 창피함을 담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인도네시아인은 성격이 좋지 않다. 급하고 질투심이 많으며, 유럽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식의 문장도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다.
여덟 번의 낙태
백인 네덜란드인(토톡, totok)과 인도(Indo, 백인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의 혼혈)가 서로 교류하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영상 속에서 유색 네덜란드인은 백인 네덜란드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함께 파티를 벌이고, 함께 차를 몰고(당시 동인도의 운전자 수는 네덜란드 본국보다 훨씬 많았다), 함께 식사한다. 하지만 익명의 인도 소녀는 명예로운 관계, 즉 정식 연애가 문제가 되면 네덜란드 남자들이 자신에게서 달아난다고 토로한다. 결국 그녀는 '순수한' 네덜란드인과 결혼에 성공하지만, 그 대가는 허풍스러웠다. 순혈 네덜란드인을 붙잡기 위해 십 대 시절부터 여덟 번의 낙태를 감행했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인 편지 작가 빌럼 발라번(Willem Walraven)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인의 열등감은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 그들 모두는 백인이 되고 싶어 했다. 네덜란드 남자들이 유흥 상대로 어울리던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정식 아내가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남자가 자신에게 싫증을 내더라도 아이들을 계속 부양해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발라번은 1915년 KNIL, 즉 네덜란드령 동인도군 병사로 동인도에 건너갔고, 1922년 인도네시아인 이티(Itih)와 결혼했다.)
새로운 역사 서술의 한 층위
'슬럼버링 파이어' 전시는 꿰뚫어 보는 듯한 이야기들과 대체로 경쾌한 영상들이 절묘하게 뒤섞인 특별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포르가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식민지 전성기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유럽인들이 서로, 그리고 인도네시아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파티와 가족의 삶, 풍성한 라이스 테이블(rijsttafel)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 포르가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역사 서술에 새로운 층위를 더하고자 했고, 성공적으로 해냈다.
참고 자료
- 빌럼 발라번, 『편지 – 가족과 친구들에게 1919-1941』, G.A. 판 오르스호트 출판사
- 폴 W. 판 데르 퓌르(Paul W. van der Veur), "식민지 사회의 인종과 피부색: 유라시안 여성이 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인도네시아에 대한 전기 스케치", 『In Indonesia』 8호(1969년 10월), 69-80쪽 수록 익명 편지
- KITLV 컬렉션 소장 기타 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