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불가능한 미스터리, 켈트 문명
켈트는 언제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세상에 남깁니다. 스톤헨지, 드루이드의 과학,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미스터리가 그렇습니다. 어쩌면 역사학자들이 켈트 연구에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보아디케아 여왕과 '생명의 성배' 전설
그런 미스터리 중 하나가 바로 서기 1000년경 작성된 문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문서가 최소 2,000년은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 기원은 기원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설의 주인공은 보아디케아(Boadicea) 여왕입니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보아디케아는 1세기에 로마에 맞선 브리튼 부족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문서 속 그녀는 한 번에 여러 아이를 낳는 능력을 지닌 위대한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임신 중 '생명의 성배(cup of life)'라 불리는 그릇에서 목욕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30세라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늙은 나이에 그녀의 심장이 멎고 맙니다. 다행히 드루이드가 곁에 있었고, 그는 즉시 조치에 나섭니다.
드루이드가 집행한 '심장 이식 수술'
문서에 기록된 드루이드의 조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여왕이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일종의 안개(증기)를 들이마시게 합니다. 이어서 노예 한 명에게 같은 안개를 마시게 한 뒤 노예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적출하고, 여왕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냅니다. 그리고 노예의 심장을 여왕의 가슴에 넣은 뒤, '생명의 성배'에 담갔던 금실로 봉합합니다. 마지막으로 심장에 작은 번개(충격)를 가하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드루이드는 같은 금실로 여왕의 가슴을 모두 봉합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이 특별한 이유
이 이야기에서 놀라운 점은 단순히 '이식'이라는 발상이 아닙니다. 그 이전 어떤 문화권에서도 장기 이식 개념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놀라운 것은 기술입니다. 통증을 없애야 한다는 인식, 봉합이 필요하다는 지식, 그 봉합이 위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 그리고 심장이 다시 뛰게 하려면 충격을 가해야 한다는 이해까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통증을 없애는 안개를 오늘날의 마취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리스인조차 아무것도 몰랐던 시대를 생각하면 그 발상만으로도 천재적입니다.
실제 수술이 가능했을까?
이런 수술이 실제로 집행되었는지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 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정황은 긍정적인 쪽을 가리킵니다.
첫째, 노예의 죽음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여왕을 구하기 위해 노예가 목숨을 바치는 일은 지극히 흔했습니다. 둘째, 그로부터 1,000년 전인 기원전 2000년 무렵, 이집트인들은 이미 뇌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훗날의 잉카 문명 역시 두개골 천공술(트레파네이션)을 익혔는데, 대부분은 실패했겠지만 이집트와 잉카 사례 중 최소 3건은 뇌 수술이 성공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다만 뇌 수술의 경우 두개골에 구멍을 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켈트가 실제로 심장 이식 같은 수술을 시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 없습니다. 결국 이 전설은 고대인의 경이로운 상상력과 의학적 통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켈트가 남긴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