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새벽 3시의 핵 경보: 소련 미사일 2,200발이 날아오고 있었다?

새벽 3시, 핵전쟁 직전의 7분

1979년 11월 9일 새벽 3시.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침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의 군사 보좌관 중 한 명인 윌리엄 오돔이었다. "소련이 우리를 향해 핵미사일 250발을 발사했습니다!" 오돔은 급하게 외쳤고, 브레진스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로 달려갔다.

브레진스키는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암기하고 있던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반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7분이었다. 대통령을 깨우기 전에 그는 이것이 실제 미사일 공격이라는 재확인과 함께 예상 표적 목록을 받고자 했다.

그는 대통령이 반격 명령을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보좌관에게 1분 안에 다시 전화하도록 지시했다. 확인해야 할 사항은 반격을 담당할 전략공군사령부(SAC)의 폭격기가 이미 이륙 준비를 마쳤는지 여부였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오돔으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브레진스키 님, 250발이 아닙니다. 최소 2,200발의 핵탄두입니다! 이건 파괴적인 공격입니다!" 워싱턴은 당연히 표적이 될 것이었다. 브레진스키는 자신과 주변 모든 사람이 15분 안에 죽음에 이를 것임을 직감했다. 그가 대통령에게 알리기 위해 수화기를 드는 순간, 전화기가 세 번째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레이더 시스템에서는 소련 미사일이 감지되지 않았다는 보고였다. 심장이 여전히 목구멍까지 치솟은 채, 브레진스키는 의자에 천천히 몸을 묻고 사무실 창밖의 평온하게 불빛이 켜진 거리를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경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이미 전투기 10대가 이륙한 상태였다. 또한 긴급 상황 시 대통령이 공중에서 국가 통제를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공중지휘기 '내셔널 이머전시 에어본 커맨드 포스트' 역시 대통령이나 국방장관 없이 이미 하늘에 떠 있었다.

며칠 후, 미국 국방부는 많은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에서 직원이 실수로 훈련용 테이프를 컴퓨터에 장착한 것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곧 이 단순한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미국 영공 감시를 담당하는 NORAD(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사령관은 결국 훈련용 소프트웨어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컴퓨터에 입력됐다고 인정해야 했다.

브레즈네프의 긴급 메시지

영화 속 재난 시나리오처럼 들리지만, 냉전 기간 동안 세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자주 대규모 충돌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미국 연구기관 '내셔널 시큐리티 아카이브'가 최근 자체 웹사이트에 공개한 기밀 해제 문서들이 이를 보여준다. 미국 측 자동 경보 시스템의 오작동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공개된 문서 중 하나에 따르면, 소련 지도자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는 1979년 11월 9일 사건 직후 워싱턴에 개인적인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엄청난 위험을 내포한 미국 측의 무책임한 실수"를 우려했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 분야에서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6개월 뒤, 같은 실수가 반복되다

하지만 경고는 부분적으로만 효과가 있었다. 6개월 후인 1980년 6월 3일과 6일, 1979년 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컴퓨터는 또다시 '수백 발'의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한다고 경보를 울렸다. 이번에는 경보가 카터 행정부 최고위층까지 전달되기 전에 허위 보고가 간파되어,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공개된 문서 중 하나에서 당시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원인은 NORAD 경보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버그였다. 미국 영공 감시 시스템은 군 지휘센터에 자동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는데, 기본값으로 '발사된 미사일 000발'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0 대신 2가 입력되어 '002' 또는 '200'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군은 이를 근거로 예방 차원에서 비행기를 공중에 띄울 충분한 명분으로 삼았다.

위험한 연쇄 반응

브라운은 이런 종류의 컴퓨터 오류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자동화 시스템 위에는 항상 인간의 통제가 존재한다고 대통령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는 오경보에 대한 경계 태세가 소련 측에 포착되어 서로의 오해에 반응하는 위험한 연쇄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익명의 미국 국방 당국자는 "러시아인들도 우리만큼 높은 수준의 인간 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더욱 불안한 사실은, 소련의 경보 체계가 정반대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소련은 미국이 크렘린의 정치·군사 지도부를 신속히 제거하는 '참수 공격'을 기습적으로 감행할 것을 특히 우려했다. 이에 따라 지하 벙커 깊숙한 곳의 일부 장교들은, 지도부와의 연락 두절 등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최상위 지휘부의 추가 승인 없이도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 모두 핵 공격은 상호 확증 파괴를 의미하며 누구도 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국 정치 지도부가 이 결정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회고해 보면, 진정한 위협은 양 초강대국의 핵무기가 당대 기준으로도 원시적인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었고, 그 시스템이 수시로 오작동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컴퓨터 결함들, 때로는 파괴적인 전쟁을 섬뜩할 만큼 가까이 끌어당겼던 그 결함들에 대해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은 분명하다.